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0

2005.08.30

동북아 균형자를 향한 ‘몽골’의 대질주

전략 요충지·막대한 지하자원 4대 열강 ‘러브콜’ … 몽골리안 동질성, 한국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관심

  • 울란바토르=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5-08-25 18: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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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북아 균형자를 향한 ‘몽골’의 대질주

    ① 인구가 100만명에 달하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의 중심 수하바타르 광장 풍경. ② 몽골 전통양식의 거주시설인 게르(ger)와 몽골 양식의 건축물. ③ 몽골은 3000만 마리의 가축을 기르는 세계적인 목축국가다. ④ 몽골 전통 씨름 ‘버흐’의 복장을 한 젊은이들.

    2005년 8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대한민국의 소도시를 연상케 하는 풍광이 연출되고 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한국산 자동차, 한국어 간판, 한류 스타들의 포스터와 음악, 끊이지 않고 방송되는 한국산 드라마…. 몽골 젊은이들은 노천 카페에서 카스 맥주를 마시며 서울로 일하러 간 친구 얘기를 나눴다.

    “약 2만5000명의 몽골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일하며 돈과 물건을 보내오고 있어요. 90년 이전에는 러시아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지만, 지금은 단연코 한국입니다.”(앳띠마·22·몽골 대학생)

    택시기사부터 고급 관료에 이르기까지 한국어 한두 마디쯤은 건넬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한국어과에 진학해서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을 최고의 선택으로 여긴다. 아직 몽골에 익숙지 않은 한국인 관광객이라면 과도한 한류 열풍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 하지만 몽골인들은 “수천년간 몽골의 가장 친한 나라는 한국이었다”며 한국인들의 무관심과 몽골에 대한 저평가에 실망감을 내비친다.

    “몽골은 한반도를 피붙이 같은 동반자로 여겨왔다. 사회주의를 하던 시절엔 북한과 끈끈한 정을 나눴고, 자본주의로 바뀐 지금은 한국을 파트너로 삼고 싶어한다. 그런데 한국은 몽골에 대해 너무 무지한 것 같다.”(돌구르마·25·인하대 정치학과 유학생)

    택시기사부터 고위층까지 한국어 한두 마디 구사



    1990년 수교 이후 교류의 물꼬가 트이면서 몽골에 대한 한국의 관심도 꾸준하게 증가했다. 99년 김대중 대통령이 국가 원수로서는 처음으로 몽골을 국빈 방문한 뒤 몽골과의 교류액이 급증했다. 2000년 두 나라 간의 교역 규모는 5700만 달러로, 한국은 몽골의 4번째 교역국이 됐으며 그 거래액은 계속 상승 중이다.



    ■ 몽골

    국기 :
    동북아 균형자를 향한 ‘몽골’의 대질주
    면적 : 156만km2 (한반도 7.5배)인구 : 260여만명수도 : 울란바토르대통령 : 남바린 엥흐바야르 인민혁명당(MPR)

    동북아 균형자를 향한 ‘몽골’의 대질주

    2003년 10월, 지금은 대통령이 된 엥흐바야르 당시 총리(왼쪽)가 노무현 대통령을 예방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01년 2월 방한한 바가반디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건배를 하고 있다. 2003년 6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은 몽골을 방문하여 3억 달러 수준의 저리 차관을 제의했지만 거절당했다(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600여개의 합작회사가 세워졌고, 한국에서 일하는 몽골 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보내는 송금은 몽골 경제의 중요한 버팀목이 됐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y C&C가 몽골의 제2 이동통신사로 몽골의 이동통신 붐을 주도하고 있으며, 몽골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한국 기업의 투자도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정부나 대기업의 투자보다는 의료·교육·IT(정보기술)·종교 등 민간분야의 교류가 더 활발한 편. 현재 2000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몽골에 정착해서 몽골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데, 울란바토르 대학 등 한국인이 세운 5개의 교육기관과 교회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세운 각종 장학재단은 몽골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동북아 균형자를 향한 ‘몽골’의 대질주

    몽골 시내를 질주하는 한국산 중고 자동차 모습. 몽골 자동차의 60%는 한국산이다.

