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0

2003.04.17

“미국 비위 맞춰 뭘 얻으려는가”

‘대중음악인 연대’ 주도 신해철 “파병으로 국가 도덕성 잃어 … 현실정치 참여 뜻 없어”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04-10 13: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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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비위 맞춰 뭘 얻으려는가”
    신해철은 잠긴 목소리로 인터뷰에 응했다. 4월4일 기자와 만난 그는 40곡을 작곡해야 하는 게임 음악 작업의 마감이 사흘 앞으로 다가와 며칠째 밤을 새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특유의 달변은 여전했다. “이미 쇠락해가는 미 제국주의의 비위를 맞춰서 대체 뭘 얻겠다는 거죠? 이미 1, 2차 대전 때 많은 국가들이 줄 잘못 섰다가 큰코다치지 않았습니까. 정부는 지금 역사적 교훈마저 도외시하고 있는 겁니다.”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는 듯 파병 반대를 주장하는 그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50명이 넘는 가수들이 참가한 ‘대중음악인 연대’를 주도했는데….

    “주도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이 모임은 입에서 입으로 전하고,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연락해 이뤄진 거다. 사실 가수들이 참 ‘산만한’ 인간들인데 이렇게 모인 게 어딘가 싶다.”

    -선언 이후 다른 후속 행동, 예를 들면 반전 콘서트 등을 준비하고 있는가.

    “논의중이지만 가수들의 스케줄 등을 고려해야 하므로 이 움직임은 느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파병 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었기 때문에 좀더 빨라질 것 같다.”



    -당신은 이라크전 파병을 반대하며 ‘다음은 우리 차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북한 공격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발언일 텐데, 파병으로 한미 간 긴장관계를 완화하는 것이 미국의 북한 공격 가능성을 줄이는 길이 아닌가.

    “나는 그런 주장이야말로 대단히 감상적이고 현실을 모르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라크 역시 유엔 무기사찰 등 미국의 모든 요구를 들어주었으나 결국 침략당했다. 또한 파병이 경제적 이득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과연 그 경제적 이득이 무언지 되묻고 싶다. 미국이 우리에게 이라크의 유전 채굴권이라도 줄 것 같은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명분 없는 전쟁에 찬성함으로써 한국이 도덕성을 잃는다는 문제다. 일제시대 이래 우리는 그저 ‘잘 먹고 잘 살자’는 데만 골몰하다 보니 도덕이라는 것은 학교의 수업시간에서나 잠깐 듣는 덕목으로 남고 말았다. 그러나 한국경제의 위기가 감기 정도의 병이라면, 국가가 도덕성을 잃는 것은 폐암 말기 정도의 중대한 증상이다. 도덕성을 확보하지 못한 국가를 다음 세대에게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는데 현재 노대통령은 파병을 주장하고 있다.

    “한 후보를 지지했다는 것이 그 후보가 대통령이 된 후의 모든 통치행위를 지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노대통령에게 실망보다는 동정을 느낀다. 대통령이 되지 않았으면 그는 끝까지 자신의 신념대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때로 개인의 신념을 버릴 것을 요구하는 자리인 것 같다.”

    -신당 참여 등 현실정치에 동참하자는 요구가 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실제로 그런 요구를 몇 번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나는 마이크 들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연예인들의 정치 참여가 과거에 비해 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처럼 연예인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나오리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연예인들 스스로가 정치를 두려워하고 정치는 자신과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일종의 패배의식을 아직 떨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연예인의 실제 정치 참여를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만 해도 당신을 비롯한 많은 연예인들이 유세에 나서는 등 정치 행위를 했다.

    “스스로의 역량이나 신념이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다만 대중의 눈에 잘 뜨인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그 연예인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 일하는 정치인에게도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당신의 신념을 구호나 연설이 아닌 음악으로 표현할 생각은 없는지.

    “사실 지난 15년간 음악하면서 그런 고민을 너무나 많이 해왔다. 그러나 지난 군사정권 시절 운동가요들의 노골적 가사들, 예를 들면 ‘죽창에 찔려…’ 운운하는 가사는 적지 않은 학생들에게 시위에 대한 염증을 불러일으켰다. 정치나 현실 메시지를 10% 담으면 그 노래의 예술성은 70, 80%씩 감소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많이 만들었지만 대부분 파기했다. 설령 메시지를 담는다 해도 직접적인 가사는 쓰지 않는다. 내 노래 ‘힘겨워하는 연인들을 위해’는 동성동본 커플에 대한 노래다. 하지만 이 노래에는 동성동본이나 법 철폐 같은 가사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이 노래를 그저 사랑타령인 줄만 알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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