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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步一拜가 안 되면 기어서라도…”

새만금 갯벌 살리기 하루 3000배 천리 길 고행 … 생명경시 풍조 온몸으로 참회 촉구

  • 김제=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三步一拜가 안 되면 기어서라도…”

“三步一拜가 안 되면 기어서라도…”

고행을 자원한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앞줄 오른쪽부터). 이들은 새만금 갯벌에 컨테이너 법당 ‘해창사’와 천주교회 ‘기도의 집’을 세우고 종파를 초월한 교감을 나누고 있다.

”이라크전쟁 종전과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 제7일차 일정을 시작하겠습니다.”

4월3일 오전 8시 전북 김제시 만경읍 성덕면, 또 하루의 예배를 알리는 진행자의 진중한 목소리가 만경평야에 퍼져나간다. 야외 이동식 텐트에서의 차가운 잠자리를 마다하지 않은 20여명의 수행자들은 새벽 6시에 일어나 텐트를 걷고 군산으로 뻗어 있는 711번 지방도로에 늘어선다. 어제 제6일차 일정이 마무리된 바로 그 자리다. ‘죽음의 방조제를 생명의 갯벌로!’ ‘전쟁반대 평화기원’이란 휘장이 모판을 준비하는 농민들과 이들을 스쳐가는 차량 운전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지난 6일간의 수행으로 왼쪽 발을 약간 절고 있는 수경(水耕·52) 스님이 다 떨어진 장갑을 갈아 끼면서 한마디 던진다.

“하루에 장갑이 4개가 필요하다니까!”

아침햇살이 고루 퍼진 호남평야의 중심에 선 이들은 조용히 묵상에 잠긴다. 원불교 천주교 불교 기독교 4개 종단의 수도자 5명의 표정은 진지하다 못해 두려울 정도로 경건하다. 이윽고 죽음을 무릅쓴 순례자들의 힘겨운 한 걸음이 시작된다. 정확하게 세 걸음을 내딛고 큰절을 한 번 올리는 삼보일배. 보고 있기조차 고통스럽게 온몸이 땅에 달라붙는다. 뒤따르는 이들 역시 세 걸음을 걷고 한 박자를 쉬면서 머리를 숙인다. 단지 한 가지 생각뿐이다.



직접 눈으로 보기 전에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삼보일배 수행이란 티베트 승려들이 카일라스 성산(聖山)을 향해 오체투지(五體投地)로 나아가는 것으로 잘 알려진 불교의 전통적 수행방법. 이마에서 양 무릎까지 자신을 최대한 낮추는 광경은 보는 이를 숙연하게 만든다. 한 주민은 이 일행이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하며 간다는 설명에 “미친 짓이다”며 고개를 내젓는다. 실제 상황 역시 살인적이다. 간척사업으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전북 부안의 해창 갯벌에서 시작하여 서울 광화문까지 305km를 60일간 세 걸음에 한 번씩 온몸으로 천지에 경배하며 행군한다. 하루 5km, 대략 3000배를 마쳐야 도달할 수 있는 거리. 가히 세상의 죄를 대신 씻기 위한 수도자만이 상상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는 고행의 극치다.

경건한 행군 보는 사람들 ‘숙연’

이를 생각하고 몸으로 실천한 이는 30년간 선방수좌였고 근래에 불교환경연대를 이끄는 수경 스님과 1970년대부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문규현 신부(57). 문신부는 1990년대 중반 부안 요촌성당에서 주임신부로 일하며 ‘새만금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과 인연을 맺은 이후 앞장서서 이 간척사업의 중단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런 고통스럽고 과격한(?) 시위에 회의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들에게 문신부는 단호하게 쏘아붙인다.

“생명과 죽음 가운데 중립이란 없습니다. 저는 온 힘을 다하여 삼보일배의 여정을 끝까지 갈 것입니다. 기어서라도 가겠습니다. 제 목숨을 버리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산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수경 스님과 문신부의 고행은 새만금 논란에 대한 각성과 결자해지에 나서야 하는 새 정부 최고 통치권자의 각성을 촉구하는 절규인 셈이다.

