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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엔 미칠 만한 ‘내 팀’이 없다

구단, 팬 확보보단 모기업 홍보 급급…선수들 느슨한 플레이도 인기 반감 요인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K리그엔 미칠 만한 ‘내 팀’이 없다

K리그엔 미칠 만한 ‘내 팀’이 없다

서울이 삼성하우젠컵 우승을 확정지은 7월26일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원정 응원석은 썰렁했다.

박지성은 공을 차지게 찬다. 깜찍하고 알뜰하며 빈틈이 없다. 그를 거친 공은 ‘죽어 나가지’ 않는다. 거스 히딩크는 “빠르크(박)의 실력은 스피드를 죽이지 않고 공을 살려 보내는 데서 나온다”고 했다. 박지성의 끈끈함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쫀득쫀득한 플레이와 잘 어울린다.

K리그는 어떤가. 느슨하고 싱겁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유럽리그를 보면서 높아진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엔 역부족인 게 사실이다. 태극전사들이 소속팀에 복귀한 뒤 치러진 K리그 삼성하우젠컵 17개 경기의 총 관중 수는 6만6663명. 경기당 평균 관중 수는 고작 3921명이다.

딕 아드보카트는 고별 기자회견에서 “K리그의 활성화 없이는 한국 축구의 발전은 요원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꿈★은 사그라지고 있다. K리그가 오히려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7월19일 프로축구연맹 관계자들은 비인기 종목을 연상케 하는 관중 수에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전국 7개 구장에서 벌어진 삼성하우젠컵 10라운드 7경기 중 3경기에서 100명대의 관중만 드는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 포항 323명, 제주 705명, 창원 957명. 이 3경기의 관중 수를 모두 더해도 2000명이 되지 않는다. 대한축구협회의 한 관계자는 “참담하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왜 K리그 활성화라는 오래된 꿈은 실현되지 않는 것일까?



관중 1000명 미만 경기도 수두룩

7월26일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K리그 컵대회 서울-수원전은 명승부였다. 현장의 기자들은 “올 시즌 K리그 경기 중 한 손에 꼽힐 만했다”고 입을 모았다. 수원으로 이적해 데뷔전을 치른 이관우의 감각적인 플레이는 눈부셨으며, 미드필드에서의 공방전은 다이내믹했다.

서울은 이날 컵대회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럼에도 서울을 응원하기 위해 빅버드를 찾은 서울 서포터스는 불과 300명 남짓. 추적추적한 날씨 탓이었을까? 서울의 우승 세리머니는 헐거웠다. 300여 명의 팬 앞에서 어깨를 겯고 뛰고 이장수 감독을 헹가래하는 모습은 우승팀의 세리머니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다.

역사학자 정민은 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고 말한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자기 자신도 제어하지 못하는 광기와 열정이 없으면 꿈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장맛비가 내렸고, 서울에서 수원까지의 이동시간을 고려하면 이날 빅버드를 찾은 서울팬은 FC서울에 ‘미친’ 사람들이다.

명문구단에 ‘미쳐’ 컵대회 우승이 거의 확실한 날 경기장을 찾은 사람이 300명에 불과하다는 것이 K리그-한국 축구-의 현주소다. 이날 서울-수원전은 나름대로 재미있는 경기였음에도 관중들은 “뻥 축구 더 이상 못 보겠다” “짜증난다” “K리그는 아직 멀었다” “비기는 축구만 한다”며 투덜거렸다.

스포츠사회학자이자 축구사학자인 빌 머레이는 축구의 매력은 경기를 보는 내내 선수들과 일체감을 느끼면서 감정을 몰입하는 데서 비롯한다고 말한다. 독일월드컵 때 ‘우리는 미쳤다’. 선수들과 함께 뛰고 넘어지면서 일체감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렇듯 ‘내 팀’ ‘우리 팀’이 있으면 맨땅에서 벌어지는 고교축구, 아마추어들의 조기축구도 흥미진진하다.

