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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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구멍’ 美 취업비자 FTA가 해결할까

쿼터량 절대 부족 한국인 취업 희망자 발 동동 전문직 쿼터 설정 등 다각도 협상안 제시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06-11-22 15: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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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늘구멍’ 美 취업비자  FTA가 해결할까
    지난 8월 말, 한 유학생 전용 온라인 게시판에 A씨의 고민 글이 올랐다. 미국 대학을 갓 졸업한 A씨는 최근 미국 금융회사로부터 합격 통보를 받았지만 올해 미국 전문직 취업비자(H-1B 비자) 발급이 모두 완료된 터라 내년 10월이 돼야 취업비자를 획득할 수 있는 상황에 놓였다. 문제는 현재 그가 가진 학생비자가 내년 6월에 만료된다는 점. A씨는 “내년 6~10월에는 무비자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에 돌아가든지 해야 하는데 이 점을 회사에서 이해해줄지 걱정된다”고 털어놓았다.

    간호사·물리치료사協 한-미 FTA에 큰 기대

    미국에 유학하는 한국인이 크게 늘면서 A씨처럼 졸업 후 미국에서 취업하려는 한국인 또한 크게 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한숨은 날로 깊어가고 있다. 비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애써 구한 일자리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민전문업체 Y사의 이모 미국 변호사는 “비자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회사는 다른 고용인을 찾지, 한국인의 비자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는다”며 녹록치 않은 현실을 전했다.

    H-1B 비자란 미국이 자국 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발급하는 것으로, 3년 거주에 3년 연장이 가능한 비(非)이민 비자다. 그런데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한 이 비자의 연간 쿼터량이 6만5000개로 제한돼 있어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 2006년 10월1일 개시된 2007 회계연도의 H-1B 비자 접수가 지난 4월1일 시작됐는데 5월26일자로 모두 완료됐을 정도다. 이처럼 H-1B 비자 획득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A씨처럼 직업을 구하고도 비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J Grobal Law Group의 장정윤변호사는 “H-1B 비자를 받지 못해 취업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유학생들이 많다”고 전했다.

    막바지 협상으로 치닫고 있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 취업을 바라는 한국인들에게 희소식을 가져다줄 것인가. 농산품 및 서비스 개방, 반덤핑 장벽 제거 등의 이슈에 가려 ‘전문직 인력 이동’은 국민 개개인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임에도 그동안 그다지 거론되지 못했다. 그러나 한국인만을 위한 전문직 비자 쿼터를 확보해달라는 요구는 한미FTA를 통해 우리가 미국으로부터 얻어내려 하는 주요 의제 중 하나다.



    한국인의 미국 취업 현황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2002~2005년까지 4년 동안 한국인이 발급받은 H-1B 비자는 평균 3300여 건에 불과한데 이는 H-1B 비자 국가별 통계에서 고작 3.7%를 차지하는 수준(2003 회계연도 기준)이다. 2001년 미국의 비이민 취업자 출신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1만2700여 명으로 13위에 그친다(일본 5위, 중국 10위). 미국에게 한국은 7대 무역상대국이며 미국의 외국인 유학생에서 한국이 인도와 중국에 이어 3위를 차지하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한국인의 미국 취업은 저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 한국 정부는 전문직 인력 이동과 관련해 3가지 안을 협상 중이다. △전문직 비자쿼터 설정과 더불어 △전문직 자격 상호 인정 △전문직 자격증 관련 시민권 및 영주권 요건 폐지가 그것이다.

    ‘바늘구멍’ 美 취업비자  FTA가 해결할까

    10월23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미FTA 4차 협상에서 한국 측 김종훈 수석대표(오른쪽)와 미국 측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가 악수하고 있다.

    전문직 자격 상호 인정과 관련해 가장 큰 기대를 거는 곳은 대한간호사협회다. 한국간호사 자격증이 미국에서도 인정되면 좀더 수월하게 미국에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간호사시험에 응시하는 간호사의 수가 해마다 급증해 올해는 2000명에 이를 정도로 미국 취업 희망자가 많다. 대한물리치료사협회도 미국 진출에 강한 욕구를 드러냈다. 유진수 조직이사는 “상위 10% 이내의 학생들이 물리치료학과에 진학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물리치료사들보다 실력이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전문직 비자쿼터에 포함되는 직업은 어떠한 종류일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모두 63개 종에 대해 캐나다인과 멕시코인의 자유로운 미국 취업을 허용하고 있다. 여기에는 약사, 의사, 간호사뿐만 아니라 회계사, 경제학자, 컴퓨터시스템 분석가, 엔지니어, 전문서적 편집인, 영양학자, 심리학자 등도 포함된다. 미국과 FTA를 맺은 다른 국가들도 이와 비슷한 업종에서 전문직 비자쿼터를 확보하고 있다. 이에 대해 외교부 관계자는 “특정 직업군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업종에 진출하기 위해 필요한 4년제 대학을 졸업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학력을 갖춘 자’로 접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H-1B 비자의 쿼터 안에서 우리 몫을 확보할 수도 있고, 다른 방식의 취업비자도 고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압박 위한 여론 형성 필요”

    그러나 외교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미국 의회가 비자 문제는 의회 소관이므로 행정부가 FTA의 협상 대상으로 거론할 수 없다는 경고를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보내온 바 있어 한미FTA 협상에서 우리 측 요구가 관철될지는 미지수”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좀더 적극적인 자세와 논리를 가지고 미국을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우리보다 앞서 2003년 미국과 FTA를 체결한 싱가포르와 칠레는 각각 연간 5400명과 1400명의 H-1B 비자쿼터를 확보했다. 호주는 1만500명의 E-3 비자를 확보했다. 이 비자 역시 전문직 취업비자이지만 배우자의 미국 취업까지 허용하고 있어 H-1B 비자보다 조건이 더 좋다. 통상법 전문가인 송기호 변호사는 “2001년 미국과 호주의 한 해 상호교역량은 190억 달러로 2000년 교역량이 690억에 달하는 한미 상호교역량보다 훨씬 작은 규모”라며 “따라서 우리는 최소 3만명의 전문직 취업쿼터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정윤 변호사 또한 “현재 호주인들의 H-1B 비자 활용도는 한국인에 비해 현저히 낮다”며 “당연히 호주 이상의 조건으로 취업비자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상협상가인 이화여대 최병일 교수(국제대학원)는 “한국에 전문직 비자쿼터를 주는 것이 ‘윈윈’임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청년 실업을 해소하는 한 가지 방안으로 미국 취업을 활용할 수 있고, 미국은 부족한 전문인력을 한국으로부터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기업들은 H-1B 비자 쿼터 확대를 미국 의회에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11월15일 ‘뉴욕타임스’ 인터넷판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등 IT업계와 대학 관계자들로 구성된 ‘컴피트 아메리카’는 13일 미국 상하의원 전원에게 H-1B 비자 발급 건수를 늘려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발송했다.

    막바지를 향해 달리고 있는 한미FTA 협상. 무엇을 양보하고 무엇을 얻었는지에 대한 냉철한 평가작업이 멀지 않았다. 송기호 변호사는 “경제통합의 높은 단계는 인력의 자유로운 이동”이라고 전제하면서 “미국을 최대 상품시장의 관점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고용시장, 혹은 직업훈련 시장이라는 시각으로도 바라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일 교수는 “우리 정부는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좀더 적극적으로 전문직 비자쿼터 확보를 요구하는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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