“三步一拜가 안 되면 기어서라도…”

전북 전주에서 맹인 인도견 ‘찬미’와 함께 찾아온 시각장애인 송경태씨(왼쪽 맨 오른쪽). 단일 방조제로 세계 최장이며 간척지 면적만 여의도의 140배에 달하는 새만금사업은 33km의 방조제 중 28.5km가 이미 완성됐다.

4월의 새벽은 겨울처럼 춥고, 낮은 여름처럼 뜨겁다. 아스팔트의 열기가 올라오는 오후가 되자 30분 간격이던 중간휴식이 20분 간격으로 잦아졌다. 두 명의 대표와 전북지역에서 합류한 기독교 이희운 목사, 원불교 전세중, 김경민 교무 등 5명의 순례자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억지로 감추지 않는다. 고행은 고통스럽기 때문에 가치가 있는 법. 쉬는 시간이 되자 수발하는 이들이 순례자의 굳은살과 까진 피부를 어루만진다.

살랑거리던 바람도 멈추고 햇살이 강해지자 산보하듯 걷던 뒤따라오는 이들도 지치기 시작한다. 한 신자는 “느릿느릿 반나절만 걸어도 다리가 아픈데, 온종일 땅에 몸을 비비시는 저분들은 얼마나 힘들까…”라고 중얼거린다.

어느새 소식을 접했는지 점심시간이 되자 일행은 50명으로 늘어난다. 가까운 전주에서, 정읍에서, 심지어 대구와 강원도에서 온 이들은 새만금이라는 아름다운 진리 앞에 질긴 인연으로 엉켜 있는 셈이다. 이들은 나무그늘을 쉼터 삼아 즉석에서 환경과 전쟁을 놓고 토론을 벌인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둬야 합니다. 물을 가두면 썩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대구에서 온 오세영씨)

“이라크 어린이와 새만금의 짱뚱어가 같은 생명임을 깨달아야 해요.”(서울에서 온 고철호씨)

노무현 정부의 생명에 대한 무원칙도 도마에 오른다.

“‘노무현 대통령은 원칙을 지키는 아름다운 바보’라는 표현을 철회할랍니다. 어떻게 이라크전쟁에 파병하는 것이, 새만금사업을 강행하는 것이 옳은 일이며 원칙에 따른 결정입니까? 현실과의 구차한 타협일 뿐입니다.”

점심시간 즉석 토론도 벌어져

하지만 새만금사업에 대한 논란은 아직도 완결되지 않았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들의 행렬을 향해 경적을 울려대는 운전자나 지원차량의 번호판이 ‘서울넘버’인 것을 확인하고는 혀를 차는 지역주민들도 적지 않다. 실제 전북도민의 민심은 새만금사업 강행 쪽이 강하다. 이 순례를 지켜보던 지성은씨(사업)는 “추진하려는 공무원이나 막으려는 분들이나 십분 이해가 간다”면서 “그러나 십수년간 1조수천억원을 투입해 거의 완공한 사업을 지금에 와서 허무하게 접는 게 옳은지 도저히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순례자들도 전북도민들의 이러한 갈등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러나 환경운동연합의 마용훈 간사는 “시화호에서 증명되었고 농지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이상 실패한 정책을 포기하는 편이 올바르다”고 강조한다. 순례에 참석한 이들도 “이제 새만금 문제는 환경논리와 경제논리를 넘어섰다”며 “우리의 삶이 생명을 지향하게 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고 가세한다.

이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식사는 문신부가 담임신부로 있던 부안 요촌성당 신도들의 몫. 진행팀은 매순간 수도자들이 기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부지런히 차량통제와 숙식문제 등을 해결하는 데 여념이 없다.

하루가 저물고 다른 하루를 준비해야 하는 밤. 문신부는 저녁에 열린 정리 미사에서 오늘 하루가 너무나 힘겨웠다고 고백한다. 시작하는 날에는 단 하루도 못 견디고 중도포기할까 두려웠다고, 하루를 참고 또 하루를 견디니 결국 오늘까지 오게 됐다고, 결국은 끝까지 가리라고.

“서울 광화문에 도착하는 날까지 차 안 타고, 뜨뜻한 데서 안 자고, 행사에 참석하지 않는 삼무(三無) 원칙은 꼭 지키겠습니다.” 문신부의 각오다.





주간동아 380호 (p66~67)

김제=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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