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2

2003.09.25

캐나다선 박사 학위도 무용지물

현지경력 없으면 취업은 별 따기 … 고학력 이민자들 택시기사·신문배달원 생활

  • 토론토=김상현/ 자유기고가 utmfc01@sympatico.ca

    입력2003-09-18 11: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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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나다선 박사 학위도 무용지물

    이민박람회장에서 캐나다 이민에 관해 상담중인 젊은 부부. 그러나 캐나다에 가 있는 한국 교민들은 국내의 캐나다 이민 열풍에 냉소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추석날 아침, ㄱ씨(43)는 호주로 떠났다. 3년여 간의 캐나다 이민생활에 이은 ‘재수 이민’이다. 그래도 그의 마음은 뿌듯하다. 캐나다에서는 끝내 미망(迷妄)이던 ‘내게 맞는’ 일자리를 호주에서 마침내 찾아냈기 때문이다. 캐나다로 이민 오기 전에 일했던 한국의 기업과 호주의 기업이 합작회사를 설립,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그를 스카우트한 것이다. “잘살아보겠다고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왔는데 몇 년도 안 돼서 또다시 지구 반대편으로 가게 된 걸 보면 역마살이 단단히 낀 모양”이라며 그는 웃었다.

    평균적인 한국의 독립이민자들에 견주면 ㄱ씨는 제법 ‘준비된’ 이민자에 속했다. 한국에서 누렸던 것과 같은 수준의 직장, 조건 등을 당장에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하지도 않았다. 좀더 합리적인 사회, 좀더 나은 자녀교육 환경 정도가 그가 캐나다에서 기대하는 사항이었다. 그는 전자제품 수리점에서 점원 노릇을 하는 것도 캐나다를 제대로 알기 위한 통과의례로 여기고 즐겁게 일했다. 한국 명문대학의 임학박사 학위에다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중간간부로 일한 경력까지 지닌 그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희생이고 양보였다.

    그는 언젠가는 캐나다에서 자신의 전문 분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민자를 부르는 나라, 아니 두 손 들어 환영하는 나라, 기회의 나라, 더욱이 ‘숲의 나라’로 불리는 캐나다 아닌가.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박사 학위, 10년이 넘는 일선 경력과 전문지식도 캐나다에서는 메아리 없는 외침에 불과했다.

    한국인 이민자 대부분 자영업 … 장기 실업자도 상당수

    또 다른 ㄱ씨(42)는 기막히게 운이 좋은 경우다. 그는 캐나다로 이민 온 지 6개월도 채 안 돼 일자리를 잡았다. 현지의 대표적 통신회사 중 하나인 벨 캐나다에, 그것도 임시직이나 계약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채용된 것이다. 그가 한국에 있을 때 다녔던 회사가 우연하게도 벨 캐나다에 휴대전화를 납품하는 곳인 데다 그의 전문지식과 경력이 벨 캐나다의 요구에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그는 우수사원 표창까지 받을 정도로 잘 적응하고 있다. “처음에는 말도 잘 안 통하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영어 실력도 많이 늘고 마음도 편해졌다”라고 그는 말한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열기로 잠시 주춤한 듯하던 캐나다 이민 열기가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그 열기를 지켜보는 캐나다 교민들은 다소 의외라는 표정이다. ‘이민 규정이 더욱 까다로워진 데다 캐나다 경기 또한 하강곡선을 그리고 있는 마당에 웬 이민 바람인가. 게다가 온타리오주나 브리티시 콜럼비아주도 아닌 매니토바주라고?’

    토론토로 이민 와 10년 넘게 편의점을 운영해온 ㅎ씨(53)는 대뜸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다. “매니토바? 거기 가서 뭘 해서 먹고살 건데? 거기에 위니펙밖에 더 있나? 인구 100만명도 안 되는 손바닥만한 도시에서 제대로 돈벌이가 되나? 취직할 직장이나 있고? 몇 년 살다가 토론토나 밴쿠버로 빠질 심산이겠지.”

