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43

2004.07.15

오로지 골프 강요 자식 망칠라

  • 문승진/ 굿데이신문 골프전문기자 sjmoon@hot.co.kr

    입력2004-07-08 16: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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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박세리의 미국 진출 이후 ‘제2의 박세리’를 꿈꾸는 주니어골퍼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박세리를 비롯한 한국낭자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이루며 부와 명예를 동시에 얻었다. 주니어골퍼들에게 이들의 성공담은 희망과 용기를 심어줬다.

    주니어골퍼들의 실력을 보면 한국 골프의 미래는 밝다. 일찍부터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레슨을 받아 프로 못지않은 실력을 자랑한다. 올해 열린 국내대회에서 주니어골퍼들은 연일 ‘깜짝 돌풍’을 일으키며 리더보드 상단을 장식했다.

    내셔널타이틀인 한국여자오픈에서 최나연(대원외고 1), 추지영(대원외고 1)이 쟁쟁한 선배들을 제치고 각각 준우승과 4위에 오른 게 대표적 사례. 또 ‘한국판 미셸 위’라고 불리는 초등학생 장하나(12·반원초)는 이 대회에서 예선을 통과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러나 밖으로 드러난 성과 이면엔 문제점이 적지 않다. 주니어골프대회에 가면 선수들의 부모를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아버지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한때 학교에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이 불었다면, 필드에는 아버지들의 ‘바짓바람’이 문제다.

    큰소리로 코치하는 부모는 물론 경기가 끝나고 부진한 경기를 펼친 자식에게 스스럼없이 손찌검을 하는 아버지들도 허다하다. 한국여자오픈에 출전했던 장하나는 아버지가 주니어대회에서처럼 무심코 조언을 하는 바람에 골프룰 8조1항 ‘어드바이스 금지조항’에 따라 2벌타를 받기도 했다.



    일부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골프에만 전념하라고 강요한다. 이들은 학교생활이나 인성교육보다 골프 성적이 먼저다. 실제로 주니어골퍼들 가운데 상당수가 갖가지 편법으로 학교에 가지 않는다. 어떤 부모들은 “우리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고 하루 종일 골프채와 씨름한다”고 자랑하기도 한다.

    공부와 골프를 병행하는 게 주니어골퍼 사이에서는 오히려 ‘튀는 행동’으로 보이는 게 현실이다. 주니어골퍼를 둔 한 아버지는 “최소한의 학교생활만 시키고 있는데도 다른 학부형들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며 “마치 내가 자식의 발전을 망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고 말한다.

    차세대 스타로 손꼽히는 ‘천재소녀’ 미셸 위(한국명 위성미·14)의 생활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셸 위는 최고의 골퍼로 주목받지만 경기가 끝나면 또래들처럼 숙제를 걱정하는 평범한 학생으로 되돌아간다. 미셸 위 역시 골프선수로서 큰 꿈을 지니고 있으며 인생에서 골프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지만 미셸 위는 공부와 골프를 알맞게 병행하고 있다.

    일찌감치 골프를 평생 직업으로 선택한 주니어골퍼들에게 연습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하나의 인격체로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선 최소한의 인성교육도 필요하다. 골프만 잘 치면 된다고 믿는 부모들은 자식들을 ‘반쪽짜리 골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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