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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정몽헌의 유산

남북 작은 통일의 땅 ‘개성공단’

1주기 맞은 故 정몽헌 회장의 대북사업 결정판 …운영 성공 땐 경제적 윈-윈 등 엄청난 효과 '입주 눈앞'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남북 작은 통일의 땅 ‘개성공단’

남북 작은 통일의 땅  ‘개성공단’
큰일났습니다. 전쟁이 일어났어요.”1999년 6월 당시 정몽헌 회장은 10년여의 구애가 허사가 되는 건 아닌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서해에서의 남북간 교전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NLL(북방한계선)을 넘어온 북측 경비정들이 해군의 포격을 받고 화염에 휩싸인 채 북으로 패퇴한 것.

연평해전 직후 정회장은 상황을 파악키 위해 베이징(北京)으로 특사를 보낸다.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베이징에선 평양행 비행기에 오를 예정이던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팀이 출발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특사는 서둘러 북측 관계자를 찾았다.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리던 정회장은 베이징으로부터 급전을 받는다. 다행스럽게도 “사업은 계속된다”는 내용이었다. “게 좀 잡으려다 우발적인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금강산관광은 민족 사업이니 계속 진행된다”고 북측이 확인해준 것. 남북경협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었던 첫 번째 위기는 이렇게 넘어갔다.

두 번째 위기는 정회장 자신이 만들었다. 2003년 8월 정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남북경협은 또 한번의 위기를 맞이한다. 당시 언론은 “대북사업은 선장을 잃고 표류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를 실었다. 남북경협에서 정회장의 존재가 그만큼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회장이 남과 북에 남긴 ‘유산’은 선장의 부재로 무너질 만큼 간단치 않았다. 중앙대 이상만 교수(경제학)는 “정회장은 시스템으로 사업이 돌아갈 수 있을 만큼 북측에 신뢰를 심어주었다. 역사는 정회장을 남북 관계에 되돌릴 수 없는 물꼬를 튼 경제인, 통일의 초석을 놓은 거인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생전 ”개성시장이 소원” 개성에 애착

정회장의 유분이 금강산에 뿌려진 뒤 어느덧 한 해가 지났다. 8월4일 금강산에선 고인의 업적을 기리는 1주기 행사가 열렸다. 정회장은 남북경협의 선두주자요, 핵심 추진 주체였다. 정회장이 분단된 조국에 남긴 가장 큰 유산은 입주가 눈앞으로 다가온 ‘개성공단’이다.

정회장은 타계 직전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리종혁 부위원장에게 “내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개성시장을 해보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정회장에 대한 북측의 여전한 신뢰는 개성공단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개성시장이 되어 열정을 불태우겠다”는 바람을 현세에서는 이루지 못했으나 죽은 정회장이 개성공단을 일궈가고 있는 것이다.

정회장이 대북사업에 나선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지지부진하던 사업은 김영삼 정부 시절 ‘김일성 조문 파동’으로 치명타를 맞는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햇볕정책’을 내세우면서 대북사업은 마침내 격랑을 맞이한다.

그 즈음 북한도 변하고 있었다. 김일성 주석 사망 이후 ‘유훈통치’니 ‘고난의 행군’이니 하며 빗장을 내걸고 근근이 버텨나가던 북측은 99년 말 남측과의 관계 개선을 통한 경제협력이 불가피하다고 결론내린다.

정회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모두 5차례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5억 달러의 불법 대북송금이 막힌 물꼬를 트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음은 물론이다. 김위원장은 2000년 8월9일 이례적으로 정회장을 전용 요트로 초대한다.

“결심했소이다. 개성을 줄 테니 가서 구경해보시오.”

개성이라는 말에 정회장은 조금 놀랐다. 해주라면 모를까 개성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위원장의 개성특구 구상은 중국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조언에서 시작됐다. 중국은 홍콩과 인접한 선전(深土川), 대만과 인접한 샤먼(廈門)을 특구로 개발하면서, 특구를 사회주의 체제를 보호하는 일종의 완충지와 경제발전의 동력으로 삼았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장 전 주석이 김위원장에게 직접 개성을 거론하며 선전처럼 개발해보라고 충고했다”고 전했다.

