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실크로드를 가다⑥

죽음의 타클라마칸사막 버스로 ‘씽씽’

한반도 1.5배 황사 진원지 하루 만에 종단 … 민펑 시장서 위구르족 소박한 생활상 확인

  • 글·문건영 변호사 사진·서해성 작가

죽음의 타클라마칸사막 버스로 ‘씽씽’

죽음의 타클라마칸사막 버스로 ‘씽씽’

타클라마칸사막의 모래언덕.

올해 서울에선 황사가 유난히 심했다. 먼지 입자들이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건물들을 뿌옇게 만들고, 해를 직접 쳐다볼 수 있을 정도로 빛을 가렸다. 황사가 내려앉은 서울의 모습은 그보다 더 사나운 먼지 속에서 겨우 숨쉬고 살아가는 실크로드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타클라마칸사막은 황사의 진원지 중 대표적인 곳이다. 면적이 33만8000km2로, 한반도의 1.5배에 달한다. 이곳이야말로 동과 서를 단절시켜놓았던 사막이다. 하지만 인간은 얼마나 용감하면서도 무모한가. 이 거대한 사막 안으로 뛰어들다니 말이다. 타림분지의 실크로드에는 서역북로와 서역남로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지선들이 많았고, 그중에는 타클라마칸사막을 종단하는 길도 있었다. 아무리 낙타와 함께라고 하더라도 모래 위를 걸을라치면 낙타들조차 발이 푹푹 빠졌을 것이다. 둔황에서 밍샤산을 둘러볼 때 낙타를 타보았다. 낙타란 놈이 큰 눈을 껌벅이며 코를 벌렁거려서 순해 보여도 실은 맹수이기 때문에 성미를 건드렸다가는 혼쭐이 난다. 낙타 등 위는 생각보다 훨씬 불편했다. 낙타가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꿀렁꿀렁 몸이 흔들렸다. 대상들은 어떻게 이런 걸 타고 사막을 건넜을까 싶었다.

중국, 석유와 천연가스 개발 목적으로 아스팔트 포장

죽음의 타클라마칸사막 버스로 ‘씽씽’

타클라마칸사막을 종단하는 도로 인근에 위치한 상점과 대형 입간판(아래).

그런데 중국은 1993년에서 95년에 걸쳐 타클라마칸사막을 종단하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건설했다. 매장돼 있는 100억t이 넘는 석유와 천연가스를 개발하기 위해서였다. 그 덕분에 버스로 아스팔트 길을 달려서 남쪽 오아시스 도시에까지 갈 수 있었다. 민펑까지는 꼬박 하루가 걸렸다.

우리가 갔을 때는 다행히 바람이 불지 않아 모래들이 얌전했다. ‘塔里木沙漠公路(탑리목사막공로 : 타클라마칸사막 공로)’라고 씌어 있는 입간판이 사막의 입구임을 알린 뒤에도 얼마간은 나무와 풀들이 보였다. 며칠째 사막 지역을 다니다 보니 낙타풀은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키 큰 나무들은 낯설었다. 하얗게 말라서 죽은 것 같기도 했고, 몸을 꼿꼿이 세우고 잔가지들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 모습을 보면 살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죽은 것이냐는 우리 질문에 황미선 씨는 그 나무들은 호양나무이고 3000년을 산다고 설명해주었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 년, 그리고 누워서 썩지 않고 또 천 년을 산다는 것이다. 나무의 특성이 그렇기도 하지만 건조한 기후도 큰 이유가 됐다. 그러니 호양나무들 중에서 죽은 것과 산 것을 구별하려는 일은 무의미했다. 아스타나 고분군에서 발견된 시신을 보면 이곳에서는 사람도 고스란히 건조돼 미라로 남는다. 마른 사막에 삶과 죽음이 섞여 있었다.

죽음의 타클라마칸사막 버스로 ‘씽씽’

카쉬가르의 악기점(왼쪽). 산아제한이 국가의 기본 정책임을 알리는 민펑호텔 입구의 입간판.

갈수록 나무와 풀의 수가 줄더니 양쪽 길가에 검은 선들이 나타났다. 풀과 키 작은 나무들이 이번에는 선들을 따라 가지런히 줄을 맞춰 심어져 있었다. 실크로드에 오기 전부터 바람이 불어 길이 모래로 뒤덮이는 걸 어떻게 막는지 궁금했는데 해답이 거기에 있었다. 검은 선의 정체는 식물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물을 대는 파이프였다. 길 양쪽에 20가닥씩 평행으로 놓여 있는데 일정한 간격으로 구멍을 뚫어서 물이 나올 수 있도록 했다. 그 식물들이 좀더 자라면 뿌리로는 모래를 움켜쥐고 가지로는 모래 바람을 막아줄 것이다. 더 바깥쪽에는 모래가 길 위로 날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방사막을 쳐두었는데 이미 바람에 넘어지거나 모래에 묻혀버린 부분도 많았다.

