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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연예인 파워

‘권력과 스타’ 잘못된 밀월

정치인과 연예인, 키워주고 도와주는 공생 지속 … 16대 대선 때 ‘수평적 관계’ 정립 가능성 열어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권력과 스타’ 잘못된 밀월

‘권력과 스타’ 잘못된 밀월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연예인들의 자발적인 정치 참여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12월17일 영화인 문성근씨 등 지지자들이 노무현 당시 대통령 후보를 에워싸고 환호하고 있다.

[장면1] DJ정부 초기 동교동계 출신 A의원의 후원회가 열린 국회의원회관 1층. 동료의원에게 후원금을 전해주기 위해 후원회장을 찾은 한나라당 임진출 의원(전국구)은 행사장 곳곳을 누비는 연예인들을 보고 다른 의원에게 “대종상 시상식장이냐”고 말을 건넸다. 톱스타 C씨와 그의 부인을 비롯해 원로 탤런트, 매니저, 연예기획사 관계자들이 행사장에 참석, 대종상 시상식장을 방불케 하는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장면2] 2002년 1월1일 오후 2시께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서울 종로구 가회동 자택. 밀려드는 세배객들 속에 설운도 임채무 등 낯익은 연예인 10여명이 끼어 있었다. 몇몇 연예인은 이 전 총재와 부인 한인옥 여사를 잘 아는 듯 밀담을 나누기도 했다. 연예인과 이 전 총재의 연결고리는 권철현 의원. 연예계 마당발로 통하는 권의원은 “필요하면 100명도 모을 수 있다”고 연예인들과의 친분관계를 과시하기도 했다.

활동영역은 다르지만 정치인과 연예인은 대중을 상대로 먹고산다는 측면에서 공통점이 있다. 대중의 지지를 받으면 영광과 명예, 때로는 부도 축적하지만 대중이 외면하면 그날로 ‘지옥’으로 추락한다. 당연히 언론에 예민하고, 무리수를 써서라도 대중의 관심을 끌려 한다. 이런 점에서 정치인과 연예인은 서로의 부족분을 채워주는 보완재 역할을 한다.

정치인은 연예인의 인기를 이용해 대중의 지지를 유도하고, 반대로 연예인은 권력의 도움을 받아 ‘스타’로의 부상을 꿈꾼다. 양자의 이런 계산이 맞아떨어지면 정치와 대중스타 사이에는 흔히 말하는 커넥션이 형성된다.

노태우 정권 시절 핵심인물이었던 정치인 Z씨. 그의 주변에는 유독 연예인들과의 염문설이 많이 흘러 다녔다. 여자 톱탤런트가 상대였지만 무명의 탤런트가 그의 도움으로 하루아침에 신데렐라로 부상했다는 루머도 뒤따랐다. “Z씨를 통하면 주연을 딸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연예인들이 몰려들었다는 게 주변을 지켜봤던 한 인사의 전언이다.



앞서 언급한 A의원의 후원회에 연예인 매니저나 기획사 관계자가 모습을 드러낸 것도 이런 메커니즘 속에 서로간에 ‘상생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의도로 볼 수 있다.

“선거유세 때 연예인 나오면 분위기 금세 후끈”

‘권력과 스타’ 잘못된 밀월

강신성일 한나라당 의원과 정한용·강부자 전 의원(위부터)은 대표적인 연예인 출신 정치인들이다.

선거판에서 연예인들의 영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인기와 친숙함을 무기로 하는 연예인들은 강력한 호소력이 있어 특히 여성, 젊은층, 서민계층에 큰 힘을 발휘한다. 2001년 서울 구로을 재선거에 나선 김한길 전 의원의 유세장에는 후보보다 부인 최명길씨를 보려는 유권자들이 더 많았다. 당시 민주당은 “절대적 열세로 보였던 선거가 팽팽하게 전개된 데에는 최씨의 역할이 숨어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당시 민주당에서 연예인들을 동원·관리하는 역을 맡았던 B씨는 “부산에서 민주당의 선거유세가 있을 때 대개는 썰렁하기 그지없는데 연예인을 데리고 가면 냉담한 분위기를 달구는 데 큰 효과가 있다”며 “돈 주고 청중들을 모았던 과거와 비교하면 연예인들은 수백억원대의 홍보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회창 전 총재는 1997년 선거 당시 자신을 지지했던 가수 현철 설운도 등 연예인들과 두어 달에 한 번씩은 식사를 함께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대선 때 한나라당 연예인 지지자들의 모임인 ‘연예인 홍보단’을 이끌었던 코미디언 석현씨는 “이 전 총재는 연예인을 1회용으로 이용하지 않고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겠다며 정기적으로 만나왔다”고 말했다.

