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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가 소리 없이 웃는 까닭은

대선 오해 벗고 노무현 정부에서 ‘선물’ 받아 … 경유차 시판·경차 규격 확대 방침에 업계 반발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현대차가 소리 없이 웃는 까닭은

현대차가 소리 없이 웃는 까닭은

3월27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정책조정회의에 참석한 노무현 대통령.

도대체 노무현 정부와 현대차그룹(이하 현대차) 사이에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나. 최근 재계 관계자들이 놀라움과 함께 드러내고 있는 궁금증 가운데 하나다. 정부가 최근 현대·기아자동차 주도의 현 국내 자동차시장 구도를 완전히 고착시킬 수 있는 ‘선물’을 현대차에 안겼기 때문이다. 이런 탓인지 재계 일각에서는 “노무현 정부와 현대차 사이에 훈풍이 불고 있다”고 얘기한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직후만 해도 현대차는 조금 과장하면 ‘초상집’ 분위기였다. 새 정부 핵심세력에게 ‘괘씸죄’로 찍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대차측이 대선 직후 그룹 내 일부 386세대를 실무팀장으로 전격 발탁, 전진 배치한 것도 노대통령의 386 측근들과 선을 대 현대차에 대한 권력 핵심의 인식을 돌려놓기 위해서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흥미로운 점은 현대차가 그처럼 긴장한 배경은 일반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는 점. 시중에서는 당시 대선 투표일 하루 전에 터진 정몽준 의원(MJ)의 ‘공조 철회’ 때문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한 핵심측근은 올 초 기자와 만나 “다른 그룹은 대체로 중립을 지켰는데 현대차는 MJ와 공조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인데도 투표일 3일 전에 협력업체에까지 ‘이회창 후보를 찍으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쟁업체·환경단체 강력 반발

물론 현대차 관계자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설사 그룹에서 그런 지시를 내렸다고 해도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젊은 직원들을 통해 금방 외부로 알려질 것이고 실제 투표장에서 이들이 그룹의 지시에 따를지도 의문시되는 상황에서 그런 모험을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현대차의 다른 관계자는 “지난해 대선 직전 정몽구(MK) 회장에게 보고된 한 정보보고가 초래한 해프닝”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MK의 삼촌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MJ와 동행한다는 점을 근거로 ‘MJ와 공조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면 현대차 주인이 바뀔 수 있다’는 보고가 올라갔고 일부 임원들이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건의를 했는데 이것이 증폭돼 외부에 알려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체적 진실이야 어찌됐든 현대차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현 여권 핵심 관계자들의 현대차에 대한 ‘인식’. 현대차측은 당선자 시절 노대통령의 일부 핵심측근들이 현대차를 ‘오해’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했고 이를 풀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MK의 핵심측근인 Y회장이 민주당 고위 관계자들을 접촉하면서 현대차측의 입장을 해명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뿐만 아니라 대선 직후 정부 및 시민단체를 담당하는 팀을 신설하는 등 대외 로비활동도 강화하고 있다. MK의 경복고 후배인 정순원 기획총괄본부장(사장) 산하 전략기획실이 이 업무를 전담하고 있다. 전략기획실장은 현대아산에서 정보팀을 총괄하다 스카우트된 우모 상무가 맡고 있다. 우상무 산하에는 전략기획팀과 정책지원팀이 있다.

업계에서는 노무현 정부가 최근 현대차측에 안겨준 ‘선물’을 현대차측 로비의 승리로 보고 있다. ‘선물’이란 정부가 3월27일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열고 2005년부터 경유승용차의 국내 시판을 허용하고 경차 규격을 확대하기로 결정한 것을 말한다. 이는 현대차측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결정으로, 경쟁업체뿐 아니라 환경단체의 강력한 반발을 사고 있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자동차업체 간의 이해가 첨예하게 엇갈리는 사안이어서 그동안 현대차와 GM대우차(이하 대우차) 등 업체들은 각자에게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 치열한 로비전을 전개해왔다. 대우차 관계자는 “이 두 가지 문제에 관해 정부측에 대우차의 입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미 다 결정됐다’는 얘기를 듣고 절망감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경차 규격 확대 문제의 경우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이익단체인 한국자동차공업협회 관계자들도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 이 문제는 협회 명의로 정부에 제출한 ‘경차 활성화를 위한 건의 내용’에는 포함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경제정책조정회의 안건으로 올라가게 됐기 때문. 자동차공업협회 허완 이사는 “경차 규격 확대 문제는 현대차와 대우차 사이에 이견이 워낙 커 협회 차원의 공식입장을 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대차가 소리 없이 웃는 까닭은