    ㅎ씨가 일갈한 ‘먹고사는’ 문제의 심각성은 한국인들이 주로 모이는 토론토 곳곳의 교회들에서 극명하게 확인된다. 낯설고 물 선, 무엇보다 말 선 캐나다에서 교회는 한국인들이 가장 즐겨 찾는 사교의 장이자 정보교환장이다. 캐나다에 특별한 연고가 없는 신규 이민자들이 손쉽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일종의 정착 서비스 기관이기도 하다.

    캐나다선 박사 학위도 무용지물

    캐나다 토론토의 코리아타운 전경(왼쪽)과 캐나다에서 슈퍼마켓을 경영하는 한국인 이민자.

    2년 전 캐나다로 이민 와 토론토대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ㅇ씨(34)는 “최근 1, 2년 새 이민 온 30, 40대 신자들 중 80% 정도는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점 등 자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고, 캐나다 현지 기업에 취직한 사람은 손꼽을 정도다. 몇 년째 일자리를 못 구해 고민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정은 캐나다의 신규 이민자들이 예외 없이 듣게 되는 몇 가지 속설에도 잘 드러난다. 그중 하나는 “토론토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길을 잃거든 무조건 편의점에 들어가라”는 것. 편의점 열의 여덟, 아홉은 한국인이 주인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하나는 시장 동향과는 반대로 편의점 가격이나 권리금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캐나다의 대형 정유회사들이 편의점 시장에 진출, 앞다투어 주유소와 편의점을 통합한 복합공간을 선보이면서 현재 소규모의 개인 편의점 사업은 ‘멸종 위기’에 내몰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신규 이민자들이 먹고살 방도로 너나없이 편의점을 선택하다 보니 그 값이 천정부지인 상황이다.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점을 낼 정도로 자본의 여력이 있다면 그래도 나은 편이다. 크게 모아놓은 돈도 없이 오직 의욕과 희망을 연료 삼아 캐나다로 날아온 30, 40대 독립이민자들이 문제다. 게다가 영어 실력이 변변찮아 초·중급 회화부터 다시 배워야 하는 수준이라면 그야말로 설상가상이다.

    4년 전 이민 온 ㅂ씨(47)가 그런 경우다. 한국에서 증권 투자에 실패한 뒤 새로운 삶을 살아보자며 토론토로 날아온 그였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나이도 만만찮은 데다 영어까지 서툴러 캐나다 기업 문을 두드리기는 언감생심이었다. 결국 한국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의 점원으로 낙착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평일에는 새벽 5시부터 자정이 넘을 때까지 두 곳의 편의점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또 다른 편의점에 나가는 강행군. 그는 “시간당 10달러 선인 급여로 가족의 생계를 잇자면 몸으로 때우는 수밖에 없다”며 “말도 못하게 고단하지만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ㅂ씨의 말처럼 현실은 고단하다.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한국인 이민자들에게 캐나다의 현실은 두 배로 더 고단하다. 그 고단함을, 그 불만과 좌절을 하소연할 말[言]과 친구가 캐나다에는 없기 때문이다. 2년 전 이민 와 자영업을 모색중인 ㅅ씨(41)의 말. “한국을 뜨면 한국에서 느꼈던 고민과 불만과 문제점은 떨쳐버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캐나다라고 고민거리가 없겠나. 그 내용만 바뀔 뿐 삶의 숙제와 걱정거리는 늘 따라다닌다. 말이 잘 안 통한다는 면에서 본다면 캐나다 살이가 도리어 더 고단할 수도 있다.”

    캐나다선 박사 학위도 무용지물

    캐나다 한인 교회에서 캐나다 교포들이 예배하고 있는 모습.

    그저 ‘이곳을 뜨고 싶다’라는 욕망으로 가득 찬 한국의 수많은 이민자들에게 캐나다의 고민거리란 오히려 ‘사치’처럼 여겨질지도 모른다. 또 탈출과 도피의 욕망에 사로잡혀 캐나다 살이의 팍팍함쯤은 손쉽게 극복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9월4일 캐나다 통계국이 발표한 이민자들의 구직 실태는 이민 지망자들의 신중한 선택을 강권한다. 2000년 10월~2001년 9월 사이에 캐나다로 온 15세 이상의 신규 이민자 16만여명 중 1만2000명을 인터뷰해 얻은 이 조사결과에 따르면 신규 이민자 10명 중 6명이 직종을 바꾸었다. 자신의 전문 분야와는 무관한 판매업이나 제조업 분야로의 진출이 두드러졌고, 근무조건도 대부분 하향 조정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이민자 10명 중 7명은 모국에서 쌓은 경력과 기술이 캐나다에서 인정되지 않는 불합리를 지적했다.

