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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세계화, 궁전에 살렵니다

세 사진작가가 본 현대인의 슬픈 삶…서구 상류층이 욕망의 기준으로 획일화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욕망의 세계화, 궁전에 살렵니다

욕망의 세계화, 궁전에 살렵니다

박홍순, ‘20040310 양수리’(좌).박홍순, ‘20051009 전농동’(우)

20년 전까지만 해도 꼬마 숙녀들의 꿈은 왕자님과 결혼해 궁전에서 사는 것이었다. 나이가 들어 꿈이 바뀌어도 번화한 도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궁전예식장’은 어린 시절의 꿈을 환기시키는 구실을 했다.

요즘 소녀들은 연예인 스타가 되기를 원하지만, 궁전예식장의 꿈을 버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체적이고, 끈질긴 내성을 얻게 된 듯싶다. 건축가이자 건축비평가인 황두진 씨는 “지금은 모두가 기어이 궁전에서 살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한다.

“캐슬(성) 모텔에서 연애한 엄마 아빠가 ‘궁전 웨딩’쯤에서 결혼식을 하고, VIP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아이는 ‘궁’ 레스토랑에서 외식하며, 무슨 캐슬이나 무슨 팰리스에서 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는 시대다. 쇼핑도 로데오가(街), 하이마트, 하이츠 슈퍼에서 하지 않나. 사람들의 욕망이 ‘궁전’급에 맞춰진 것이다.”

스카이라인 어디나 뾰족한 첨탑

이런 점에서 본다면 최근 몇 명의 사진작가들이 궁전을 찍어 거의 동시에 발표한 일이 우연은 아닐 것이다. 눈을 돌리면 스카이라인 어디에서나 궁전의 뾰족한 첨탑을 볼 수 있고, 어느 골목에서나 궁전 노래방을 찾을 수 있지 않은가.



“서양의 건축양식을 본뜬 건축물은 대부분 카페, 모텔, 예식장이더군요. 모두 남녀가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곳이죠. 왜 우리는 사랑할 때 외국 원전을 카피할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한 작업입니다.”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 ‘꿈의 궁전(Dream Palace)’을 열고 있는 사진작가 박홍순 씨의 말이다. 백두대간과 한강을 찍던 작가는 취재를 다니며 북한강 변에 들어선 모텔의 기이한 형태에 주목한다. 그가 본 모텔과 카페는 그리스와 르네상스, 서유럽 ‘캐슬’의 고딕 양식에서부터 이슬람 양식까지를 ‘짬뽕’한 것들이었다. 또 이들은 모나코, 나폴리, 몰디브 등의 이름을 달고 있었다. 정원수로는 플라스틱 야자수를 심어 가능한 모든 환상적 양식을 구현했다.

호텔과 모텔을 설계 및 건축하는 샤인21의 박승복 실장은 “업계에선 이를 총칭해 ‘지중해풍’이라고 한다. 특히 지방에서 인기”라고 말했다. 박홍순 씨는 이 같은 ‘지중해풍’ 궁전을 찍기 위해 ‘핀홀’ 렌즈와 디지털 카메라를 결합해 새로운 사진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핀홀’ 렌즈는 원시적인 ‘바늘구멍’ 원리를 이용한 것. 그 결과, 사진의 입자는 거칠어지고 형태는 뿌옇게 흐려진다.

욕망의 세계화, 궁전에 살렵니다

김동욱, ‘Paris Operahouse in Bucheon, Korea2005’(좌). 최희정, ‘2002 영암 신북’.(우)

박홍순 씨가 ‘핀홀’을 사용한 이유는 카페, 모텔, 예식장의 ‘정형화’된 외관이 일종의 ‘사회적 관음증’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간판이 없어도 ‘지중해풍’ 궁전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뻔히’ 안다. 박홍순 씨는 “술 한잔 마시고 어스름 저녁에 그런 곳을 찾아가는 눈-핀홀-에는 조잡한 모텔이 성으로, 시퍼런 자동차 가리개 천막이 녹음 짙은 덩굴로 보일 것”이라고 말한다.

역시 사진작가 김동욱 씨의 ‘그림 사진’ 개인전도 궁전을 촬영한 것이다. 피사체는 티베트의 포탈라 궁전, 모스크바 크렘린 성벽과 붉은 광장, 베이징의 자금성, 이집트의 스핑크스 등이다. 대개 유명한 왕궁들인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사진의 초점이 맞지 않는다. 제목도 ‘붉은 광장, 한국 부천’이란 식으로 붙여져 있다.