K리그엔 미칠 만한 ‘내 팀’이 없다

서울 선수들이 우승을 자축하고 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에 대한 유럽 축구팬들의 충성도는 우리가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느끼는 내셔널리즘에 버금간다. K리그는 축구팬들에게 내 팀, 우리 팀이라는 일체감을 주는 데 실패한 것이다. 서울대 스포츠산업연구센터 강준호 소장은 “K리그는 팬이 재산인 프로축구라기보다 기업홍보용 실업축구를 연상케 한다는 게 문제”라고 말한다.

매년 100억원대의 돈을 쏟아붓는 대기업들은 축구에 대한 지원을 사회공헌 활동의 하나로 여긴다. 축구광인 모 그룹 임원이 사석에서 털어놓은 얘기다. “우리 회사 축구팀의 연간 운영 계획 보고서를 보고 놀랐다. 흑자를 내겠다거나 우승하겠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손해를 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지원하는 대(對)국민 봉사활동의 일환으로 축구팀에 접근하고 있었다.”

한국의 프로구단들은 팬을 늘려 흑자를 내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다. 투자 대비 광고 효과만 누리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팬보다는 모 기업의 지원에 의존하는 기업 홍보 목적의 구단에 팬들이 일체감을 느끼기란 어렵다. 팀 이름에 모기업의 명칭이 들어가는 경우는 축구 선진국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공격적 마케팅·팬서비스 … ‘대전’은 다르다

대기업이 구단주도 아니고, 이렇다 할 스타선수도 없는 대전의 올 시즌 관중 동원 수는 3위다. 축구전문가들은 대전에서 K리그의 희망을 찾는다. 대전과 대전의 팬들은 축구선진국의 그것을 닮았다.

재정 상황이 어려운 대전은 적자를 벌충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다채로운 팬서비스를 제공한다. 김은중, 이관우 등 스타선수를 부자 구단에 팔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에도 광(狂)팬을 보유한 이유다. 축구전문기자 최원창은 ‘프로축구 주식회사’를 표방한 대전이 한국 축구가 나아가야 할 모델이라고 말한다.

“대전이 나름대로 성공한 데는 지방자치단체(대전시)의 적극적인 지원도 한몫했다. 한국 축구의 뿌리인 K리그가 바로 서려면 지자체들의 다각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프로축구팀을 축구장 관리비를 벌충하는 수단으로 여기는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각성해야 한다.”

스포츠평론가 기영노는 한국 축구가 월드컵에서 나름의 성과를 거둔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말한다. 빌 머레이는 자신의 저서 ‘세계축구사’에서 한국을 ‘아시아의 유고’라고 평했다. 그다지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수준급의 선수가 끊임없이 배출된다는 점 때문이다.

차범근, 최순호, 황선홍 등 불모지에서 나타난 ‘천재’들에 의해 한국 축구는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국내 리그의 활성화라는 오래된 꿈이 이뤄지지 않으면 국가대표 선수들과 팬들은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한동안 눈물을 훔칠 가능성이 높다.

K리그가 프리메라리가(스페인), 프리미어리그(잉글랜드), 세리아A(이탈리아)에 맞먹는 경기력을 보여줄 수는 없다. 따라서 방법은 하나다. 프로축구연맹, 프로구단, 지방자치단체가 한 몸이 돼 프로축구를 매력적인 ‘상품’으로 만들고, ‘홍보용 기업축구’가 ‘프로축구’로 바뀌어야 ‘미쳐서 미친(不狂不及)’ 팬들로 축구장이 가득 찰 것이다.

한국 축구는 박지성처럼, 또 햅쌀밥처럼 차지게 뛰어야 한다. 그 시작은 축구에서 대기업의 냄새를 지우고, 프로구단을 ‘우리 마을의 팀’ ‘내 팀’으로 만드는 데 있다. 안타까운 것은 축구가 산업으로 성장하지 못한 한국의 현실에서 ‘산소마스크’ 구실을 하는 대기업을 프로축구의 주체에서 객체로 바꾸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점이다.



주간동아 547호 (p60~61)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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