남북 작은 통일의 땅  ‘개성공단’
김위원장은 개성을 내주기 2개월여 전인 5월29일부터 31일까지 중국에 머물렀다. 장 전 주석이 이때 개성특구를 김위원장에게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콩을 배후로 발전한 선전이 김위원장의 입맛을 다시게 했다는 후문이다. 10여일 뒤 개최된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측의 의지를 확인한 것도 김위원장의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김위원장은 신의주에 미련을 갖고 있었으나 장 전 주석은 신의주 특구에 대해선 부정적인 의견이었다고 한다. 김위원장은 정회장에게도 처음엔 북·중·러 국경지대인 나진·선봉을 제안했다. 현대 측이 나진·선봉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자 다시 내놓은 카드가 신의주다. 김위원장은 그 후 네덜란드 국적의 중국인 양빈(楊斌)을 내세워 신의주 특구 구상을 현실화했다 실패하고 만다.

99년 북측이 정회장에게 특구 지역으로 제안한 곳은 위화도와 위화도 인근 지역인 신의주의 일부다. 정회장은 특구로서의 가능성을 검토했으나 성공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결론지었다. 항구의 규모가 작은 데다 토사가 끊임없이 흘러 내려와 준설을 해야 했고 간간이 발생하는 수해도 걸림돌이었다. 게다가 북측은 삼성과 현대가 반반씩 나누어서 사업을 진행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정회장이 해주나 개성을 달라고 거듭 요구하자 김위원장은 1년 동안의 장고 끝에 결국 개성을 내준다. 해주는 군항이고 개성은 전력상 요충지라 둘 모두 앞마당을 내주는 꼴이었다. 한 관계자는 “중국이 화교와 대만 홍콩 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만든 선전 및 샤먼 모델을 받아들이기엔 북측이 자신이 서지 않아 시간을 끌었던 것 같다”고 풀이했다.

“개성을 주겠다”고 약속한 뒤 서두른 건 정회장이 아니라 오히려 북한이었다. 2002년 7월 자본주의적 요소를 대거 받아들인 경제개선 조치를 발표하는 등 북한은 급물살을 탄다. 개성공단에 대한 북한의 조바심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최근 탈북자 문제로 남북간 정치적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북측은 개성공단과 관련된 서류를 남쪽으로 보내왔다.

”북한은 더 빨리 변해야 한다”

“개성경제특구를 단순한 공업단지가 아닌 상업·관광·주거·물류가 어우러진 복합기능 도시로 발전시키고 싶다.”

9월 개성에 부임하는 개성공단 김동근 이사장이 “개성공단은 반드시 성공해야 하고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면서 밝힌 청사진이다.

김이사장은 북측 법인의 대표가 된 최초의 남측 인사로 공단 관리뿐만 아니라 개성경제특구의 행정권을 수행한다. 나진·선봉지구를 맡았던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장(김정우)이나 신의주특구의 행정장관(양빈)과 비슷한 일을 하는 자리다. 북한이 남한식 개발을 받아들인 데 이어 관리 운영권까지 통째로 내주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김이사장은 “개성공단은 남·북한 경제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한반도 긴장 완화를 통해 평화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면서 “개성공단의 성공으로 경협이 확대 심화되면 남북관계의 변화는 불가피해진다. 개성이 중국의 선전처럼 발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여의도 면적의 24배인 2000만평(공단 800만평, 배후도시 1200만평)에 조성되는 개성공단은 북방한계선을 기준으로 1km, 서울에서 60km, 평양에서 16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공장구역 총 800만평 중 1단계 100만평의 입주가 11월께 시작되며 총 사업비는 약 2200억원으로 추산된다.

2006년 하반기 1단계 입주가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경제특구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할 전망이다. 시범단지의 경우 평당 분양가격이 14만9000원, 임금은 월 57.5달러로 합의돼 채산성에서 비교적 경쟁력을 갖춘 편이다. 남의 자본과 북의 노동력이 어우러진 ‘Made in DPRK’ 제품은 이르면 11월 말부터 생산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개성공단 3단계 조성공사가 모두 마무리되면 2012년까지 9년 동안 직·간접적인 일자리가 남북에 각각 10만4000개, 72만5000개 새로 생길 것으로 전망된다. 더하여 남한 경제엔 연간 24조4000억원의 부가가치가, 북한엔 연간 6억 달러의 수입이 창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개성공단의 가장 큰 장점은 서울과 인천항에서 가깝다는 것이다. 일산에서 출퇴근할 수 있다는 말은 공연한 소리가 아니다. 중소기업진흥공단 동명한 남북협력지원실장은 “제대로 개발되면 한국 내 한계 사업의 구세주가 될 것”이라며 “언어 문제가 없어 교육이 쉽고, 중국과 비교해서는 인건비에서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개성공단 시범단지에 입주할 15개 중소기업은 현재 입주 준비가 한창이다. 봉제 섬유 신발 등 주로 국내에선 경쟁력이 없고 중국으로 옮기기도 여의치 않은 기업들이 선정됐다. 개성공단에 입주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려다 개성으로 U턴했다”면서 “중국 이전보다 경쟁력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성공단의 성공엔 걸림돌이 적지 않다. 우선 북핵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 IT·전자·전기와 관련된 전략물자 반출도 문제다. 바세나르 체제는 북한에 전략물자를 공급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설비가 전략물자 판정을 받으면 생산에 차질을 빚게 된다. 미국의 대적성국교역법도 뛰어넘어야 한다. 현재로선 ‘Made in DPRK’는 미국에 수출될 때 고관세를 물어야 한다.

