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2

2006.02.14

민간 직통전화·화상 상봉 ‘격세지감’

이산가족 비공식 상봉의 현장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6-02-08 11:30: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민간 직통전화·화상 상봉 ‘격세지감’
    요즘 세상은 시위를 떠난 화살만큼 빠르게 변화한다. 남과 북도 예외가 아니다. 설을 며칠 앞둔 1월23일과 27일, 경기도 파주와 강원도 고성의 남북출입국사무소에 분단 이후 최초로 환전소(우리은행)가 들어섰다.

    지난해 12월28일에는 개성공단과 남한 간 민간 직통전화가 열렸다. 이제 북한 땅 개성에서 제주도든 울릉도든 남한 어느 곳과도 직접 통화가 가능해졌다. 아쉬운 것은 국내 통화료가 아닌 국제 통화료를 부담해야 한다는 것.

    지난해 11월까지 12차 남북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진행됐고, 8월15일에는 화상상봉이라는 새로운 채널이 개통됐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모두 1만1800명의 남북 이산가족이 만났다. 남북 간의 이런 변화는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10년 전인 1996년에는 남한 가족이 북한에 거주하는 이산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직접 만나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로 여겨졌다. 거액의 사례비를 요구하는 중간 브로커들이 활개를 쳤고 사례비를 떼이는 일도 허다했다. 어렵사리 성사된 만남도 먼발치에서 스치듯 얼굴을 확인하고 숨죽이며 눈물을 훔치는 정도에서 만족해야 했다.

    그해 2월8일자 주간동아가 소개한 한 남북이산가족의 애틋한 상봉 사례다.



    “신의주 압록강변. 신모 씨는 유람선을 타고 북한 쪽 강변으로 접근했다. 어렸을 때 헤어져 형의 얼굴은 감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많이 늙긴 했어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경비원들 때문에 말 한마디 할 수 없었다. 빙빙 도는 유람선에서 눈을 마주치며 이따금 몰래 사진을 찍었을 뿐이다. 사진을 볼 때마다 어머니 눈에 흐릿하게 눈물이 맺혀 있는 것이 신 씨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한다.”

    당시 이렇듯 비공식적인 만남을 알선한 곳은 이산가족 상봉추진회, 한겨레상봉회 등 모두 11개 단체. 이들을 통해 가족을 찾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개월 안팎, 비용은 생사 확인에 50만~100만원, 상봉에 300여만원 정도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언제 적 일인가’ 싶다. 10년 후 남북관계는 어떻게 변해 있을까. 통일된 그날에 오늘을 생각하며 또다시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한다면 과욕일까.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