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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바람의 아들 ‘필드 쿠데타’ 계속된다

  • 이종현 골프칼럼니스트

제주도 바람의 아들 ‘필드 쿠데타’ 계속된다

11월 둘째 주 일요일(12일) 오후, 중국 상하이에서 날아든 프로골퍼 양용은(34)의 유럽프로골프투어 HSBC 챔피언스 우승 소식은 국내 골퍼들의 귀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국제무대에서 무명에 가까웠던 양용은이 세계 랭킹 1위인 타이거 우즈, 2위인 짐 퓨릭이 출전한 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사실은 충격에 가까웠다. 어디 그뿐인가. 세계 랭킹 6위 레티프 구센 등 세계 랭킹 20걸 중 10명이나 출전한 대회에서의 우승이었다.

타이거 우즈를 2타차로 따돌리며 우승을 거둔 양용은은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으며,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빈농의 자식으로 태어난 그에게 골프는 사치였다. 그런 그에게 골프와의 인연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제주관광산업고를 졸업한 열아홉 살 때 우연히 골프연습장에 들렀다가 ‘아르바이트생’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그곳에 취업하면서 골프와 인연을 맺게 된 것. 낮에는 공을 줍고 밤에는 공을 쳤다. 별도 강습을 받지 않고 혼자 연습했다. 어린 시절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은 여느 선수와는 시작부터 달랐다. 그만큼 다른 선수에 비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했다.

다행히 운도 따랐다. 1996년 프로테스트에서 탈락했으나 결원이 생겨 추가 모집에 합격했다. 97년 투어에 참가할 60명 선발전에서는 60등으로 턱걸이했다. 양용은은 스스로 ‘억세게 운수 좋은 놈’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프로에 데뷔했다고 해서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1999년 국내 프로무대 데뷔와 함께 상금랭킹 9위에 오르면서 신인왕을 차지했다. 외형적으로는 엄청난 성공이었지만 그에게 돌아온 성공의 대가는 총 상금액 1800만원이 전부였고, 여기에서 1년간 뛴 경비를 빼니 남은 돈은 고작 1000만원뿐이었다.

그는 ‘막일을 해도 이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에 잠시 술과 방황의 나락에 빠졌다. 사글세 지하 단칸방에서 사는 아내, 아이들과의 생활은 비참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그는 한 독지가의 도움으로 다시 투어를 시작했다.

제주도 출신, 바람의 아들답게 어려울수록 그는 더욱 강해졌고 2002년에는 SBS최강전에서 연장전 끝에 극적인 이글로 당시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던 프로골퍼 박노석, 최상호를 따돌리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양용은은 인생의 목표를 바꿨다.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로 진출하기로 한 것. 그는 JGTO투어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해 수석 합격했다. 2004년에는 일본 무대에 진출해 2승과 상금랭킹 3위(9600만엔)라는 성공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지난 9월 국내 메이저 대회인 한국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해 HSBC 챔피언스에 출전하는 행운까지 얻게 됐으며, 급기야 세계적인 선수들을 물리치고 우승컵을 안는 영예를 차지했다.

양용은은 ‘제2의 최경주’로 불리기도 한다. 여러 면에서 최경주와 닮았다. ‘자수성가형 골퍼’ ‘빈농의 헝그리 골퍼’ ‘정신력과 체력이 뛰어난 골퍼’ 등.

양용은의 성공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12월 양용은은 미국PGA투어 Q스쿨에 응시할 예정이다. 그리고 세계 메이저 대회와 500만 달러짜리 WGC 시리즈 등 굵직한 출전권도 이미 확보해놓은 상태다. 세계 랭킹 50위 이내를 유지하면 적어도 미PGA 20개 대회는 출전할 수 있다.

“1년 만에 끝나더라도 미국 무대에서는 한 번쯤 뛰고 싶다. 4대 메이저 대회 중 마스터스만 빼놓고 다 출전해봤다. 마스터스에도 꼭 나가고 싶다”라고 말한 양용은은 이제 한국, 아시아, 유럽 무대를 정복하고 미국 무대에서의 쿠데타를 꿈꾸고 있다.



주간동아 2006.11.28 562호 (p98~98)

이종현 골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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