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88

2007.06.05

일본경제 부활 바로 보기

  • 위정현 중앙대 교수·경영학

    입력2007-06-04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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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경제 부활 바로 보기
    일본에 대한 평가만큼 극과 극을 오가는 것이 또 있을까? 1980년대 일본 제조업이 호황을 누릴 때 세계는 일본을 따라 배우는 데 여념이 없었다. 에즈라 보겔의 ‘재팬 이즈 넘버원’, MIT의 ‘메이드 인 재팬’ 등은 당시 일본의 강한 산업경쟁력과 사회시스템의 우위를 강조한 책이다.

    그러나 90년 중반 버블이 꺼지고 일본이 10년 장기불황에 빠지자 이번에는 일본식에 대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운동’이 세계를 휩쓸었다. 심지어 1998년 8월 무디스는 ‘종신고용’을 빌미로 도요타의 장기채 등급을 최상급인 Aaa에서 Aa1으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무디스는 “종신고용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것이며 국제 추세에도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당시 도요타 사장은 “신용은 채무를 갚을 능력이 있는지에 따라 좌우돼야 한다. 미국도 일본 경제가 호황일 때는 일본식 경영의 기본인 종신고용제도를 높이 평가하지 않았는가. 일본 경제가 나빠지자 종신고용을 문제삼고 나선 것은 미국식 기준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무디스를 항의 방문했다.

    당시 무디스의 조언을 무시한 도요타는 현재 잘나가고 있다. 지난해 실적은 7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매출액과 순이익이 각각 23조9480억엔(약 192조원), 1조6440억엔(약 13조원)으로 전년 대비 13.8%, 19.8%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일본 기업 중 처음으로

    2조엔을 돌파했다.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에 영향을 받지 않은 도요타의 비결은 한마디로 시류에 편승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자기 회사가 가진 핵심역량의 축적에 집중하고 불필요하게 주변을 기웃거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고집스러운 ‘면벽(面壁) 10년’이라고 할까?

    원래 어설픈 미국식 컨설팅을 무시하는 것은 도요타의 전통이었다. 90년대 초반 리엔지니어링, 리스트럭처링 등 지금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미국식 컨설팅 개념이 세상을 휘젓고 다닐 때도 도요타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가이젠(改善)이라는, 50년대 그들이 확립한 방법론을 고수하며 꾸준히 생산성을 높였고, 이것이 오늘날의 놀라운 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결과만 좇는 우리 습성 이제는 버릴 때

    일본 경제가 활황을 보이자 한국 역시 쓰레기통에 넣어두었던 일본식 도구를 다시 꺼내 먼지를 털고 있다. 또다시 일본식 경영이 한국에서 붐을 이룰지는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일본 경제의 붐을 지켜보며 마음 한구석에 씁쓸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일본 경제의 부활에서 우리가 모르는 진실이 있다. 일본이 불황일 때도 20% 기업은 최고 수익을 올렸고, 하위 20% 기업은 도태되면서 오늘날 일본경제 부활의 토대가 됐다는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일본 경제는 단지 불황 속에 허덕이고 있었던 게 아니라 기업의 도태와 질적 성장이라는 신진대사를 진행하고 있었던 셈이다. 우리가 일본의 부활을 부러움이 아닌 한 단계 높아진 경쟁자의 등장으로 보고 긴장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동네축구 하듯 피상적인 결과만 쫓아다니는 우리의 습성이 일본 기업의 재등장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최근 불고 있는 일본 기업 재평가 역시 이런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기고용과 같은 일본식 제도가 장기불황을 극복한 원동력은 아니다. 그 원동력은 일본 기업의 혁신시스템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과가 좋으면 모든 것이 좋다는 식의 태도가 아니다. 그 하나하나의 시스템에 대한 엄밀한 분석과 평가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결과론은 그만둘 때도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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