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김민경 기자의 It-Week | 마흔여덟 번째 쇼핑

아이스크림과 바꿔먹은 주민등록번호

아이스크림과 바꿔먹은 주민등록번호

아이스크림과 바꿔먹은 주민등록번호

요즘 e메일 박스를 점령한 ‘100% 무료로 드립니다’ 광고메일입니다. 응모하면 곧바로 보험회사에서 전화를 합니다. 중요한 개인정보를 겨우 1000원짜리 ‘아이스께끼’로 바꿔주다니, 너무한 거 아닌가요?

‘시원한 아이스크림 100% 공짜로 쏩니다!’
‘오션○○ 종일무료이용권 100% 드립니다.’
‘버거○ 햄버거세트에 당첨되셨습니다.’

보이스피싱에 낚였다는 사람들을 보면 겉으로는 “세상에, 진짜 교묘한 사기네”라고 주먹을 쥐면서도 속으로는 ‘당신이 2% 부족한 거 아닌가’라고 생각하던 제가 e메일 박스에 쇄도한 ‘신종 인터넷 마케팅’에 코가 꿰었습니다.

돌아보면 근본적 원인은 이상 폭염이었습니다. 땀을 주룩주룩 흘리며 사무실에 들어와 앉자 컴퓨터 모니터에 뜬 ‘시원한 아이스크림 100% 공짜로 쏩니다’라는 문구가 확 들어왔습니다. 이 더위에 일하느라 수고한다고 말 한마디 해주는 사람 없는데, ‘시원’하고 ‘100% 공짜’라고? 뭐지, 이 감사함의 감정은? 나름 산전수전 다 겪었으니 일단 클릭해보면 스팸메일인지 아닌지 알 수 있으리라. 결정은 그 다음에, 클릭.

빈칸에 이름, 주민등록번호, 전화번호, 주소를 적게 돼 있어요. 주민등록번호 함부로 쓰면 안 된다는 건 잘 알고 계시죠? 물론 저도 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 옆에 ‘1인 1회 응모 가능’이라고 써 있기에 응모 횟수를 확인하는 절차라고 믿었죠. 아니, 믿고 싶었죠.

반짝반짝하는 ‘아이스크림 받으러 가기’ 배너를 클릭하니 ‘고객님은 보험상품 안내를 위한 마케팅 활용에 동의하셨습니다’라는 창이 떴습니다. 내가 언제? 난 그저 아이스크림을 받아먹는 데 동의했을 뿐이라고. 이어서 ‘피자○’의 ‘리치골드피자’와 ‘버팔로윙’ 4조각, 콜라를 공짜로 받아먹겠느냐는 창이 떴습니다.



버팔로윙 4조각이면 나 하나 먹고… 뭐, 이렇게 된 바에야 ‘응모’ 클릭. 이번엔 ‘설문 참여하고 최신폰 받기!’라는 창이 떴어요. 인형 속에 또 인형이 들어 있는 러시아 인형 ‘마트로시카’처럼 아파트라도 한 채 공짜로 주는 거 아닌가 싶었죠. 1분 만에 여러 번 응모를 했지만 제 휴대전화에 아이스크림 ‘기프티콘’은 뜨지 않았습니다. 대신 에너지로 폭발할 듯 팽팽한 목소리의 여성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고객니임~, ○○보험입니다. 저희 보험사에 상담 요청하셨죠?”
(모른 척) “아뇨, 그런 적 없어요.”
(못 들은 척) “저희 보험사에 고객 정보를 주셨거든요. 저희가 이번에 소개해드릴 보험은 퇴직 후 (중략) ○○도 있고, 넘어져 다쳤을 때 (중략) △△도 있고, 중대 교통과실 사고가 났을 때 (중략) □□도 있습니다. 자녀분이 계시면….”

이 정도 들었으면 제 실수에 대한 대가는 치른 셈 아닌가요? 아이스크림 공짜 메일을 보낸 회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컬러링에 “새로운 개념의 인터넷 비즈니스 컨설팅회사에 전화해주셔서 감사합니다”란 안내가 나오더군요. 이벤트 담당자를 찾아 아이스크림은 언제 주느냐고 물어보니, 일주일 동안 응모를 받아 선착순 1000명에게만 준다고 합니다.

“그럼 100% 공짜는 아니네요?” “뭐, 그런 셈이죠. 밑에 써 있으니 찾아보세요.” 최근 이 같은 마케팅에 열받는 소비자가 많아지자 공정거래위원회에서도 주목하고 있다 합니다. 업계에서는 “법적으로 문제 없다”면서도 “자체적으로 수위 조절에 나서고 있다”며 한발을 빼는 듯하고요.

‘무료’ ‘공짜’ 메일은 즉시 스팸으로 분류하던 제가 ‘겨우’ 1000원짜리 ‘아이스께끼’에 낚인 이유는 첫째, 최근 휴대전화 기프티콘을 아는 사람들끼리 선물용으로 많이 주고받는 데다 둘째, 유명 백화점과 단골 인터넷 서점 이름으로 메일이 발송됐으며 셋째, 간식이 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래 음식 주면서 치사하게 조건 다는 국민은 아니잖아요. 그나저나 공짜 없는 세상입니다. 저는 얼마나 더 많은 보험가입 권유 전화를 받게 될까요.



주간동아 2009.09.01 701호 (p65~65)

  • 김민경 holden@donga.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09

제 1209호

2019.10.11

‘한류를 믿고 투자한다’는 콘텐츠 사냥꾼의 속셈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