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0

2003.04.17

갈수록 뜨거운 ‘워싱턴 전투’

개전부터 복구계획까지 럼스펠드 vs 파월 신경전 … 펜타곤에선 벌써 다음 목표 논의

  • 이흥환/ 미 KISON 연구원 hhl0317@yahoo.co.kr

    입력2003-04-10 15: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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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수록 뜨거운 ‘워싱턴 전투’

    4월6일 바그다드 외곽 동쪽에서 시가지로 연결되는 다리를 차지하기 위해 이라크군과 교전 중인 미 해병 대원들.

    4월6일 ‘워싱턴 포스트’에 실린 한 컷짜리 시사만평은 이라크전 이후에 벌어질 상황 한 가지를 기가 막히게 표현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고위 군 장성 다섯 명이 미군이 점령한 이라크 지도를 펼쳐놓고 전후 이라크 문제를 논의하는 중이다. 체니 부통령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석유회사 핼리버튼 소속 유조차를 본뜬 장난감 유조차를 이라크 내로 굴려 들여보내자, 옆에 있던 부시 대통령이 곤혹스런 표정으로 한마디 던진다. “딕, 아직은 아니오!”

    이라크 복구 및 인도 지원처 ‘펜타곤’이 관장

    이라크전은 우발적인 전쟁이 아니다.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전쟁이다. 전쟁 이후의 각본까지 짜여 있음은 물론이다. 전후 복구 문제와 후세인 후임 선정은 물론 복구사업에 얽힌 이권, 복구비용 집행 문제에 이르기까지 마스터플랜에 따르게 되어 있다. 정치적인 목적이 더 큰 전쟁인 만큼 워싱턴에서 전쟁을 주도한 이들은 전쟁 이후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사실 워싱턴은 개전 이전부터 갈라져 있었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이 틈새는 점점 더 벌어졌다. 종전 이후 이라크 처리 문제가 화두가 되기 시작하자 워싱턴의 이 분열상은 노골화하고 있다. 국방부(펜타곤)와 국무부,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파월 국무장관이 갈라진 워싱턴의 양쪽 진영을 대표한다. 워싱턴 주전론자들이 짜놓은 각본에 따르면 ‘워싱턴 전투’는 물론 럼스펠드의 손이 올라가는 것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 하지만 판세는 아직 유동적이다.

    부시 행정부 내에서 이라크 전후 복구 계획을 담당할 공식 부서는 ‘복구 및 인도 지원처(ORHA)’다. 이는 국가안보지침 24에 따른 것으로 펜타곤이 관장한다. 지원처장으로 결정된 육군의 제이 가너 중장은 물론 럼스펠드 쪽 사람이다. 원래 전후 복구는 국무부의 국제개발처(USAID)가 담당하는 것이 전통이며 대부분의 복구비용도 국제개발처가 집행한다. 그러나 국방부의 지원처 규정은 국제개발처의 모든 비용 집행을 가너 중장의 지시를 받도록 만들어놓았다. 전쟁 이후 이라크도 펜타곤이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의회도 펜타곤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상원 외교관계위원회 리처드 루가 위원장이 가너 중장에게 여러 차례 정보를 요구하면서 만날 것을 요청했지만 펜타곤은 루가 위원장의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상원 예산지출위의 요구도 보기 좋게 거절당했다. 가너 중장팀은 쿠웨이트에서 바그다드에 입성할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럼스펠드와 펜타곤이 이렇게 고자세로 나오는 것은 백악관이라는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고참 의원들은 일찌감치 전후 복구 문제에 대한 백악관과 펜타곤의 고자세를 눈치챘다. 부시는 3월에 전후 복구비용 25억 달러를 달라고 의회에 요청했다. 백악관이 직접 집행할 것이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펜타곤이 쓸 비용이다. 상원은 이 돈을 펜타곤이 쓰지 못하도록 막으려 했고, 하원은 전통에 따라 이 돈을 국무부가 쓰도록 했다. 돈으로 펜타곤을 견제하려는 것이었다.



    파월 “복구 협조 유엔 특사 임명” 공허한 메아리

    갈수록 뜨거운 ‘워싱턴 전투’

    개전 후 백악관에서 전시내각을 소집한 부시 대통령. 파월 국무장관, 럼스펠드 국방장관, 마이어스 합참의장, 테넷 CIA 국장 등의 모습도 보인다.

    체니 부통령이 공화당 지도부 의원들을 만나 설득했으나 상하 양원은 4월 초 이 돈이 국방부에 가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켜버렸다. 하지만 의회가 국방부를 등진 것은 절대 아니다. 의회는 기본적으로 전후 복구를 국방부가 주도해나가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단, 국무부를 완전히 배제한 일방적인 독주는 막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블레어 영국 총리와 유엔도 펜타곤의 일방적인 독주를 진작에 눈치챘다. 유엔은 이라크전 시작 전부터 이미 이 전쟁의 최대 피해자였다. 전후 복구 문제에서 펜타곤에 밀려 또다시 소외될 경우 유엔으로서는 치명타를 맞는 격이다.