    현지 인맥 구축·경력 쌓기 등 취업준비 필수

    흔히 캐나다는 ‘세계 최고 학력의 택시기사들이 있는 나라’로 통한다. 불러놓고 나 몰라라 하는 구멍 많은 캐나다의 이민정책에 대한 비아냥이다. 박사 학위를 가진 신문 배달원, 두 개의 석사 학위에다 박사 학위까지 가진 할인매장 출납원, 영국에서 연봉 20만 달러를 받다가 캐나다에서 연봉 1만2000달러짜리 골프장 잔디 관리원으로 전락한 지질학자 등 믿기 어려운 사례가 너무나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들이 캐나다에서 부딪히는 최대의 벽은 이른바 ‘캐나다 경력(Canadian Experience)’이다. 일본에서 경제정책 분야의 박사 학위를 받은 뒤 3년 전 캐나다로 이민 온 가나 출신의 마크 다데보씨(38)는 뼈저린 좌절을 경험했다. 100통 이상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가능한 모든 관련 기업과 기관에 보낸 결과는 ‘0’였다. 채용은 고사하고 인터뷰 제의조차 받지 못했다. 그는 은행의 출납원으로 잠시 일하다 토론토 대학의 석사 과정에 등록했다. 그러나 졸업한 뒤에도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어쩌다 운 좋게 인터뷰에라도 응하게 되면 “캐나다 경력이 없어서 곤란하다”는 말만 듣게 될 뿐이었다. “당신네가 나를 뽑아주지 않는데 내가 무슨 수로 캐나다 경력을 쌓는다는 말인가?” 그는 현재 전공 분야와 전혀 무관한 건강·의료 관련 기관에서 시간제 임시직으로 일하고 있다.

    캐나다 이민자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구인·구직 시장이 작다’는 데에서 비롯한다. 미국 인구의 10분의 1, 한국과 견주어도 캐나다 인구는 더 적다. 국토 면적은 남한의 99배에 이르지만 그 절반 이상이 영구 동토층(凍土層)으로 사람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지난 10년 동안 급속히 빨라진 인구의 대도시 집중 현상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 원인이다. 매니토바나 사스카체완 같은 주가 이민자에 대해 다른 주보다 우호적인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러한 ‘캐나다판 이농(移農)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민 정착지로서 캐나다의 인기는 당분간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인종과 국적이 다른 것에 대해 캐나다만큼 관대한 나라가 없을 뿐 아니라, 그 개발과 발전의 여지 또한 광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아, 캐나다로 이민 오지 말라’라고 가망 없는 손사래만 칠 것이 아니라, ‘이곳에 오면 이렇게 해보라’고 살 방도를 일러주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일 듯하다.

    온타리오주 환경부와 자연자원부에서 부장관을 지낸 토론토대학의 데이비드 발실리 교수(60)는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누구를’ 아느냐다”라고 충고한다. 한국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인맥’, 혹은 ‘휴먼 네트워크’가 캐나다에서도, 아니 한국에서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연봉 센 정규직을 찾으려 해서는 실망만 하기 십상이다. 커리어를 쌓으려는 분야를 뚜렷이 정하고 그와 관련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원봉사로든, 임시직으로든 자꾸 얼굴을 내밀어라. 그래서 그 분야의 사람들과 안면을 트고 정보를 얻는 게 중요하다.”

    마치 금과옥조처럼 통용되는 ‘캐나다 경력’이 꼭 정식 취업으로부터 시작되는 게 아니며, 그 분야나 성격에 따라, 어쩌면 내가 살게 된 동네의 자선바자회나 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아이들을 위한 일일 교통순경 자원봉사로부터 비롯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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