    이러한 교류에도 몽골은 그러나 여전히 미지의 땅이다. 몽골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부족했던 탓인데, 그 결정적 이유는 인구가 260여만명에 불과한 작은 시장이라는 점과 바다를 끼고 있지 않아 항공교통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했다는 점이다. 서해 건너의 중국 산둥성의 인구가 1억명에 육박한다는 점과 비교해보면 몽골 시장의 열등성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같은 취약점 때문에 몽골은 근대에 들어서도 동북아시아의 주요 세력에 끼지 못했다. 우리는 몽골을 소련에서 독립한 CIS(독립국가연합)와 비슷한 나라로 대해왔다.

    “몽골은 분명히 아시아 국가이고, 동북아 시대의 한 축으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몽골이 제 목소리를 낼 때 비로소 동북아의 평화체제가 구축될 수 있습니다.”(몽골 국립대 바르토르 교수)

    요즘 몽골의 주가는 연일 폭등세다. 과거 열강들이 취했던 몽골 홀대 정책이 점차 약해지고 몽골이 적극적으로 동진 정책을 취하면서, 몽골이 요충지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 미국·러시아·중국·일본 등 4대 열강이 앞다투어 몽골에 러브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열에서 빠진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몽골이 주목받는 이유는 첫째,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몽골은 지구상에서 가장 커다란 내륙국가로 러시아와 3480km, 중국과는 4673km라는 장대한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몽골은 오랜 기간 중국과 긴장관계를 형성해왔는데, 이는 중국을 견제하고 싶은 미국의 이해와 맞아떨어졌다. 미-일 동맹은 앞으로 최대 경쟁자가 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할 요충지로 몽골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몽골이 갖고 있는 막대한 지하자원이다. 전임 대통령인 바가반디가 공식석상에서 “금덩이를 깔고 앉아 굶고 있는 딱한 처지”라고 말할 정도로 몽골은 지하자원이 많다. 세계 8대 자원 부국으로 불리는 몽골은 1000억t의 석탄과 5.4억t의 구리, 고비사막에 매장된 50억 배럴의 석유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자원이 개발된다면 몽골은 희망으로 가득 찰 것이다.

    “몽골은 중·소 양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소국이지만 문화적 자존심을 바탕으로 생존에 성공했습니다. 러시아의 영향력이 줄고, 최근에는 미국의 영향력이 급증했습니다.”(역사연구소 양혜숙 박사)

    “몽골은 아시아 국가, 동북아 한 축으로 성장”

    몽골에 대한 미국의 태도는 극진하다. 클린턴 대통령이 재임할 당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몽골을 방문한 뒤 미 국무부 고위 간부들의 몽골 러시가 시작됐다. 올해 초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을 비판하면서 “몽골과 필리핀처럼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민주화는 더욱 촉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몽골은 미국이 추진하는 대(對)중국 포위전략의 포스트인 셈이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2월 바가반디 당시 대통령을 백악관에 초청해 환대를 베풀었다. 형식은 이라크에 217명의 전투병을 파병해준 데 대한 감사의 자리였으나, 미 공군기지를 몽골에 설치하려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바가반디는 부시 대통령에게 몽골과 미국 간의 자유무역협정 체결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동북아 균형자를 향한 ‘몽골’의 대질주

    몽골 시내를 질주하는 한국산 중고 자동차 모습. 몽골 자동차의 60%는 한국산이다.

    몽골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급증하자, 러시아와 중국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두 나라는 몽골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서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공조를 모색하고 있다. 2003년 6월5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주석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몽골을 택했다. ‘철의 여인’으로 통하는 우이 부총리도 5월26일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취소하고 몽골로 달려갔다.

    하지만 중국의 구애는 몽골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2억 달러 이상의 저리 차관을 주겠다고 제의했으나 몽골은 “경제가 예속되면 정치 또한 예속된다”며 거절한 것이다.