“모두 가짜입니다. 놀이공원 미니어처를 촬영한 것이죠. 사람들은 사진이니까 진짜겠거니 믿습니다. 대형 카메라를 이용해 의도적으로 초점을 흐렸기 때문에 자세히 들여다보던 사람들은 순간 놀라게 됩니다. 이런 가짜 궁전은 모두 ‘불모의 땅’에 세워집니다. 억지로 개발된 주변부 및 위성도시에 문명의 랜드마크나 유서 깊은 궁전을 ‘가짜’로 만들어놓고 즐기는 것이죠.”

이들 두 사진작가의 작업과 사진작가 최희정 씨의 ‘The empty palace’를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최희정 씨는 2002년부터 광주와 주변 신시가지에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고 있는 가짜 궁전을 촬영했다. 이들의 용도는 모텔과 유흥주점 등 여가를 소비하는 공간이거나 예식장이다. 양식은 그리스 신전과 중세의 성들을 섞어놓았다. 최희정 씨는 “이 가벼운 궁전에서 사람들은 왕자나 공주가 되고 싶어하지만, 결코 왕자와 공주가 될 수 없다. 이 도시는 꿈이나 환상이 돼버린 현대인의 슬픈 삶의 풍경”이라고 말한다.

최희정 씨의 작업이 앞서 언급한 두 작가와 달라 보이는 이유는 건물 정면을 매우 ‘선명’하게 찍었기 때문이다. 앞서 두 작가가 형식을 통해 궁전들의 허구성을 강조한 반면, 최희정 씨는 가짜 궁전에 대해 부정/긍정하지 않은 채 중립적인 ‘데이터베이스’로 보여준다. 이렇게 촬영된 사진은 ‘객관적’인 동시에, 서구의 귀족이나 상류층을 욕망의 기준으로 삼아 근대화를 이룬 한국인들의 획일화된 삶을 보는 작가의 주관을 드러낸다.

즉, 한 개인에게 연애와 결혼은 가장 사적이면서도 특별한 일생 일대 사건이다. 그러나 조금 거리를 두고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북한강 변 카페에 들어가 사랑을 속삭이고, 똑같은 모텔에 들어가 ‘관계’를 맺으며, 똑같은 장밋빛 꿈을 가지고 예식장에서 30분 간격으로 결혼하는 현실이 보인다. 최희정 씨의 사진은 우리가 가진 서구 콤플렉스의 한 전형성을 폭로한다는 점에서 유형학적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분류된다. 이에 비해 박홍순 씨나 김동욱 씨는 사진을 통해 동양화의 원리인 ‘전신사조(傳身寫照)’, 즉 대상의 외양 안에 숨겨진 정신과 진실을 찾으려고 한다.

서구 원전의 키치로서 한국인의 삶에 주목한 선도적 작가는 강홍구 씨다. 로댕갤러리에서 ‘풍경과 놀다’전을 여는 강홍구 씨는 몰락한 시골 풍경을 ‘세한도’라며 보여주거나, ‘역사인 체’하는 전국의 드라마 세트장을 보여준다. 그의 사진들은 서글픈 골계미 그 자체다.

임석재 이화여대 건축과 교수 등 전문가들은 “서양의 성과 왕궁의 외관을 어설프게 모방한 모텔이나 카페는 88서울올림픽 이후 처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서구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한국적 (최근엔 중국) 현상”이라고 말한다.

건축가 황두진 씨는 “엽기 궁전들은 모텔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국가가 앞장서 ‘욕망의 세계화’를 주도한 결과물 중 하나”라고 말한다.

‘지중해풍’ 궁전들에 ‘비판적’으로 주목한 이들은 오랫동안 우리 산하를 촬영해온 40대 이상 작가들이다. 젊은 작가들은 오히려 가짜의 매끄러움, 유치한 눈속임에 매력을 느낀다. 가짜야말로 진짜 우리라는 입장이다. ‘지중해풍’ 궁전들을 흐릿한 눈으로 즐길 것인가, 궁 안에 유폐된 진실을 찾아낼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은 미학적 분석이 아닌 사회적 태도다.

“젊은 관람객들은 사진을 이해하고 소화하려 하지 않아요. 보자마자 멋지다, 예쁘다며 폰카로 찍기 바쁘죠. 가짜를 찍은 사진을 또 찍습니다. 우리는 겉모양을 찍는 사진은 진실이 아니라고 믿어왔는데, 어느새 겉모양이 진실인 시대가 됐는지도 모르겠네요.”(김동욱)



주간동아 547호 (p56~57)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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