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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인스턴트 영웅시대'

‘영웅 갈증’…신데렐라는 뻥튀기였나

‘모시 공주’ 민영경씨 성공 거품 논란 가열 … 인물 검증 없는 매스컴 키우고 부풀리기 ‘합창’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영웅 갈증’…신데렐라는 뻥튀기였나

‘영웅 갈증’…신데렐라는  뻥튀기였나

2002년 11월에 방송된 ‘한민족리포트’ 장면들.

남아시아 상업의 중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시내 중심의 그랜드 하얏트 호텔… 최고급 명품 숍이 즐비하다. 이 하얏트 호텔 로비에서도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매장이 한국교포 2세가 운영하는 ‘모시’다.”

2002년 11월25일 방송된 KBS ‘한민족리포트-민영경, 모시옷을 입으세요’는 화려한 호텔 숍의 안팎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민영경씨는 한산 모시를 인도네시아에 심어 성공한 모시 디자이너로 2002년 여름 한 중앙일간지에 소개된 이후 많은 국내 언론에서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그중에는 ‘주간동아’도 포함돼 있다).

그러다 민씨는 외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한국인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한민족리포트’에 출연하면서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여기서 끝났다면 민영경씨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더운 나라 인도네시아에서 한국의 전통 직물을 세계적 명품으로 만든 젊고 능력 있는 미인 교포 사업가로만 기억됐을 것이다.

그러나 ‘한민족리포트’와 수많은 인터뷰 기사를 통해 민씨는 우리나라에서 폭발적인 관심을 끌었다. 인도네시아 주재 한국대사관 홍보관이 “올 초 갑자기 대사 부인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가 거절당한 사람” 정도로 민영경씨를 기억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민족리포트’와 수많은 인터뷰 폭발적 관심

민씨는 ‘한민족리포트’가 방송된 직후 한 환경단체와 함께 서울에서 패션쇼를 열었고, 2003년 봄엔 지금은 사라진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아 H백화점에서 패션쇼와 특별판매전을 열었다.

이어 그해 9월 ㈜민영경모시를 설립한 민씨는 12월 서울 성북동에 민영경 모시갤러리를 열었다. 모시갤러리 오픈에는 정·관계 인사들과 외교부 관리, 그리고 유명한 문화·연예계 인사들이 다수 참석해 민영경씨가 단숨에 유명인사로 떠올랐음을 보여주었다. 매스컴에 처음 보도된 지 단 1년 만에 민씨는 사교계의 여왕이 되어 ‘모시 공주’라는 애칭까지 얻었다.

그러나 모시갤러리 오픈 무렵부터 민씨 측근들에게서 이상한 소문과 뒷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국 민영경모시의 직원들은 모두 퇴사했고, 민씨는 소송에 휘말려 있으며, 모시갤러리 사옥의 대문도 돈을 주지 않아 떼어간 상태다. 언론사 인터넷 등에는 ‘한민족리포트’와 민씨 관련 기사의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항의성 글이 오르고 있다.

특히 ‘한민족리포트’에서 민씨의 화려한 성공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던 하얏트 호텔 매장이 이미 ‘폐쇄’된 뒤에 연출되어 촬영된 장면이었음이 밝혀졌다. 당시 민씨를 취재한 J프로덕션의 PD와 민영경씨도 이 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자카르타에 갔을 때 숍이 폐쇄된 상태여서 좀 놀랐다. 민영경씨가 얼마 전까지 한 거니까 잠깐 열고 찍자고 했다. 하얏트 호텔 사장이 친구라고 했다. 내키지 않았지만 옛날에 거래하던 거니까 괜찮다며 호텔의 누군가에게 말해 (가게 문을) 열어달라고 해서 찍었다. 물건 세팅은 돼 있는 상태였다. 이 때문에 자카르타에선 의심스러웠지만, 농장에 가서 실 뽑는 걸 보니 거짓말은 아니구나 했다. 이런 사람들 중엔 얼굴 마담도 있지만 민씨 손이 하도 험해서 믿었다.”(J프로덕션 PD)

‘한민족리포트’에는 하얏트 로비의 ‘불가리’와 ‘헤르메스’의 간판은 여러 번 나오지만, 정작 민영경씨의 ‘모시’라는 간판은 나오지 않는다. 이에 대해 J프로덕션 PD는 “간판을 본 것 같기는 한데 편집본에 넣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7월2일 기자와 연락이 닿은 자카르타 하얏트 호텔의 임대 매니저 알버트씨의 설명은 이와 다르다(알버트씨는 ‘한민족리포트’에서 민씨의 매장에 민씨 옷을 입고 들어와 대화를 나누는 등 마치 손님처럼 보였던 사람이다).

‘영웅 갈증’…신데렐라는  뻥튀기였나

서울 성북동 민영경 모시갤러리. 임대한 뒤 증축해 갤러리로 바꿨다. 대문은 떼어가고 없다.