    몽골의 반중(反中) 의식은 뿌리가 깊다. 청나라 때 빼앗긴 내몽골(중국의 내몽고 자치주) 지역은 몽골이 꼭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수복 지구다. 그래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공동 보조를 취해줄 나라는 몽골뿐이라는 평까지 나온다. 이러한 반중 정서가 몽골을 미국 쪽으로 기울게 하는 요소가 된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또 어떠한가. 러시아는 시베리아 및 극동러시아의 인구감소로 고민하고 있다. 이 공백을 중국인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런데 몽골이 동진 정책을 펼치면서 이것이 중국의 팽창을 막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적극적인 유화정책 없이는 몽골을 붙잡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작용했는지 2003년 12월31일 러시아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대(對)몽골 차관을 98% 탕감해주겠다는 호의를 베풀었다. 몽골은 러시아에 대해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호감을 갖고 있으나 사회주의 몰락 이후 유대감은 점차 엷어지고 있다.

    한국의 대륙 몽골, 몽골의 항구 한반도

    해양세력 일본의 몽골에 대한 관심도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일본은 100여년 전 도쿄대학에 몽골어 학과와 만주어 학과를 세울 정도로 중앙아시아 연구에 매진했다. 이러한 관심은 1930~40년대 만주와 내몽골 지배로 이어졌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히틀러의 슬라브 침공과 마찬가지로 내몽골과 만주 지역을 향후 일본 민족의 터전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래서인지 일본은 정부 차원의 몽골 지원과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광산 채굴권도 상당 부분 일본에 넘어간 상황이라고 한다.

    세계 열강들의 몽골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만큼 몽골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증가하고 있다. 몽골의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몽골이 앞으로 전략적인 동맹으로 삼아야 할 나라로 4대 강국을 제치고 한국이 꼽히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몽골공산당의 후신인 인민혁명당(MPR) 대통령들(1대 오치바트가, 2·3대 바가반디, 4대 엥흐바야르)과 야당인 민주당도 친한파로 자처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유목국가에서 농업국가로의 전환을 꿈꾸는 몽골은, 울란바토르 동쪽 지역에 대한 농업 개발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농업 발전을 바탕으로 시베리아철도를 통해 두만강을 거쳐 동해 쪽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몽골 정부는 한국의 기술과 자본, 몽골의 토지, 북한의 인력이 조화를 이룬다면 북한의 식량난은 물론 몽골과 한국의 경제적 이득까지 챙길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한반도는 몽골의 항구가 될 수 있고, 몽골은 한반도의 대륙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땅을 한국에 100년간 조차하자는 의견에서부터 국가 연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급진적 논리까지 등장하고 있다.

    “몽골의 고민은 적은 인구로 인해 넓은 땅 덩어리를 지킬 수 없다는 점이다. 내몽골 인접 지역에 한국이 적극적인 투자를 해 농업이 발전된다면 몽골은 국방과 경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재몽골 한인회 이현재 씨)

    몽골 각종 여론조사 “한국을 전략적 동맹으로 삼아야”

    그러나 한국의 몽골에 대한 투자를 막는 요소는 적지 않다. 적은 인구와 열악한 경제 인프라, 낮은 교육 수준, 그리고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강대국의 견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끝간 데 모를 광활한 토지와 무한정에 가까운 광물자원은 반도에 갇힌 한국에 커다란 유혹이 아닐 수 없다.

    “1218년 칭기즈칸 시대에는 ‘두 나라가 영원히 형제가 되어 자손만대로 오늘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는 우호적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1999년 5월 김대중 대통령 몽골 국회 연설 가운데)

    7세기 중엽 고구려와 돌궐(옛 몽골)의 강고한 연맹은 당나라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와 두 나라의 동반 몰락을 초래했다. 하지만 똑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는 것이 역사이기도 하다. 몽골리안이라는 동질성과 고구려 시대 이래의 오랜 우호관계, 그리고 근래 한류 열풍으로 다져진 친밀감이 한-몽 관계의 상징어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몽골의 등장이 21세기 동북아 지형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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