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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연예인 파워

커졌다 세졌다 … 스타들의 목소리

정치·사회 무관심 ‘옛말’ 대중 눈치 보기도 ‘그만’ … 시민운동·정치 참여에 적극 “할 말은 한다”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커졌다 세졌다 … 스타들의 목소리

커졌다 세졌다 … 스타들의 목소리

대학로 S.H 클럽에서 열린 반전 콘서트. 더 크로스, 8·15 밴드 등 인디밴드들이 출연해 반전 의지를 다졌다.

4월4일 서울 대학로의 한 소극장, 500여명의 젊은이들이 모인 가운데 인디밴드들이 출연하는 ‘노 워 콘서트(No War Concert)’가 성황리에 열리고 있었다. 한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노대통령, 당신은 분명 선거 유세중에 미국 눈치 안 보겠다고 당당하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소리치자 관중들은 일제히 손으로 ‘피스(Peace)’ 사인을 그리며 환호했다. 다른 한 밴드는 노래 중간에 전쟁반대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이날 소극장 입구 바닥에는 카펫 대신 성조기와 유니온 잭이 깔렸다.

이 같은 현상은 비단 몇몇 인디밴드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3월25일 서울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는 50여명의 가수들이 모여 ‘전쟁반대와 파병 철회 촉구를 위한 대중음악인 연대 모임’을 열었다. 이날 모인 가수들 중에는 신해철 신성우 조PD 부활 등 현실참여 경향이 강한 록가수들 외에도 그룹 ‘신화’의 김동완과 신혜성, ‘원타임’의 송백경, ‘더 자두’의 자두 등 인기 댄스그룹의 멤버들도 있었다.

또 윤도현 변정수 김미화 정진영 등 연예인들은 참여연대가 주최한 ‘파병반대 국회 앞 1인 시위’에 연이어 참가했다. 3월28일 시위에 나선 변정수씨는 “연예인이 아니라 한 가족의 구성원, 한 아이의 엄마, 한 시민으로서 나온 것”이라며 ‘시민 변정수’라는 피켓을 들고 1시간30분 내내 눈물을 흘리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 연예인들의 시위 장면은 TV의 밤 9시 뉴스에 방영될 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과거 연예인들의 정치 참여는 정부나 여당의 방침에 일방적으로 찬성하는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데에 지나지 않았다.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연예인이 TV 화면에서 퇴출되고 그 같은 부당함에 대해 연예인들이 한마디 말도 못하던 것이 불과 20년 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다수 연예인들은 정치나 사회현상에 대해서는 극히 무관심한 듯 보였다.

반전운동 참여 봇물 … 의견 개진·시위 가담자 80여명



그러나 1997년 대선과 지난해의 대선 기간중 명계남 문성근 윤도현 김흥국 신해철 심현섭 박철 등 적지 않은 연예인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며 정치 현장에 나섰다. 또 지난해의 효순, 미선 두 여중생 미군 장갑차 사망사건 항의 집회에 몇몇 가수들이 합류하더니 반전운동에 대해서는 연예인들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다. 대다수의 연예인들이 전쟁과 파병에 반대하는 분위기지만 탤런트 김수미씨처럼 파병에 찬성하는 쪽도 있다. 이번 이라크전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밝히거나 시위 등 실제 행동에 나선 연예인의 수는 줄잡아 80여명에 이른다.

3월29일 밤 KBS 2TV에서 방송된 ‘윤도현의 러브레터’에서 가수 윤도현씨는 ‘하노이의 별’ ‘혈액형’ 등 반전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부르며 20여분간 반전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TV를 통한 ‘깜짝 반전 콘서트’였던 셈. 윤씨는 이에 대해 “대학로 등지에서 열리는 반전 콘서트에 참가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시간이 안 났다. 그래서 내 이름을 건 프로그램에서라도 반전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작하기 전에 PD에게 의논했는데 별로 반대하지 않으셨어요. 다만 ‘방송인만큼 노골적인 반미 구호는 자제하자’고만 하시더군요.”

그렇다면 왜 연예인들은 갑자기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을까. 일단 사회 전반적으로 자유로워진 분위기 덕이 크다. 연예 칼럼니스트인 김성덕씨(조이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97년 이전에는 연예인들이 우회적으로 정치를 풍자하기만 해도 방송국 윗선에서 ‘그 코너는 재미없으니 빼라’는 식으로 압력을 넣었다. 때문에 연예인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극히 조심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이런 관행은 100%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대로 친정부적 발언을 했다고 해서 특혜를 받지도 않는다”고 달라진 방송국 분위기를 전했다.