연예인들은 정치인을 돕는 대가로 연예계에서의 안정된 입지 등을 보장받고 싶어한다. 2000년 드라마 ‘왕건’ 제작을 앞두고 몇몇 스타들이 경쟁을 벌이던 때의 얘기. 집권 여당의 중진 의원과 가까이 지내던 한 연예인 매니저가 왕건 역을 따내기 위해 이 의원과 접촉을 시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인사의 요구는 간단했다. “방송사 간부에게 말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매니저가 관리하는 배우는 이 배역을 따내는 데 실패했다. 이 매니저는 이에 굴하지 않고 주연급 조연인 견훤이나 궁예 역으로 목표를 돌리고 2차 로비에 나섰다. 그러나 이 역시 도상 시나리오로 끝났고 주변에서는 모든 게 자가발전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본인은 “연기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로비에서 졌을 뿐”이라며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이후 보궐선거 등 정치인의 선거활동을 도와주는가 하면 수시로 정치권 인사들과 친분을 쌓으며 ‘후일’을 도모하고 있다.

‘권력과 스타’ 잘못된 밀월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영삼 후보를 지지했던 이덕화씨 등 연예인들 (왼쪽)과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지지했던 최병서씨 등 연예인들.

96년 총선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신한국당은 드라마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주연급 남자 연기자에게 지원유세를 요청했다. 그러자 이 연기자는 “전국구 자리를 줄 수 있느냐”며 협상을 우회적으로 제의해왔다고 한다. 당 지도부는 고민 끝에 없었던 일로 했다고 한다. 92년 대선 때 연기자협회장으로 여러 연예인들과 함께 전국을 돌며 김영삼 후보의 당선을 도왔던 이덕화씨는 15대 국회의원 선거 때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가 고배를 마셨다.

안정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연예인의 경우 그만큼 대중적 영향력도 커서 정치권의 유혹을 많이 받는다. 그러나 선거 결과가 불확실할 경우 어느 한쪽을 지지했다가 반대쪽 지지자들로부터 외면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정치 참여에 수동적이거나 소극적인 경우가 많다. B씨는 “연예인들이 잘 나서려 하지 않아 당내의 모든 연줄을 총동원해 설득 작업에 나섰다”며 “그 과정에서 일부 연예인들은 ‘보험용’으로 대가를 노골적으로 요구해 연예인 영입 계획이 무산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치인과 연예인은 경우에 따라 역할을 바꿔가며 서로를 이용한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가 되는 것이다. 2000년 전국을 강타했던 벤처기업 열풍은 연예계에도 불어닥쳤다. 모 방송국 공채 탤런트라고 적힌 명함을 갖고 다니며 평소 정치권을 기웃거리던 L씨는 당시 벤처기업을 창업, 사업설명회에 여당 중진 K씨와 야당 K, J씨 등 10여명의 의원을 초청했다. 이 가운데 3명이 참석했지만 L씨는 자신의 사업에 정치인들의 권위와 무게를 활용, 많은 투자자를 확보했다.

‘정치인·연예인 염문설’ 마타도어 전략 활용하기도

수지 김 살해범으로 복역중인 윤태식씨가 벤처사업을 하며 친분이 있던 정치인을 불러 사업의 권위를 대외적으로 알린 것과 같은 수법이다. 이후 L씨는 사업설명회에 참석했던 정치인들의 후원회 장소에 꼭꼭 모습을 드러냈다. 경우에 따라 후배 연예인들을 후원회로 불러 행사를 지원하기도 했다.

정치인과 연예인은 이처럼 가까이 지내다 보니 종종 스캔들도 터져 나온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서울지역에서 출마한 모 후보는 영화배우와의 염문설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 연예인 출신 의원의 소개를 통해 여배우를 후원회장에 초청한 것이 발단이었지만 상대후보의 마타도어 전략에 휘말려 제대로 선거를 치르기 힘들 정도로 문제가 커졌던 것이다.

정치인과 연예인의 관계는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새로운 트렌드를 보이고 있다. 대중 스타들의 정치·사회 현실 참여가 두드러지면서 예전처럼 특정 정치세력에 의해 동원되는 것이 아니라 이념과 색깔에 따라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수직적 관계도 수평적으로 바뀌는 흐름이 감지된다. 영화배우 문성근, 가수 신해철 등 소신과 색깔이 뚜렷한 연예인들은 음습한 ‘정·연(政·演) 커넥션’을 햇볕 아래로 끌어내 새로운 관계를 정립한 주역들로 평가된다. 정치권에서는 갈수록 대중 연예인들의 정치적 활동공간과 역할이 커질 것으로 전망한다.



주간동아 380호 (p76~77)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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