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47

2006.08.08

말단에서부터 학문의 근원을 추구함

  • 박진열 도서출판 늘품미디어 상임연구위원

    입력2006-08-07 09: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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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단에서부터 학문의 근원을 추구함

    조선 후기 실학자 서계 박세당 선생(왼쪽)과 조선 중기의 학자 겸 정치가였던 이이(李珥)의 초상화.

    [가] 육경1)의 글은 모두 요(堯)·순(舜) 이하 여러 성인의 말을 기록한 것으로, 그 조리는 정밀하고 그 뜻은 완비된 것이며, 그 내용은 깊고 그 취지는 심원하다. 대체로 정밀한 점을 논한다면 털끝만큼도 어지럽힐 수 없으며, 그 완비된 것을 말한다면 미세한 것도 빠진 것이 없다. 그 깊이를 재어보려고 해도 밑바닥을 헤아릴 수 없으며, 그 심원함을 추구하려고 해도 끝 간 데를 볼 수 없다. 이것은 본래 세간의 그릇된 선비라든가 변통 없는 유학자의 얕은 도량이나 고루한 식견으로써는 밝혀낼 수 없는 것이다.

    [나] 그러므로 위로 진(秦)·한(漢) 시대부터 아래로 수(隋)·당(唐) 시대에 이르기까지 분파(分派)를 이루어 서로 이리 자르고 저리 찢고 하다, 마침내 그 대체2)를 파괴하고 만 것이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다. 그 이단3)에 빠진 자는 대부분이 근사한 것을 빌려 가지고서, 그의 간사하고 둔갑스러운 말을 꾸며내기도 하고, 그 옛날의 전적4)을 굳게 지키기만 하는 자는 융통성이 부족하고 편벽하여 전혀 평탄한 길에 어두웠던 것이다. 아아, 성현들이 부지런하고 간절하게 이 글을 만들고 이 말을 기록함으로써, 이 법을 밝히고 천하 후세에 기대를 건 뜻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 ㉠ 전에 이르기를, “먼 곳을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이것은 무엇을 두고 한 말인가? 어둡고 꽉 막힌 사람을 일깨워 가르쳐 그들로 하여금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니겠는가? 진실로 세간의 배우는 이가 여기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앞에 말한 먼 곳이란 곧 가까운 곳에서부터 가야 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른바 깊은 것이란 것도 얕은 데서부터 들어가야 할 것이며, 정밀한 것도 거친 데서부터 이루어 나가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진실로 거친 것도 이루지 못하면서 정밀한 것을 먼저 하고, 소략한 것도 이루지 못하면서 그 구비한 것을 일삼고, 얕은 것도 이루지 못하면서 그 깊은 것을 앞당겨 하고, 가까운 것도 이루지 못하면서 그 먼 것을 미리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법이다.

    [라] 지금 육경을 연구하는 이는 모두가 그 얕고 가까운 것을 뛰어넘어 깊고 먼 것으로 달려가며 그 거칠고 소략한 것은 소홀히 하고서 정세하고 구비한 것만을 엿보고 있으니, 그들이 어둡고 어지러워지고 빠지고 넘어져서 아무런 소득도 없음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저들은 다만 그 깊고 멀고 정세하고 구비한 것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얕고 가깝고 거칠고 소략한 것마저 모두 잃게 될 것이다. 아아, 슬프다. 그 또한 심히 미혹5)한 것이 아니겠는가.

    [마] 대체로 가까운 것은 미치기 쉽고, 얕은 것은 예측하기 쉽고, 소략한 것은 얻기 쉽고, 거친 것은 알기 쉬운 법이다. 그가 도달한 것을 근거로 해서 자꾸 멀리 간다면, 그 먼 곳을 다 갈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예측하여 헤아린 것을 근거로 해서 자꾸 깊게 들어간다면, 그 깊은 데를 다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얻은 것을 근거로 해서 점점 더욱 구비하고, 그 아는 것을 근거로 해서 점점 정묘한 것을 더하여 정묘한 것은 더 정묘하게 하고 구비한 것은 더 구비하게 한다면, 그 구비함을 다하게 되고 그 정세함을 다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찌 어둡고 어지럽고 빠지고 넘어지는 걱정이 있겠는가?



