주간동아 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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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섬마을 폭력에 노출된 소녀

정주리 감독의 ‘도희야’

  • 이형석 헤럴드경제 영화전문기자 suk@heraldm.com

    입력2014-05-26 10: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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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의 섬마을 폭력에 노출된 소녀
    최근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 온라인판이 세계 영화 중 최고의 여성복수극 12편을 뽑았다. 미국에서 지난달 하순 개봉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닉 카사베츠 감독의 ‘디 아더 우먼’을 비롯한 선정작에 한국 영화도 2편 포함됐다.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2005)와 임상수 감독의 ‘하녀’(2010)다. ‘친절한 금자씨’는 아동 연쇄납치 살해범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복역한 여인이 절대악인 한 남자에게 가하는 통렬한 복수극이다. ‘하녀’는 유부남인 재벌 2세의 아이를 갖게 된 재벌집 하녀의 이야기를 담았다. 전도연이 연기한 이 여인의 복수는 ‘재벌’로 상징되는 우리 사회의 계급구조와 물신주의,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여성적 ‘논평’이었다고 할 것이다.

    여성복수극은 그것이 코미디든, 스릴러든, 멜로든 대개 그 영화가 발 딛고 선 사회의 모순을 첨예하게 드러내게 마련이다. 여성 주인공은 성적, 육체적, 경제적 약자에 속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5월 14일 개막한 제67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된 ‘도희야’는 한 걸음 진화한 여성복수극이라 꼽아도 무방하다. 단편영화로 꾸준히 주목받다 이번에 장편 데뷔작을 낸 정주리 감독, 세대는 다르지만 한국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개성과 이미지로 정평난 주연 배두나, 김새론 등 여성 감독과 여배우가 의기투합한 작품이라는 점도 의미심장하다.  

    ‘도희야’는 외딴섬에서 의붓아버지 용하(송새벽 분)와 할머니의 학대, 마을 아이들의 괴롭힘을 당하며 살던 중학생 도희(김새론 분)와 사생활 문제로 서울에서 좌천돼 파출소장으로 부임한 엘리트 경찰 영남(배두나 분)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남은 마을 사람들의 침묵과 방관 속에서 무방비로 폭력에 노출된 소녀의 삶에 개입하기 시작하고, 도희는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울타리가 돼주는 파출소장에게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의지한다. 섬마을에 사는 거의 유일한 젊은 남자로 동네일을 도맡아 하는 용하는 영남의 비밀을 알게 되고, 이를 미끼로 영남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러자 도희는 영남을 위해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게 된다.

    침묵의 섬마을 폭력에 노출된 소녀
    영화 속 섬은 가부장적인 폭력과 방관자들의 침묵이 일상화된 공간이다. 용하는 섬 내 폭력구조의 정점이자 마을 경제의 중심에 있는 인물. 그는 어린 딸뿐 아니라 뱃일에 동원된 외국인 불법체류 노동자들을 구타와 폭행, 욕설로 관리한다. 용하가 마을의 노동뿐 아니라 자재, 생산물 매매 등 주민 생업과 관련한 모든 활동을 전적으로 책임지는 인물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용하의 폭력은 마을 사람들에게 용인되는 것이다.



    경제와 노동 때문에 가부장적인 폭력과 방관자들의 침묵이 일상화된 섬마을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이며, 영남과 도희는 서로 다른 이유로 그 희생자다. 영남은 성적 편견의 희생자고, 도희는 육체적 학대의 피해자다. 한마디로 ‘도희야’는 조용하지만 위험하고 매혹적인, 여성의 연대와 반란에 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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