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0

2005.08.30

10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열혈청년’ 법복 입고 컴백

  • 시드니=윤필립/ 통신원 phillipsyd@hanmail.net

    입력2005-08-26 12: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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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열혈청년’ 법복 입고 컴백
    호주를 방문하던 찰스 영국 왕세자에게 달려들어 장난감 권총으로 위협했던 앳된 얼굴의 대학생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호주에서 태어난 교포 2세인 데이비드 강(34)은 캄보디아 수용소의 참상을 세상에 알리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여의치 않자, 1995년 찰스 왕세자를 위협하는 충격요법을 택한 것이다. 필자는 10년 전 주간동아 2호에 이를 보도한 바 있다.

    필자는 당시 사건의 현장에 있었다. 갑자기 군중 앞쪽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와서 행사장 곳곳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보니 화면에 한 동양인이 붙잡혀 끌려가는 모습이 비쳤다. 그때 누군가 “찰스 왕세자가 총에 맞았다”고 소리를 질렀다.

    군중은 술렁대기 시작했다. 간간이 “아시안 놈들”, “바보 같은 공화국 지지자들”이란 말이 들려왔다. 등골이 오싹하는 전율이 느껴졌다. 행사장을 빠져나오려는 순간 군중의 요란한 박수소리가 들려왔고, 스크린에는 찰스의 건재한 모습이 비쳐졌다. 그리고 축제는 계속됐다.

    찰스 왕세자를 공격한 사람은 한국계 대학생 데이비드 강으로 밝혀졌다. 당시 그는 맥콰리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고 있었는데, 이 학문은 기독교 중심의 서구문화사를 탈피하기 위해 소수민족에 관한 연구를 주로 한다.

    10년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열혈청년’ 법복 입고 컴백

    주간동아 창간 2호(1995년 10월5일자)에 보도된 데이비드 강 기사.

    데이비드 강이 캄보디아 난민을 처음 찾은 이유도 문화인류학 연구의 연장선에서였다. 그러나 수용소에 갇혀 있는 어린이들의 참상을 목격하고 난 뒤부터 그의 인생 방향은 인권운동 쪽으로 급선회했다. 시간제 근무로 일해서 번 돈을 수용소에 갇힌 어린이들을 위해 모두 썼고, 나중엔 그가 소유하고 있는 가장 큰 재산인 피아노까지 처분해서 그들을 도왔다. 데이비드 강은 자신의 활동을 더욱 효과적으로 펼치기 위해 호주의 주요 인사들에게 난민구호를 호소하는 편지를 500여 통이나 보냈다. 하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어 고민하던 중, 호주 공화국 운동을 잠재우기 위해 찰스 왕세자가 시드니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는 이 순간을 이용하기로 결심하고는 장난감 딱총을 사서 행사장으로 갔다. 물론 그의 손에는 ‘캄보디아 난민을 인도적으로 처우하라’는 전단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찰스를 향해서 돌진했다. 어찌 보면 무모한 행동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그만큼 효과적인 홍보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소란행위는 전 세계가 깜짝 놀라는 뉴스가 됐다.



    이후 데이비드 강은 롱베이 감옥에서 얼마간의 형기를 마친 다음 사회봉사명령으로 처벌을 마무리지었다. 데이비드 강이 무엇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는지가 밝혀진 뒤에도 호주의 입헌군주제 지지자들은 공격의 상대가 찰스였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강하게 비난했다. 하지만 일반인들의 생각은 달랐다. 저명한 변호사가 나서서 그를 무료 변론했는가 하면, 소액의 돈을 그의 집으로 보내온 사람들도 있었다. 캄보디아 교민사회에서도 데이비드 강의 행동에 감사하며 법정 앞에서 그를 위한 피켓시위를 벌였다.

    법적 처벌이 종료된 데이비드 강은 학업에 전념하면서 10년을 보냈다. 그는 맥콰리 대학 문화인류학과를 졸업하고 UTS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배리스터(법정변호사)가 되기 위해 시드니 대학 법과대학에 다시 입학했다. 그 결과 호주의 법학도들이 가장 선망하는 배리스터 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으로 새로운 출발을 했다. 일반 변호사와 달리 법정변호사로 불리는 배리스터는 사회적 존경과 고소득이 뒤따르는 직업으로, 한인 교포로는 처음으로 이뤄낸 쾌거다.

    “배리스터로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시점에서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고 있다”는 데이비드 강은 지금도 남을 돕는 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소수민족을 돕는 것과 더불어 지난 2000년부터는 갑자기 늘어난 한국 유학생들과 워킹홀리데이 메이커들을 돕고 있다. 집 구해주기 등의 작은 일에서부터 법적 상담 등도 무료로 해주고 있다. 필자가 찾아간 일요일 아침에도 그는 한국에서 오는 워킹홀리데이 메이커를 픽업해주기 위해 10년은 적이 됐을 것으로 보이는 낡은 노란색 자동차를 몰고 시드니공항으로 향했다.

    문득 그가 다니는 교회의 진기현 목사가 ‘남을 돕는 일도 병’이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10년 전 발병한 데이비드 강의 ‘남을 돕는 병’이 어쩌면 고질병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도 함께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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