남북 작은 통일의 땅  ‘개성공단’

6월 30일 열린 개성공단 시범단지 준공식.

반출된 물자에 대한 남측의 철저한 통제와 관계국과의 협조로 문제를 풀더라도 자본주의 체제의 자본가와 공산주의 체제의 노동자가 만났을 때의 ‘문화 충격’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다. 전경련 관계자는 “문제는 공장이 본격적으로 가동된 뒤에 발생할 것”이라며 “사람 관계에서의 문제는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물론 가장 큰 걸림돌은 북한의 변화 여부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북한이 더 많이 바뀌어야 개성공단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최근 북한에 다녀온 이상만 교수는 “거리의 분위기가 활기차게 바뀌는 등 빠른 변화의 속도를 느낄 수 있었다”면서도 “북한은 더 빨리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동용승 경제안보팀장은 “북한은 실리를 따먹는 데는 조바심을 내지만 변화의 속도는 빠르지 않다”고 밝혔다.

”개성공단은 ‘평화의 섬‘이 될 수 있을까”

북한은 왜 개성을 내놓았을까. 처지를 바꾸어 우리가 북한에 파주를 내줄 수 있었을까.

전문가들은 중국의 사례에서 북한의 의도를 미뤄 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은 경제개발에 나서기에 앞서 국경문제를 먼저 정비하려고 노력했다. 경제개발 역시 접경지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선전은 홍콩을 배후로 두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는 창구 구실을 하는 동시에 자본주의 사조가 내륙으로 퍼지는 것을 통제했다. 대만과 이웃한 샤먼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개성은 선전 및 샤먼과 입지가 유사하다. 사회주의 체제에 충격을 주지 않으면서 자본주의의 맛을 볼 수 있는 것.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군사적 측면이다. 개성은 군사분계선에 인접해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북측 인사들은 이따금 “군대까지 다 뺐다”는 말로 개성공단에 대한 의지를 표현한다고 한다. 군사적 긴장 완화는 개성공단의 성공 요건인 동시에 결과가 될 수 있다.

북한에서 경협사업을 주도한 것은 군부로 알려져 있다. 북한 군부는 개성공단과 관련해 중요한 결정을 했다. 개성 인근의 인민군 병력의 일부를 후방으로 재배치한 것. 남측 기업들이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곳에 군사시설을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개성공단은 휴전선을 가로질러 북방한계선을 지나자마자 나타난다. 공단이 완공되면 주력 부대의 군사대치선은 자연스레 임진강에서 예성강으로 북상한다. 개성-문산 축선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다. 남북이 각각 평양, 서울을 점령키 위해선 개성공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얘기다.

북한은 개성공단에 한국 기업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기업들이 입주하기를 원한다. 외국기업들이 개성에 대거 똬리를 틀면 개성특구가 평양의 보호막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이 전쟁을 막는 ‘평화의 섬’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한 군사전문가는 “유사시 북한은 개성을 인질로 삼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반대로 개성공단을 통해 남한에 대한 북한의 경제적 의존도가 높아지면 남침의 위험 또한 줄어든다. 이상만 교수는 “개성공단이 성공한다면 이는 곧 한반도의 평화번영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개성특구를 조언한 이유도 한반도의 안정을 원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북한이 살 수 있는 길은 자본주의 체제로의 점진적인 연착륙이다. 그러나 이는 정권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이다. 북한이 한정 개방을 선택하고 고심 끝에 입지로 개성을 내준 것은 체제안정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이루겠다는 의지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개성공단은 고 정몽헌 회장의 옥동자다. 비즈니스로 시작했으되 말년엔 분명 통일사업이었다. 북한이 개성공단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게 만든 일등공신이 정회장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한 대북사업 관계자는 개성공단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면서 “정회장의 가장 큰 유산은 남북경협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어놓았다는 점이다. 남북은 이제 내려올 수 없는 호랑이 등에 함께 올라탄 형국이다. 개성공단의 성공은 평화번영을, 실패는 돌이킬 수 없는 추락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447호 (p12~15)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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