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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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한 범죄, 사형 그리고 억울한 죽음 가능성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입력2004-08-06 14: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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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흉악한 범죄, 사형 그리고 억울한 죽음 가능성
    ‘찰스 린드버그’. 처음으로 대서양 횡단 비행에 성공해 일약 영웅이 된 미국의 비행사다. 그런데 이 영웅의 이름은 세계 범죄사의 한 페이지에도 올라 있다.

    범죄자로서가 아니라 그의 가정에 닥친 비극적 사건의 피해자로서인데, 다름아닌 어린 아들 유괴사건이다. 횡단 비행 성공 뒤 명문가 규수와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린 린드버그의 두 살배기 아이가 어느 날 아침 사라진다. 곧이어 아이를 납치했다는 유괴범한테서 협박이 들어온다.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지만 아이는 돌아오지 않고, 마침내 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시체가 발견된다.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이 사건에 경찰은 모든 수사력을 동원하지만 허탕만 치면서 시민과 언론의 빗발치는 비난을 받는다. 그러다 몇 년 뒤 드디어 유력한 용의자를 잡는 데 성공한다. 하우프트만이라는 독일 출신 이민자였다. 수사와 재판을 거치면서 몇 가지 석연치 않은 점들이 드러났으나 이미 그를 범인으로 단정한 경찰은 이를 무시하고 언론도 이를 주목하지 않는다.

    국민적 공분을 자아낸 살인마에게 추호의 자비도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미국 정부는 어린이 유괴범을 사형할 수 있는 법까지 제정한다. 이름 하여 ‘린드버그 법’. 이 법에 따라 하우프트만은 교수형을 당하고 사건은 종결된다.

    이 사건은 나중에 ‘세기의 범죄’라는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지는데, 그건 사건이 발생한 지 수십년이 지난 1996년이었다. 뒤늦은 영화화는 94년 하우프트만의 미망인 사망이 계기가 됐다. 그녀는 남편이 범인으로 지목돼 수사를 받을 때부터 죽을 때까지 60여년간 한결같이 남편의 결백을 주장했다.



    미망인의 시선을 따라간 영화는 하우프트만이 무죄였다고 분명히 결론을 내리지 않지만 그가 과연 범인이었을까라는 의문이 ‘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이라는 것. 즉 유죄라고 단정하기에 충분치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1950년대 말 영화 ‘나는 살고 싶다’는 뒷골목 삶을 살다가 살인범으로 몰린 바바라 그레이엄이라는 여자의 실화를 그린 작품. 영화 주인공 바바라 역시 줄곧 자신의 무죄를 주장했으나 끝내 사형된다. 영화는 당대의 스타 수전 헤이워드가 분한 바바라가 가스실에서 “살고 싶다”고 절규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사형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두 영화는 그러나 ‘사형제’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단지 두 사람의 죽음이 ‘억울한 죽음’이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두 영화로부터 각각 70년, 40여년 뒤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영화 ‘데드 맨 워킹(Dead Man Walking·사진)’이 던지는 질문은 좀더 본질적이다. 영화의 시선은 사형제 자체에 맞춰져 있다. 주인공인 사형수 매튜는 누가 보더라도 ‘인간 쓰레기’다. 잔인한 강간 살인죄를 저지른 데다 반성할 줄도 모르고 인종차별주의자이기까지 하다. 매튜 역시 무죄를 주장하나 영화에서 그건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동정의 여지가 없는 흉악한 범죄자라도 그의 목숨을 빼앗는 형벌을 가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다. 약물 주입으로 전신이 마비되고, 폐와 심장이 정지되면서 숨이 멈추는 과정을 기록영화처럼 보여주는 영화의 사형집행 장면은 ‘국가에 의한 합법적 살인’의 정당성을 묻는, 무언의 질의서와도 같다.

    최근 터진 연쇄살인범 사건이 우리 사회의 사형제 폐지 논의에 새로운 변수가 되고 있다. 이 희대의 살인범에 대해서야 어떠한 형벌을 내리더라도 동정의 여지가 없어 보이지만, 그것과 사형제라는 제도 자체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별개의 문제로 접근할 문제다. 사형제의 범죄 예방 효과라든가, 생명권의 절대성 여부 등 사형제를 둘러싼 논란은 해답이 나올 수 없는 성격이다. 다만 그 같은 논의의 출발점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태도는 하우프트만이나 바바라의 절규에 귀를 닫지 않는 일이다.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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