장엄하면서 두려움 느끼게 하는 사막

버스가 휴식을 위해 잠시 멈춘 틈을 타 길가의 파이프와 작은 호양나무들을 넘었다. 그러자 끝없이 펼쳐진 모래사막이 본모습을 드러냈다. 저절로 입이 벌어지며 탄성이 나왔다. 사구들은 멀어질수록 크기를 줄이면서 땅 끝까지 이어져온 지구를 뒤덮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밤에 어둡고 깊은 바다를 보고 있으면 왠지 무섭듯이 타클라마칸사막을 가로지르는 길 위에서 보는 사막은 장엄하면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장난으로라도 그 안으로 들어갔다가 방향을 잃으면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실제로 사막은 수많은 탐험가와 상인들의 뼈를 삼키고 있었다. 낙타를 타든 어떤 수단을 사용하든 사람들이 이곳을 건넜다는 사실 자체가 믿어지지 않았다.

길 중간에는 주유소와 휴게소를 겸한 식당도 있었다. 식당은 겉에서 보면 허름한 판잣집 같았지만 안은 나름대로 정결했다. 사막 인심이 꽤 좋아서 음식도 푸짐하게 나왔다. 재미있는 것은 사막의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대형 입간판에 씌어 있는 글귀였다.

‘征戰死亡之海/只有荒凉的沙漠/沒有荒凉的人生 정전사망지해/지유황량적사막/몰유황량적인생)’.

‘사망의 바다를 정복하다. 오직 황량한 사막이 있을 뿐 황량한 인생은 없다’는 뜻이었다. 공공사업을 기념해서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니, 중국인들의 감성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인간은 공포를 느끼면서도 목숨을 걸고 끊임없이 도전했던 사막을 이젠 정말 정복한 것일까.

사막 정복 결코 포기 않는 인간들 도전 계속

한 달 전쯤 우리나라에 황사가 심할 때 투루판 등 신장웨이우얼 지역 등지에서는 강풍을 동반한 황사로 10명 이상이 숨지거나 실종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베이징에서도 황사와 스모그가 뒤섞인 최악의 대기오염 사태가 이어져 거리에 인적이 끊겼다고 했다. 사진 속의 베이징은 자동차가 대낮에 전조등을 켜고 달리는데, 뒤따르는 자동차의 형체가 먼지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중국의 사막화 속도가 빨라져서 현재 연평균 3436km2가 사막화되고 있다고 한다. 역시 사막은 정복되지 않았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인간들의 오래된 도전이 계속될 뿐이다.

차창 밖의 풍경은 변함없이 이어졌다. 한참 졸다가 봐도 사구들은 때로는 겸허한 모습으로, 때로는 사나운 표정으로 의연히 버티고 있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가고 있으니 사막의 넓이를 몸으로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무들이 조금씩 나타나는가 싶더니 초원지대가 펼쳐졌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무의식중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의외의 감정이었지만, 사막은 버스로 통과하는 사람에게조차 부감담을 안겼던 모양이다. 도시에서와 달리 자연에서 물은 온 세상의 색깔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했다. 갈색 세계에서 물은 풀과 나무, 새와 낙타의 다채로운 색깔을 만들어냈다. 사막 끝에 이어지는 초원은 다른 초원들과는 느낌이 퍽 달랐다.

저녁 무렵이 돼서야 민펑의 작은 호텔에 도착했다. 타클라마칸사막의 아래쪽에 위치한 민펑만 하더라도 보통 관광객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곳이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떠나야 했기 때문에 짬을 내 바자르(시장)를 둘러봤다. 바자르는 우리의 실크로드 여행에서 그나마 그곳 사람들의 표정과 생활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민펑의 바자르는 작고 소박했다. ‘이솝우화’ 같은 책의 삽화에나 나올 법한 수레를 끄는 어린 나귀를 발견하고는 그 뒤에 살짝 서서 사진을 찍었다. 군복 외투를 입고 삐딱하게 옆에 서 있는 아저씨가 좀 무서웠지만 그 역시 내가 나귀를 구경하듯 나를 구경하는 눈치였다. 땅바닥에 늘어놓고 팔고 있는 갱지로 만들어진 노트며 원고지들은 어렸을 때 쓰던 것과 비슷해서 정겨웠다. 위구르어로 씌어 있는 제목은 ‘연습장’ 정도의 의미일 것이었다. 말이나 양은 도살한 모양 그대로 걸어두고는 그 자리에서 조금씩 잘라 팔았다. 바닥에 구겨져 있는 가죽에 살점이 조금 붙어 있는 것을 보니 우리 모두가 사자 무리의 일원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둥그런 둥치를 그대로 도마로 사용해서 과자를 만들어 파는 아저씨의 손놀림을 구경하기도 했다. ‘저렇게 열심히 만들어 팔면 얼마나 벌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호텔로 돌아왔다.

그날 밤 사막의 한쪽 가에 서서 끝없이 펼쳐진 사막을 바라보고 있는 꿈을 꾸었다.



주간동아 2006.06.20 540호 (p88~90)

글·문건영 변호사 사진·서해성 작가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41

제 1241호

2020.05.29

정대협 박물관 개관 당시 5억 원 행방 묘연, 윤미향은 그 무렵 아파트 현찰 매입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