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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래 교수의 ‘과학 속 세상史’

도·감청은 인류 문명 필수악? … 세상은 정보전쟁 중

  • 전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도·감청은 인류 문명 필수악? … 세상은 정보전쟁 중

도·감청은 인류 문명 필수악? … 세상은 정보전쟁 중
도청 사건이 온 나라를 흔들고 있다. 휴대전화 도청이 불가능하다던 정부가 이제는 가능하다고 번복했다. 관계 장관이 해명한다고 나서 “국정원의 도ㆍ감청 대상은 기껏해야 1000명 정도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이들이다”고 답변했다가 눈총을 받기도 했다. 도청이 가능하리라는 심증은 갖고 있었지만 정부의 발표를 듣고 나니 시원하면서도 서운한 기분이 든다.

요즘처럼 인권(人權)이 화두가 된 시대에 도청이라는 단어에 불편한 생각도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든다. 수많은 인간이 모여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는 세상에서 혹시라도 누군가 반국가적 행위를 꾀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9·11테러 같은 끔찍한 사건이 이 땅에서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정부란 이 같은 사태를 감시하고 미연에 방지할 책임을 진 경찰기구이기도 하다. 이름이야 어찌됐건 이 같은 문제를 책임지고 예방할 국가기관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도청이 얼마나 광범위하게 가능하고, 또 얼마나 널리 행해지고 있는지는 현재 미국의 주도 아래 서방 국가들이 협력하여 하고 있는 전 세계 통신 감청망 ‘에셜론(사진·Echelon)’을 보아도 알 수 있다. 하루 30억 통화를 감시하고 있다는 에셜론 망은 미국,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영미계 선진국들의 협력 속에 은밀히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고용된 인원은 4만 명이고, 한 해 예산이 36억 달러(3조7000억원)에 달한다. 그런데 이 규모는 미국의 에셜론 담당기관인 국가안보국(NSA)에만 해당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는 이 기관 말고도 연방수사국(FBI)과 중앙정보원(CIA)도 존재한다.

에셜론 망은 120개가 넘는 첩보위성을 활용해 무선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해왔다. 그 핵심 본부는 앞에 말한 몇 개 나라 정보기관이 맡고 있지만 그 외에도 여러 지부가 전 세계에 배치돼 있다. 일본의 미 공군기지에는 일본 지부가 존재하고 한국에도 규모는 작지만 있다고 한다. 국제전화와 국제팩스, e메일 등 감청의 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통신수단은 없어 보인다.



말끝마다 ‘정보화 사회’를 부르짖는 세상이다. 정보를 남보다 먼저 알고, 그 정보를 독점하는 것은 현대사회에서 생사의 갈림길이 되는 중대한 문제이다. 때문에 개인과 단체, 국가 사이의 모든 경쟁과 투쟁의 바탕에는 정보를 얻기 위한 다툼이 있어왔다. 전기ㆍ통신이 없던 삼국시대에 이미 우리 선조들은 목숨을 담보로 한 첩자(스파이)를 적국에 보내 정보를 빼오려 했고,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는 암호 해독기술이 경쟁적으로 발달했다. 진주만에서 허를 찔린 미국은 반년 만에 일본군의 암호통신을 풀어내어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의 진출을 멈춰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전쟁에서만 정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는 세상 모든 분야가 피 말리는 정보전쟁의 각축장으로 변하고 있다. 에셜론 같은 강대국의 정보망이 세계를 감·도청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만 팔짱 끼고 정보기관을 자진 해체할 수도 없는 일이다. 도ㆍ감청은 인류 문명이 절대 버리지 못하는 필수악이 아닌가 생각된다.



주간동아 2005.08.30 500호 (p83~83)

전 한국외국어대 과학사 교수/ parkstar@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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