국회의사당 앞 1인 시위에 참가했던 개그우먼 김미화씨는 “각종 시민단체와 힘을 합치면서 연예인들의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전에는 한 연예인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전쟁은 정말 나쁘다’고 글을 올려도 그저 스포츠지 한켠에 나오는 가십 정도로 치부되는, 개인적 행동에 그쳤죠. 하지만 이제는 조직적으로 운동하고 홍보할 줄 아는 시민단체들이 기획을 맡고, 연예인들이 이런 행사에 참여하면서 과거에 비해 파급력이 커진 겁니다.” 참여연대의 평화대사이자 녹색연합의 회원인 김씨는 “내가 하는 행동은 정치가 아니라 사회참여라고 생각한다. 나는 정치에 나설 생각은 전혀 없지만 앞으로도 반전 등 옳다고 생각하는 시민운동과 환경운동에는 참가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4월3일 열린 영화 ‘질투는 나의 힘’ 기자시사회에서 만난 배우 문성근씨 역시 정치·사회 현실에 적극적인 이유에 대해 “그것은 연예인 이전에 한 시민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라며 “지금은 참여민주주의 시대이므로 자신에게 맞는 NGO를 찾아 참여함으로써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들도 연예인의 시민운동 참여를 반기고 있다. 장사익 정태춘 박은옥 양희은 한영애 이은미 자우림 등 주로 가수들과 함께 활동해온 참여연대의 박영선 사무처장은 “아직 시민단체들은 시민들에게 낯설고 과격한 조직처럼 보이는 경향이 있는데 연예인들은 그런 시민단체의 뜻과 의지를 시민들에게 부드럽게 전달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다. 연예인의 참가는 시민단체의 활동에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목소리 큰 연예인들’은 실제 정치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의 연예인들은 “정치를 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연기자노조나 가수분과위원회 같은 연예인 조직의 대표 자리를 겨냥하고 있다고 보기도 힘들다. 한 PD는 “아직까지 이런 조직들은 별다른 실권이 없는 모임이라서 이들 조직의 대표가 어떤 이권을 챙길 수도 없는 상황이다”라고 전했다.

젊은층에 파급효과 커 … “이미지 상승 전략” 시각도

눈에 보이는 이득은 없다 해도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사는 연예인들에게 시민운동이나 정치 참여는 자신의 이미지를 높이는 전략이 될 수도 있다. 반전시위를 벌이는 연예인들에 대해 일부 연예산업 종사자들이 “군대도 안 다녀온 애들이 반전은 무슨…”이라며 반감 섞인 시선을 보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 연예산업 관계자는 “솔직히 요즘 시류가 반전이기 때문에 반전을 외치는 연예인들이 많다고 본다. 그들이 과연 반전이나 파병, 전쟁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지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회 전반적인 열린 분위기를 타고 연예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필연적인 결과라는 분석이 많다. 대중음악 평론가 임진모씨는 “결국 이 같은 현상은 연예산업과 연예인의 사회적 신분 상승을 증명해주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젊은 세대는 법관이나 의사, 정치가 대신 연예인을 더 존경하고 따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연예인의 말 한마디는 엄청난 파급력이 있죠. 특히 ‘사회적 함의’를 지닌 몇몇 연예인들은 향후 정치판에 뛰어들 가능성도 크다고 봅니다. 20년 정도 지나면 국회의원의 4분의 1 정도는 연예인들이 차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제 각 정당은 연예인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는 데 힘을 쏟아야 할 겁니다.”

정치나 시민운동에 참여하는 모든 연예인들이 치밀한 논리나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인터뷰를 통해 만난 몇몇 연예인들은 사회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행동하기까지 적지 않은 고민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 말에는 남들과 다른 연예인들만의 고충이 담겨 있었다. 어디를 가나 대중의 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연예인들이 시위에 나서거나 구호를 외치는 데는 일반인들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이 순전히 이미지 상승이나 인기관리를 위한 것이며 그들의 속뜻이 다른 데에 있다고 본다면 그것은 지나치게 삐딱한 시각일 것 같다.

가수 윤도현씨는 말한다. “반전 구호 외치면 인기 얻느냐고요? 안 그래요. 사람들은 소소한 얘기나 사랑노래를 더 좋아하지 가수가 심각한 이야기 하는 건 싫어하거든요. 하지만 저는 우리가 사는 이 땅이 누구의 땅인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묻고 각성해주기를 바라요.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지만, 음악의 역할이기도 하니까요.”





주간동아 380호 (p72~74)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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