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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근 특파원의 파리통신

佛 학생시위, 화염병 대신 기타

佛 학생시위, 화염병 대신 기타

佛 학생시위, 화염병 대신 기타
이달 프랑스의 지성을 상징하는 소르본 대학에서 벌어진 학생-경찰 간 물리적 충돌을 TV로 지켜보며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경찰은 최루탄을 쏘고 학생들은 집기를 던지며 저항하는 일이 이 나라에서도 벌어지는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런 광경은 요즘 한국 대학에서도 보기 힘든 일 아닌가.

프랑스 대학생들의 거리시위를 보기 위해 소르본 대학 진압 사태가 있고 난 뒤 첫 대규모 시위가 열리는 시위 현장을 찾았다. 현장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은 젊은이들로 시끌벅적했다. 1987년 여름, 대학 신입생이던 기자는 아무것도 모르고 선배들 손에 이끌려 서울역 광장으로 나갔었다. 신림동에서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하던 당시의 두근거림이 다시 밀려왔다.

집결 장소에 내리는 순간 예상과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이건 시위장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제각각이었다. 한쪽에선 음악에 맞춰 춤을 추었고 다른 곳에선 맥주판이 벌어졌다. 버스 정류장 지붕에 올라가 몸을 흔드는 힙합 바지 차림의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다. 경찰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점도 특이했다. 아무리 평화 시위로 예정돼 있다 하더라도 교통을 정리하는 경찰 정도는 있을 텐데 말이다.

시위대가 행진하는 거리 곳곳에는 시민들이 나와 구경이 한창이었다. 시위대에 합류해 함께 춤추고 행진하는 어른들도 적지 않았다. 한 40대 남성은 “노동조합의 시위는 딱딱하지만 학생시위는 자유롭고 즐겁다”며 동참 이유를 설명했다. 시내로 향하는 길목에 이르러서야 경찰이 나타났다. 차량과 철망으로 바리케이드를 친 무장경찰 20여 명이 시위대를 가로막았다. 수만 명에 이르는 학생들이 고작 이 20여 명의 경찰에 가로막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라면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나가는 데 단 몇 분도 걸리지 않을 상황이었다.

학생들이 다가오자 경찰이 최루탄을 던졌다. 한꺼번에 여러 개를 던지지도 않았다. 학생들이 다가올 때마다 한 개씩 학생들의 앞쪽에 ‘얌전하게‘ 던졌다. 매캐한 냄새가 퍼졌다. 오랜만에 맛보는 최루탄 냄새지만 한국에서 맛봤던, 아직도 눈과 코가 기억하고 있는 그 매운맛은 결코 아니었다. 그래도 학생들은 눈물 콧물을 쥐어짜며 죽는다고 아우성이다. 잠시 후 젊은이들이 경찰을 향해 마시던 맥주병을 던지기 시작했다. 돌도 날아들었다. ‘짱돌’을 만들 만한 보도블록이 없는 탓에 인근 공원의 자갈을 주워 날랐다. 그런 와중에도 100m가량 뒤에선 학생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이틀 뒤 벌어진 더 큰 시위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차량을 불태우며 경찰과 대치하는 일부 젊은이들을 제외하고 나머지 학생들은 대부분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두 모습이 한곳에서 공존하는 모습에 궁금해하자 한 시민은 “경찰과 싸우는 쪽은 학생이 아니라 폭력을 즐기는 무리들”이라고 설명해줬다.

상황이 이런데도 차량이 불타고 경찰이 무력 진압하는 자극적인 현장이 외신을 타고 전파되고 있다. 하지만 기자가 지금까지 경험한 진짜 프랑스 대학생의 시위는 돌과 화염병, 방화가 아니었다. 춤추고 노래하고, 브라스밴드의 공연이 진행되는 즐거운 현장이었다. 잡상인이 모여들고, 일반 시민이 가족 단위로 구경을 나오는 축제 한마당이었다.



주간동아 2006.04.04 529호 (p6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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