    [바] ㉡ 귀머거리는 ㉢ 우렛소리를 듣지 못하고, ㉡ 장님은 ㉢ 해와 달의 빛을 보지 못한다. 그것은 귀머거리와 장님의 병이지, 우레와 해와 달은 그냥 그대로인 것이다. 우레는 천지에 굴러다녀 진동하고 해와 달은 고금에 비추어 밝을 뿐, 언제나 귀머거리와 장님 때문에 소리와 빛이 흐려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므로 송나라 때에 와서 정자·주자 두 선생이 나와 곧 해와 달의 거울을 갈고 우레의 북을 두드리니 소리는 먼 곳까지 미치게 되고 빛은 넓은 데까지 비쳐지게 되었다. 이에 다시 육경의 뜻이 찬연히 세상에 밝혀졌다. 전날의 편벽한 것이 이미 사람의 생각을 고착시키고 뜻을 정체6)시킬 수 없으며, 그 비슷한 것도 다른 이름을 빌릴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간사하고 둔갑스러운 선동과 유혹이 드디어 끊어지고 평탄한 표준이 뚜렷해졌다.

    [사] 이렇게 된 이유를 따져보면 또한 말단적인 것을 토대로 하여 근본적인 것을 탐구하고 흐름을 따라 근원을 거슬러감으로써 얻은 것이었다. 이는 자사7)가 말한 취지에 참으로 깊이 합하고 묘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그러나 경서(經書)에서 한 말이 그 계통은 비록 하나이지만, 그 실마리는 천 갈래 만 갈래이다. 이것이 이른바 하나의 목표에 생각은 백이나 되고, 귀착점은 같은데 길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뛰어난 지식과 깊은 조예로써도 오히려 그 취지를 다 터득하여 미세한 부분까지 잃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반드시 많은 장점을 널리 모으고 작은 선(善)도 버리지 아니하여야만, 거칠고 소략한 것도 빠뜨리지 않고 얕고 가까운 것도 누락시키지 아니하여, 깊고 멀고 정세하고 완비된 체제가 비로소 완전하게 되는 것이다.

    - 박세당, ‘사변록(思辨錄)’

    단어 뜻풀이

    1) 육경 : 중국 춘추시대의 여섯 가지 경서(經書). ‘역경’ ‘서경’ ‘시경’ ‘춘추’ ‘예기’ ‘악기’를 이르는데, ‘악기’ 대신 ‘주례’를 넣기도 한다.

    2) 대체(大體) : 일이나 내용의 기본적인 큰 줄거리.

    3) 이단(異端) :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주장이나 이론, 자기가 믿는 종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이론이나 행동. 또는 그런 종교.

    4) 전적(典籍) : 책.

    5) 미혹(迷惑) : 무엇에 홀려 정신을 차리지 못함, 정신이 헷갈리어 갈팡질팡 헤맴.

    6) 정체(停滯) : 사물이 발전하거나 나아가지 못하고 한자리에 머물러 그침.

    7) 자사(子思) : 중국 전국시대 노나라의 유학자. 공자의 손자로, 성(誠)을 천지와 자연의 법칙으로 삼고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철학을 제창했다.

    수능 맛보기

    1. 이 글의 내용과 일치하는 것은?

    ① 육경 연구는 훼손된 경전의 원형을 복구하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② 육경이 난해한 까닭은 일상의 구체적 현실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③ 육경의 사상과 가치는 특정 시대와 상황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④ 육경에 대한 학자들의 다양한 견해는 동등한 비중을 지닌다.

    ⑤ 육경의 해석에는 윤리적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2. ㉠에서 논지를 전개하는 방식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은?

