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0

2003.04.17

‘중앙박물관’ 개혁 옷 갈아 입을까

차관급 이건무 신임관장 체제 출범 … 용산 이전·조직개편 등 난제 산적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3-04-10 13:22: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중앙박물관’ 개혁 옷 갈아 입을까

    이건무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왼쪽 위).용산에 건설중인 새 국립중앙박물관 조감도(큰 사진).

    3월31일 청와대는 1급에서 차관으로 승격된 국립중앙박물관장에, 30년간 이곳에서 일해온 이건무 학예실장(56)을 임명했다. 그러나 이 결정이 쉽게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상자기사 참조). 김영삼 정부 초기인 1993년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앙박물관)으로 사용되던 조선총독부 건물의 철거를 두고 격론(하드웨어)이 벌어진 이후 10년 만에 박물관장의 성향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소프트웨어)인 만큼 치열했다. 좁디좁은 문화판에서 벌어진 싸움이라 문화계 인사들의 촉각은 곤두섰고 결국 이건무 신임관장이 낙점을 받았지만 ‘용산시대’를 개막할 그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진 셈이다.

    “앞으로 2년이 우리나라 박물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4월3일 오전 조촐한 취임식을 마친 이관장은 이 말을 남기고 용산 중앙박물관 건설현장으로 달려갔다. 그는 새 정부가 자신을 신임관장으로 택한 이유가 중앙박물관의 성공적인 용산 이전을 위해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서울의 중심인 용산에 세워지고 있는 중앙박물관 건립에는 4000억원 이상의 예산이 투입됐다. 한마디로 거대한 빈 상자인 중앙박물관의 내부를 제대로 채워, 효과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신임관장의 임무다. 그러나 이 일은 결코 만만치 않다.

    건물 완공되는 내년부터 이전

    ‘중앙박물관’ 개혁 옷 갈아 입을까

    중앙박물관으로 사용한 조선총독부 건물이 해체되고 있다(위). 중앙박물관 실제 공사현장.

    우선 중앙박물관 지하수장고를 다 풀어야 채울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중앙박물관은 거대하다. 중앙박물관은 해방 이후 여섯 번이나 이사하며 제 집을 갖지 못한 채 더부살이를 해왔다. 중앙박물관의 이영훈 부장은 “동양실을 대폭 확충하는 등 세계 6대 박물관으로의 도약이란 양적 성장이 목표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년 초 건물이 완공되는 대로 이사를 시작해 2005년 7월에 개관하는 중앙박물관이 말 그대로 도약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왜냐하면 박물관 운영에 대한 전문가들의 진단이 어둡기 때문이다. 거대한 규모를 감당할 만한 내실은커녕 아직도 일제시대 때부터 전해온 문화재조차 등록하지 못했을 만큼 중앙박물관의 운영이 부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의 비난은 또 관료화된 중앙박물관의 내부시스템으로 이어진다. 일부 전문가들은 중앙박물관의 학예실과 사무국이 제대로 된 관계 설정 모델을 확립하는 데 실패해 박물관 운영이 정체돼왔다고 지적하고 있다. 학예실은 소극적으로 전문화에 치중했고 사무국은 공무원의 틀에 안주했다는 얘기다. 더구나 문화관광부 외청인 문화재청과는 자존심 싸움과 직급문제로 엉켜 효율적인 업무 조율을 해오지 못했다는 것.

    이는 일제로부터 물려받은 낙후된 조직을 지켜오기에 급급했던 박물관의 체질적인 보수성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단국대 하계훈 교수는 “단 한 번도 박물관이 관료주의에 찌든 조직을 깨기 위한 인사교류나 발탁인사를 해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추계예술대학의 이보아 교수는 “결국 관장의 경영능력이 단 한 번도 박물관에 제대로 접목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신임 이관장의 경우 30년간의 근무경험이 장점이기도 하지만 혁신적인 개혁은 하지 못할 것이라는 성급한 예측이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앙박물관’ 개혁 옷 갈아 입을까
    부족한 예산으로 인한 사업비와 인력 부족, 여기에 학예사들의 열악한 처우는 중앙박물관의 고질적인 난제다. 15만점의 유물을 관리하는 학예실(유물, 미술, 고고과) 인력은 2000년까지 불과 30여명 선에 그쳤다. 결국 ‘용산시대’가 주는 선물은 조직의 변화와 학예사들의 증원이다. 그러나 이 또한 다른 문제를 낳고 있다.

    박물관의 꽃인 학예사는 2001년 이후 20명 이상을 새로 뽑았다. 70%의 경이적인 증가율이다. 이백규 한국고고학회 회장은 “조직의 갑작스런 확대가 내적으로 얼마나 혼란스러운지는 당사자들만이 알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대로 된 인력시장이 없는 고고학과 미술학계에서 갑작스런 인력 증원은 부실 전문가 집단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차관급 박물관장’으로의 승격이 갖는 의미는 크다. 그동안 문화계 인사들의 숙원이었던 차관 승격이 이뤄짐으로써 신임관장은 다소나마 정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만큼 신임 이관장은 그동안 문화계의 과제였던 문화계 인사들간 암투와 갈등을 해소하고 학맥으로 얽힌 어려운 이해관계를 조정해나가야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주문이다.

    “꽃상여 나가기 전엔 새로운 학설이 안 나온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 정도로 보수적인 고고학계의 힘은 문화재시장에까지 여파를 미치고 있어 일부 전문가들은 일종의 문화권력을 누리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역사 해석을 둘러싼 ‘역사관’ 논쟁은 시작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었다. 선후배로 얽힌 몇몇 전문가 사이에서 중앙박물관장을 둘러싼 인선의 혼선은 결국 역사관보다는 밥그릇 싸움이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중앙박물관장 최종 인선 과정에서 박물관은 돈을 버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경영 마인드보다는 ‘전문성’에 무게가 실렸다는 말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성공적인 용산 입성을 위해서는 재정문제뿐 아니라 미군 헬기장 이전문제 등 산적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 결국 신임관장은 안으로는 문화재에 대한 체계적 관리와 밖으로는 산적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임기를 시작한 셈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