    파월 국무장관은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미국의 전후 복구 작전에 협조할 유엔 특사를 임명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아직은 ‘공허한’ 말일 뿐이다. 백악관도 유엔에 힘을 실어주는 척하지만 유엔의 역할을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다.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유엔 상임위도 4월4일 유엔만이 이라크 전후 복구의 합법적 주체라고 주장했지만 이 말이 얼마나 먹혀들지는 의문이다.

    펜타곤은 향후 이라크의 정치 문제에까지 개입하려 하고 있다. 군사력을 바탕으로 외교까지 주무르려는 것이 럼스펠드의 야망이고, 체니 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럼스펠드의 뒤를 봐준다.

    럼스펠드는 일찌감치 ‘펜타곤 줄’을 잡은 이라크 사람들을 후세인 후임으로 내세우려 했다. 얼마 전 스캔들에 휘말려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장 자리를 내놓긴 했지만 여전히 펜타곤 선임 자문직을 유지하고 있는 리처드 펄얼과 제임스 울시 전 중앙정보국장이 이들을 관리해왔다. 이들은 이미 오래 전에 이라크 국민의회(INC)를 구성했고 의장도 있다. 모두 후세인에 반대해 이라크를 떠난 사람들이다. INC는 반(反)후세인 정파 6개 가운데 하나며,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과 남부 시아파까지도 아우르고 있다.

    반면 국무부는 INC 단독으로 이라크 과도정부가 구성되기보다는 반후세인 6개 정파로 구성될 회의체(conference)가 이라크의 새 정부에 참여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담당보좌관은 이 방안도 가능하다고 말했지만 어떤 사람들이 구성원으로 선택될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다만 아프가니스탄과 유사한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아프가니스탄의 새 정권은 모든 절차가 유엔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다. 라이스는, 이라크는 동티모르나 코소보, 아프가니스탄과 다르다고 말한다. 이 나라들은 유엔이 후견인이었지만 이라크는 다르다는 것이다. 결국 이라크 전후 복구 및 새 정부 구성에서 유엔의 역할은 없을 것이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이 내세운 이라크전쟁 명분 중에는 중동지역의 ‘민주주의 도미노론’도 들어 있다. 이라크가 끝이 아니라는 말이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바그다드 함락이라는 전쟁 최종목표가 달성되지도 않았지만 벌써 워싱턴은 이라크 다음 목표를 논하고 있다. 시리아, 이란이 먼저 거론된다. 이 두 나라는 전쟁중에 후세인에게 전쟁물자를 지원한 ‘혐의’로 이미 럼스펠드 국방장관의 경고를 받은 바 있다. 후세인 지원 사실 여부를 떠나 럼스펠드의 입에 오르내렸다는 것 자체가 ‘살생부’에 올랐다는 뜻이나 다름없다. 더구나 이란은 이라크, 북한과 더불어 부시 대통령이 찍어놓은 ‘악의 축’ 가운데 하나다. 다행히 북한 문제는 이라크전쟁 이전에 비해 나아진 듯 보인다. 중국이 적극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한국정부도 미국을 예전처럼 떨떠름하게 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워싱턴의 이라크 전쟁론자들이 북한에 대한 시각을 바꿨다는 조짐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전을 치르면서 국제사회의 ‘미아’가 되다시피 했다. 33개국이 미국의 이라크전을 지지하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15개국이 이에 동참했다. 합치면 48개국이다. 부시 대통령은 이 숫자를 근거로 혼자 치르는 일방주의 전쟁이 아니라고 했지만,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치른 1차 걸프전 때 100여개국이 미국을 지지했던 것에 비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미 국내에서 전에 없는 지지를 받았다. 1차 걸프전 직전 아버지 부시는 50%의 지지를 얻었다. 아들 부시는 75%가 넘는다. 정치 분열상도 아버지 때보다 훨씬 덜하다. 아버지 때는 상원이 52대 47, 하원이 250대 183이라는 적은 격차로 전쟁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나, 현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상원 77대 23, 하원 296대 133의 큰 격차로 지지를 얻었다.

    국외에서는 인기가 없다 해도 국내의 높은 지지율은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다음 목표물을 정하는 데 힘을 실어줄 수밖에 없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이 국내 여론에 무릎을 꿇고 재선에 실패한 전철을 밟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도 된다.

    하지만 이라크전 이후 난제는 산적해 있다. 미 국내 경제도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어떤 복병을 만날지는 아직 모른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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