    ① 학문에 몰두하는 사람은 사리에 통달하고자 힘쓰고, 이익에 몰두하는 사람은 재화를 얻고자 힘쓰며, 권력에 몰두하는 사람은 비천하게 되고, 악행에 몰두하는 사람은 패망으로 끝난다.

    ② 학문을 하는 데는 본분에 따라 가깝고 평범한 공부에서 시작하여 그 연구와 체험을 오랫동안 쌓은 뒤에야 원대하고도 끝없는 경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③ 오직 배운 연후에 도리를 알게 되고, 도리를 알아야 사물의 본말을 알 수 있으므로, 학문을 하고서 벼슬을 해야 선후와 본말의 순서를 잃지 않을 것이다.

    ④ 말단에 집착하여 근본을 잃기 때문에 도가 밝혀지지 못하는 것이며, 먼저 할 바를 뒤로 미루고 나중에 할 바를 먼저 하기 때문에 도가 행해지지 않는 것이다.

    ⑤ 농사에 힘써 우러러 어버이를 섬기고 굽어 자녀를 길러 집집마다 넉넉하고 마을마다 풍족하여 나라의 근본이 견고해지면 태평성대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수능으로 논술 잡기

    1. (바)의 ㉡ ‘귀머거리’ ‘장님’과 ㉢ ‘우렛소리’, ‘해와 달’의 비유적 의미를 쓰시오. (100자 내외)

    2. 이 글에서 지은이가 밝힌 육경 연구의 올바른 태도는 무엇인지 100자 내외로 쓰시오.

    3. 이 글의 글쓴이와 의 글쓴이의 주장에 드러난 공통적인 학문 태도를 300자 내외로 쓰시오.

    보기) 이른바 학문이란 것은 역시 이상하거나 별다른 것이 아니다. 다만 아비가 되어서는 자애롭고, 자식이 되어서는 효도하고, 신하가 되어서는 충성하고, 부부간에는 분별이 있고, 형제간에는 우애롭고, 젊은이는 어른을 공경하고, 친구 간에는 신의를 두는 것으로서 일용의 모든 일에서 그 일에 따라 각기 마땅하게 할 뿐이요, 현묘한 것에 마음을 두거나 기이한 것을 노리는 것이 아니다.

    다만 학문을 하지 않은 사람은 마음이 막히고 식견이 좁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글을 읽고 이치를 궁구하여 마땅히 향할 길을 밝힌 연후에야 조예가 올바르고 실천에 중도를 얻게 된다.

    요즘 사람들은 망령되어 학문이 일상생활에 있는 줄은 모르고 높고 멀어 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까닭에 특별한 사람에게 미루고 자기는 자포자기한다. 이 어찌 불쌍한 일이 아니랴.

    -이이, ‘격몽요결’ 서

    정답 및 예시 답안



    1. ③, 2. ①



    1. ㉡ ‘귀머거리’, ‘장님’은 육경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사람 또는 편협하고 왜곡된 학문 추구의 자세를 지닌 사람을 말한다. ㉢ ‘우렛소리’, ‘해와 달’은 육경의 본뜻 또는 성현의 말씀을 가리킨다.

    2. 가깝고 얕은 곳, 쉬운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깊이 연구함으로써 육경의 뜻을 전체적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올바른 학문 연구를 위해서는 기초부터 확실하게 이해하고 이를 토대로 종합적인 이해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3.‘사변록’의 글쓴이에 따르면, 성현이 지은 육경은 조리가 정밀하고 뜻이 완비되고 내용이 깊고 취지가 심원하여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얕고 소략한 것으로부터 깨달아 나가야 한다. 왜냐하면 얕은 것은 쉽게 익힐 수 있고, 이를 토대로 깊은 것까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의 글쓴이는 학문이 일상생활에 있으며,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도리를 지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망령되어 높고 멀어 행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그러므로 두 글은 모두 학문의 바른 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얕고 실천할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하여 깊은 것으로 들어가야 함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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