환경단체들이 2005년 경유 승용차 국내 시판 허용 방침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건설교통부(이하 건교부) 자동차관리과 관계자는 “지금까지 경차가 활성화되지 않은 이유는 안전도가 떨어지고 작은 차를 무시하는 사회적 풍토 때문이었다”면서 “고유가시대에 경차 활성화 대책의 일환으로 배기량을 현행 800㏄에서 1000㏄로 확대하고 규격도 길이와 너비를 현재보다 각각 10cm씩 확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건교부는 구체적인 사항은 관계 부처간 협의를 통해 결정한다는 방침이나 건교부 주변에서는 “3년 후부터 실시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환경부 “경제부처 논리에 밀려”

그러나 건교부의 이런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게 자동차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자동차 수리비의 합리적 경감 등을 위해 자동차 충돌시험 연구를 하는 보험개발원 자동차기술연구소 박인송 박사는 “길이와 너비를 각각 10cm씩 키우면 실내공간이 확대돼 안전도가 향상될 수는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면서 “그보다는 차의 구조를 어떻게 설계하느냐가 더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경차의 국제규격이 배기량 1000㏄라는 현대차측의 주장도 ‘억지’에 가깝다. 대우차 관계자는 “경차의 기준을 정해 경차에 대한 지원을 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뿐인데 일본의 경우 배기량 660㏄ 미만이기 때문에 현대차 논리대로라면 경차의 국제규격은 오히려 660㏄”라고 주장했다.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경차 규격을 확대하려고 하는 것은 대우차가 압도적으로 우세를 보이고 있는 경차시장 판도를 흔들기 위한 차원으로 보고 있다.

한편 경유승용차 허용 방침은 환경단체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있는 상황. ‘경유승용차 환경위원회(이하 위원회)’ 관계자들은 4월3일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정부 결정은 ‘대기오염 개선 후 경유승용차 도입’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근본에서부터 부정하는 것”이라면서 “위원회에서 합의한 전제조건을 무시하고 경유승용차 시판을 허용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심각한 대기오염이 심화될 뿐 아니라 특정 기업에 대한 특혜 시비가 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위원회는 경유차에 의한 대기오염 문제를 사회적 합의로 해결하기 위해 환경부 환경단체 학계 전문가가 1월11일 구성한 민관 합의체. 위원회는 격론 끝에 2월14일 경유승용차 시판 허용의 전제조건으로 에너지가격 체계 개편 수도권 대기 질 개선, 특별법 연내 제정, 매연 후처리 장치(DPF) 부착 적극 유도 등의 대기오염 종합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합의, 민관 공동으로 경제장관회의에 제안했다.

환경정의시민연대 이진우 간사는 “정부는 투자 활성화 차원에서 경유승용차 시판 허용을 결정했다고 하지만 실제 정부측 예측대로 될지도 의문스럽고 더욱이 참여정부를 자처하는 노무현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헌신짝처럼 버렸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환경부 관계자는 “경제부처 논리에 밀려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현대차측은 그동안 경유승용차 시판 허용 시점을 2005년으로, 대우차측은 2006년으로 해달라고 각각 요구해왔다.

물론 최근 정부의 결정과 관련, 노무현 정권과 현대차의 ‘유착’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 것이다. 그러나 개혁적인 경제학자들은 업계의 ‘로비’에서 자유롭지 않은 관료들이 경제정책 주도권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 위기론’이 증폭되는 틈을 타 개별 기업의 이해가 그대로 관철되는 것은 우려할 만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재벌개혁 의지까지 실종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주간동아 380호 (p48~50)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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