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26

2018.02.14

김맹녕의 golf around the world

암탉 골퍼, 자벌레 골퍼를 아십니까

골프 치터(cheater)

  • 입력2018-02-13 11: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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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팅 그린에서 공은 마크하고 집어 올린 그 자리에 다시 놓아야 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사진 제공 · 김맹녕]

    퍼팅 그린에서 공은 마크하고 집어 올린 그 자리에 다시 놓아야 한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사진 제공 · 김맹녕]

    골프는 심판이 따로 없고 골퍼 스스로 심판이 된다. 속이는 사람이 없다는 전제 아래 플레이하는 신사의 게임이다. 하지만 골프만큼 속이기 쉬운 스포츠도 없다. 남이 보지 않으면 공을 슬쩍 좋은 곳으로 옮기고 싶은 유혹이 늘 따르게 마련이다. 그러나 속임수를 쓴 것이 드러날 경우 동반자는 불쾌감을 느끼고 그 사람을 멀리하게 된다. 

    골프나 인생에서 ‘치터’(cheater · 속이는 자)로 낙인찍히는 것만큼 불명예스러운 일도 없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오랜 골프 지기이자 LPGA투어에서 통산 15번 우승한 수잔 페테르센은 1월 30일 “그는 너무 속인다(He cheats like hell)”고 언론에 폭로했다. 그의 폭로로 트럼프 대통령은 얼굴에 먹칠을 한 셈이 됐다. 

    미국 골프 격언에 ‘골프에서 속임수를 쓰면 비즈니스에서도 속인다(They say that if you cheat at golf, you cheat at business)’는 말이 있어 비즈니스맨이나 정치가는 골프 라운드를 할 때 상당히 조심하는 편이다. 스코틀랜드에서는 신랑감을 고를 때 ‘그 사람의 진정한 성격을 알려면 골프를 쳐보면 된다(To find a man’s true character, play golf with him)’고 조언한다. 함께 골프를 해보면 그의 성품 등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서양인들은 자녀에게 ‘골프를 칠 때 속이지 말라. 골프 신들이 보고 있다(Don’t cheat. Golf Gods are watching)’고 가르친다.
     
    우리나라에선 지위가 높을수록 은근슬쩍 속이고 넘어가려는 경향이 강하다. 주위에서 부추긴다고 하지만 확고한 주관과 자존감이 있으면 그런 속임수를 쓰지 않는다. 

    골프 속이기는 대략 53가지가 있다고 한다. 이 중 골퍼가 가장 많이 하는 5가지 행위를 살펴보자. 

    첫 번째는 라이의 개선이다. 공이 나무 밑 또는 숲 속으로 떨어지면 그대로 치거나 언플레이드 볼을 선언해야 하는데 샷 하기가 좋은 곳으로 옮겨놓고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두 번째는 그린에서 퍼팅 거리를 단축하는 자벌레(inchworm) 골퍼가 많다. 공을 마크한 자리에 다시 놓지 않고 벌레가 기어가듯 1인치가량 앞에 두는 것이다. 어떤 골퍼는 그린에 먼저 올라가 공을 집고 볼마커를 홀 인근에 던진 뒤 시치미를 떼기도 한다. 

    세 번째는 소위 알까기다. 로스트 볼이나 OB(Out of Bounds)가 난 공을 ‘부활’시키는 기술이다. 호주머니에 구멍을 뚫고 공을 바짓가랑이 사이로 굴려서 알을 까는 암탉 골퍼를 자주 본다. 

    네 번째는 스코어 속이기다. 분명 스코어가 트리플인데 1타 줄여 더블보기로 적는 경우다. 

    다섯 번째는 공 바꿔 치기다. 티샷은 타이틀리스트 공으로 하고는 중간에 공이 해저드에 들어가면 얼른 다른 공을 내놓고 태연히 샷을 한다. 

    이 밖에도 벙커에서 상대가 안 본다고 클럽을 모래에 대고 치거나 드롭(drop) 시 홀에 가까운 쪽으로 공을 떨어뜨리는 등 소소한 속임수 역시 셀 수 없을 정도다. 

    영어 속담에 ‘한 번 속이면 늘 속인다(Once a cheater, always a cheater)’는 말이 있다. 골프 코스에서 속이는 행위는 상대방에게 쉽게 발각된다. 상대가 기만행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뿐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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