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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납치’에 대한 일본의 이중 잣대

  • 박홍규/ 영남대 법학과 교수

‘납치’에 대한 일본의 이중 잣대

‘납치’에 대한 일본의 이중 잣대
요즘 일본 사회의 가장 큰 화두는 ‘납치’다. 이라크에서의 일본인 납치가 아니라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다. 아직도 정말 북한이 ‘납치’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많으나, 여하튼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이즈미 총리가 북한에 다녀온 일이 이번 일본 총선을 겨냥한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선전되고 있는 형편이다. 며칠 전 고이즈미 총리는 그 연장선상에서 “2년 내 북한과 수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에 대해 격렬하게 분노하는 일본인들은 정작 자신들의 명백한 납치행위에 대해서는 여전히 철저한 침묵으로 일관한다. 바로 일제시대 이른바 ‘군 위안소’로 우리 여성을 납치해 성노예로 착취한 데 대한 완벽한 부정이다. 그것도 북한에 의한 납치처럼 ‘한때 몇 명’이 아니라 ‘수십 년에 걸친 수십만 명’인데 그렇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이 얼마나 이중적인지, 또 민족차별적인지를 알 수 있다.

자신들 피해에는 호들갑, 위안부 문제는 쉬쉬

20여년 전 필자가 일본에 유학 갔을 때 대학 측 소개로 찾아간 아파트 주인이 우리 가족의 입주를 거절해 망연한 적이 있다. 대학 측은 ‘외국인’이라고 했는데, 알고 보니 외국인이 아니라 ‘조센징’이라는 게 이유였다. 며칠 뒤에는 오직 낯설다는 이유만으로 동네 경찰서에서 조사까지 받아야 했다. 그 와중에 조사서 국적란이 ‘외국인’ ‘조선인’ ‘일본인’으로 구분돼 있는 것을 보았다. 일본인이 말하는 외국인이란 백인을 뜻하며, 외국이란 서양을 뜻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훨씬 뒤였다. 당시 뭔가 배울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찾아간 일본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보수주의자는 물론 자유주의자나 사회주의자라 자처하는 사람들까지도 거의 모두 지금까지도 조선·중국 등에 대한 자국의 침략과 지배를 긍정하는 제국주의자들이며, 중국의 티베트 침략이나 인권탄압에 항의하기는커녕 “강력한 중국이어야 미국에 대항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결국 중도에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왔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필자는 여전히 일본에서 인종차별을 느낀다. 일제 성노예 문제도 마찬가지다. 일본 정부나 대다수 일본인은 자국이 저지른 조선 등의 여성에 대한 납치 사실을 철저히 부정해왔다. 그런데 얼마 전, 일제시대 일본 법원이 일본군의 ‘위안소’에 여성을 납치해 ‘위안부’로 삼은 자들에 대한 처벌을 인정한 판결문이 발견돼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공적 처벌 자료의 발견으로 일본 정부는 더 이상 범죄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됐다.



그런데 사실 이번에 발견된 판결문(제1심)의 확정 판결문은 이미 1979년에 발견됐다. 문제는 대심원(우리의 대법원에 해당) 판결문의 경우 사실 관계를 말하지 않아 내용을 자세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여러 차례 진상을 밝히겠다고 하고서도 이처럼 25년 전에 이미 알려진 확정판결의 원심 자료조차 방치해둔 것이다. 이처럼 은폐된 자료들이 도대체 얼마나 많을까. 여하튼 이번에 밝혀진 판결의 납치사건은 1932년에 벌어진 일이므로 ‘위안부’가 1937년경부터 시작되었다는 이제까지의 통설과 다르다. 그러니 ‘군 위안소’는 1930년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 게 옳으리라. 사건 내용은 일본 매춘부에게 취업을 알선해준다고 속여 상하이의 해군 ‘위안소’로 납치한 것이어서 ‘조선인 성노예’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나, 그 사실을 유죄로 인정한 근거인 형법이 당시 조선에도 그대로 적용되었으므로 그 또한 당연히 유죄일 수밖에 없다. 이는 지금껏 일제 성노예 문제에서 ‘국내법’ 적용 사례가 없는 까닭에 주로 당시 국제조약 위반사항으로만 논의돼온 점에 비춰볼 때 중요한 진보라 할 수 있다. 일본은 그동안 “식민지에는 국제조약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주장해왔으나, 이제 조약뿐 아니라 형법까지도 동일하게 적용됐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필자는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벌어진 강제징용에 대한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강제징용이 당시 국제조약 및 일본의 민·형법에 위배된 것이며 그와 같은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서는 국제법상 시효가 없다”고 주장하자, 담당판사가 “그렇다면 임진왜란 때 납치된 사람들까지 문제 삼자는 것이냐”고 맞받아친 것이다. 한마디로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성노예’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한 유엔 인권소위원회는 지난해, 전시성 폭력 처벌에 대한 본격 조사에 착수했다. 우리 정부와 학계, 사법부는 이러한 변화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주간동아 443호 (p100~100)

박홍규/ 영남대 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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