알버트씨는 “가게 이름이 ‘모시’가 아니라 상품 이름(product brand)이 모시였다. 가게 이름은 ‘바론&영’이었다. 바론은 인도네시아의 톱 텍스타일 디자이너인데 혹시 아는가? 민영경씨가 모시풀을 한국에서 가져왔고, 모시 디자인을 한 이는 바론이었다. ‘바론&영’이 장사가 안 돼 2002년 문을 닫았고, 바론씨가 ‘바론갤러리’로 다시 열어 운영하다 그것도 바로 엊그제(6월30일)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정황은 2003년 민영경씨와 함께 인도네시아를 다녀온 직원들의 말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퇴사한 한 직원 말에 따르면 “하얏트 호텔에 갔더니 민영경모시와 똑같은 물건을 파는데, 이름이 ‘바론갤러리’였다. 가게 모양도 ‘한민족리포트’에 방송된 그대로였다. 너무 놀라 ‘문을 닫았다더니 어찌된 거냐’고 묻자, 민영경씨가 ‘바론이 내가 했던 것과 똑같은 가게를 하고 싶다고 해서 허락했다’고 했다”고 말했다.

민씨에 투자한 사람들 “방송·신문 고소하고 싶다”

민영경씨는 한국에 들어온 뒤 하얏트 매장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본사를 옮기기 위해” “스파이가 많아서” 폐쇄했다고 설명했지만, TV를 본 모든 시청자들은 민영경씨가 ‘불가리’와 ‘헤르메스’보다 더 넓은 매장의 명품브랜드 ‘모시’를 운영하고 있는 사업가라고 믿었다. ‘한민족리포트’를 통해 눈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2004년 5월27일 열린 ‘민영경 모시연구소’ 설립 후원회장에서도 또 ‘한민족리포트’가 상영됐다.

여기에 올해 1월 KTV(국립영상간행물제작소)는 신년특집으로 ‘인도네시아에 핀 꽃, 민영경’을 방송했다. 연출을 맡은 PD는 “‘한민족리포트’와 신문기사를 보고 섭외했으며 모든 현지 취재와 코디네이트를 민영경씨가 맡아주었다. 촬영장소는 비밀이라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말한다.

‘한민족리포트’에는 민영경씨가 2001년 ‘파리컬렉션’에 진출했다고 소개하는 장면도 나온다. ‘파리컬렉션’이라면 파리에서 연 2회 열리는 ‘오트쿠튀르’나 ‘프레타 포르테’를 의미한다. 그러나 팔레로얄의 부티크에서 보름간 판매한 일을 ‘파리컬렉션’이라고 소개하는 어처구니없는 실수도 범했다. 또한 1999년 한산모시를 처음 접한 민씨가 명품 모시를 만들어 2001년부터 매년 연매출 180만 달러를 올리고 있다고도 했다(민씨는 ‘잘못 보도됐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이미 폐쇄된 가게임을 알면서도, 더구나 누가(바론인가, 민영경인가?) 만든 상품을 파는 가게인지도 확실하지 않은 숍을 마치 민영경씨가 만든 모시를, 현재, 단독으로 운영하는 가게인 듯 보도하는 바람에 민씨에게는 투자자들이 몰려들었다. 이어 민씨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서둘러 국내에 들어왔지만 이들 투자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있다.

어쩌면 민씨 주장대로 그 역시 ‘피해자’일 수도 있다. 차근차근 해외에서 자신의 힘만으로 한산 모시 사업을 계속했다면 한국에 돌아와 투자로 받은 10억대 돈을 고스란히 부채로 떠안아야 하는 곤란을 피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투자’를 했던 사람들은 “2년 동안 사업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는데 무슨 투자냐, 빌려준 것이니 받아야겠다”고 말하고 있다. 특히 ‘한민족리포트’를 보고 일부러 민영경씨를 찾아가 투자한 여성은 “차라리 방송사와 신문들을 고소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민씨의 사례는 우리 사회에서 이례적인 경우일까. 유감스럽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최근 ‘외자유치 1300억원 설’을 불러일으켰던 문화벤처기업 ‘유밀레 공화국’의 유밀레씨의 경우나 국제 무기 로비스트로 알려져 주목받았던 린다 김, 또 하루아침에 매스컴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뒤늦게 이면의 진실이 알려진 수많은 유명인사들을 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강렬하게 ‘영웅’을 원하고 있으며, 얼마나 쉽게 이 현대판 왕자와 공주를 만들어내는지 알 수 있다.

‘영웅 갈증’…신데렐라는  뻥튀기였나

민영경이 연루된 고소 사건 중 하나로 인터넷에도 올라 있는 내용이다. 민영경은 모두 맞고소를 해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 홍보기획사의 대표는 “우리나라는 3억원만 있으면 누구든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될 수 있다. ‘굿 루킹’에, 외국에 살아서 영어를 잘하기라도 하면 NQ(네트워킹 지수)가 단숨에 올라간다. 셀레브리티(celebrity·유명인사) 사회에 바로 진입하는 것이다. 그 사람들 특급 호텔에 모아놓고 쇼 한두 번 하면 다음부터는 알아서 기어주고 떠받들어준다”고 말했다.

정작 인물 자체에 대해서는 전혀 검증을 하지 않으면서 참석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얼굴과 직함, 재력을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유명인사로 만드는 일에 가담하는 것이다.

3억원 쓰면 유명인사? … 떠받드는 풍토가 문제

일단 유명인사가 되고 나면 다음부터는 하던 일 팽개치고 여기저기 얼굴을 내밀거나 강의를 하면서 먹고살 수 있다. 또 누구든 ‘아는 사람’으로 부를 수 있으며, 하고 싶은 일을 다 할 수 있는 것도 우리나라 셀레브리티들의 특권이다. 아주 뻔뻔한 경우엔 명품 숍에서 ‘협찬한 셈 치라’며 가방을 들고 나오기도 한다.

한때 독특한 이력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한 의사는 인터뷰 요청을 하면 특정 브랜드의 옷과 미용실을 협찬받아 오라고 주문하기로도 유명했다.

한 디자이너는 “얼마 전 수백억원대 재산가로 알려져 단숨에 유명세를 탄 한 인물에게 중견 탤런트 K씨가 접근해 친한 척하며 이 사람 저 사람 다리를 놓아주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결국 그가 돈 한푼 없는 것이 드러나자 그 탤런트 혼자 냉가슴을 앓더라”고 말했다.

스타나 연예인 대신 유명인사라는 뜻의 ‘셀레브리티’를 쓰기 시작한 패션전문지 ‘보그’의 이명희 편집장은 “우리나라에서는 외국에서 성공한 한국 사람에 특히 약하다. 미디어에서는 무조건 잘 써준다. 이때도 이상한 민족주의가 개입한다. 유명인사의 속성 자체가 과시의 욕망인지라 그들은 매스컴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이를 최대한 이용한다. 외국의 권위 있는 매체는 인터뷰한 사람의 멘트를 하나하나 검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언론계 관행과 많이 다르다”고 말한다.

실제로 민영경씨 같은 새롭고 젊은 유명인사를 소개하는 매체는 가능하면 그의 성공을 극적으로 연출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그러다 보면 거품을 줄이려는 노력보다 부풀려서 색색의 장식까지 달아주고 싶어한다. 고달픈 일상과 화려한 성공을 대비해야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적으로 외국에서 경력의 대부분을 이룬 경우라면, 본인과 홍보대행사의 말 외에 이를 검증할 방법이 없다. 여기에 정치인이나 정부 인사가 한두 마디 ‘보증서’를 써주면 사소한 의문은 묻히고 개인적으로도 신뢰를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진실과는 거리가 먼 신데렐라 이야기가 쓰여지기도 한다. 민영경씨를 처음 소개한 기자는 “외교통상부 간부의 추천을 받았다”고 말했고, 해당 간부는 “인도네시아에서 민씨 농장과 하얏트 숍을 보고 민씨를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단 두 단계를 거쳐 민씨는 방송에 출연해 유명인사가 된 것이다.

민영경 모시갤러리에서 옷을 맞췄다가 옷을 받지 못해 결국 어렵게 환불을 받은 고객 이모씨는 “‘한민족리포트’를 보고 훌륭한 여성으로 기억했다가 H백화점에서 물건을 보자마자 구입했다. 그것이 인연이 돼 비싼 옷까지 맞췄다. 그러나 그 후 결국 환불받기까지 싸우면서 진실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게 민영경 기사를 쓴 기자들에게 항의 전화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개 항의 전화나 메일을 받은 기자들은 “옷을 팔고, 사업을 하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일로 생각하고 내 선에서 ‘킬(kill)’했다”고 털어놓았다.

언론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무조건 아름답게 연출하고 부풀리고 싶은 것이 유명인사들의 속성이라면, 매스컴은 오랫동안 성실하게 자기 분야에서 목적한 일을 이루느라 ‘늙은’ 사람보다 어린 나이에 운이 좋아 혜성처럼 떠오른 사람을 찾아다닌다. 또한 이미 ‘진실’로 보도해버린 사람의 기만적인 이면이나 왜곡을 스스로 되잡기 대단히 어려운 것이 매스컴이다. 그것이 ‘좋은 게 좋은 것’으로 통하는 유명인사들과 매스컴 사이에서 ‘공생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잘못된 부분을 스스로 드러내고 바로잡음으로써 오히려 더욱 화려한 셀레브리티의 명예를 얻을 수 있는 것도 유명인사들만이 가지는 특권이다. 아니, 그 과정은 진정한 의미의 셀레브리티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기도 하다. 이제 ‘모시 공주’ 민영경씨가 해야 할 일도, 그 앞에 놓여진 수많은 의혹 앞에서 용기 있게 진실을 밝히는 일일 것이다.





주간동아 443호 (p12~15)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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