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앤비트’의 모든 악기는 재활용품이다. 이들에게 악기를 만드는 것 역시 교육이고 삶이다.
좀 어둡고, 지나치게 민감할 것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학교를 자퇴하고, 가족과 말도 하지 않으며, 정신과 치료도 받았는가 하면, 사고뭉치 외에 다른 이름으로는 불려본 적이 없었던 젊은이들이 ‘위트앤비트(Wit and Beat)’란 음악 퍼포먼스 팀을 만들었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가졌던 생각은 그야말로 음산한 편견이었다.
찌는 무더위에 하루 9시간 이상 극장에서 맹연습을 하고 있는 ‘위트앤비트’ 멤버들은 그동안 만나본 또래들 누구보다 밝고 긍정적이었다. 무엇보다 펄떡펄떡 살아 있었다. ‘잘 나가고 싶다면 차 버려!’라는 자동차 광고 카피가 떠올랐다.
“잘 나가고 싶다면 두려움 버려, ‘위트앤비트’처럼!”
‘위트앤비트’는 8명이다. 3명은 정규학교에 적응하기를 거부한 자퇴생이고, 3명은 배우로서 ‘죽음’을 경험한 전업 배우들이다. 어린이 단원 2명은 정규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대안학교에 다닌다. 이들은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을 때 생기는 두려움과 미쳐 돌아가는 경쟁 시스템을 버리고 다른 길을 선택했다.
입장료 받고 극장 공연은 처음
‘위트앤비트’의 멤버들은 멀티플레이어형 문화작업자를 키워내기 위해 1999년 설립된 하자센터 내 10대 공동체 ‘노리단’의 단원으로 만났다. 그리고 극장 공연을 위한 팀 ‘위트앤비트’가 올해 초 선발됐다. 그동안 ‘노리단’은 많은 야외 페스티벌 등에 참가했지만, 입장료를 받고 극장 공연을 하는 것은 ‘위트앤비트’가 처음이다. 연출은 ‘난타’ 기획자 중 한 명이며 ‘점프’를 총감독한 최철기 씨가 맡았다.
‘위트앤비트’ 공연을 앞두고 가진 쇼케이스. 소리를 몸으로 표현하는 퍼포먼스 공연이다.
“‘노리단’의 삶은 무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에요. 개인의 인생 자체가 완전히 바뀌는 것을 의미하죠.”
피트비트(22)는 18세에 가출을 경험했고, 하자센터를 찾은 뒤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대안학교인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연극을 배웠고 ‘노리단’ 단원이 됐다. “돌아보니 자퇴에 동의한 부모님이 대단했다. 학교를 그만둔 것은 잘한 결정이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모였으니 갈등과 사고가 없지 않아요. 하지만 이 문제를 몇몇 사람이 조용히 처리하지 않고 공유해서 함께 해결함으로써 우리 모두 성장해나가요. 파라다이스는 아닌데, 사회 다른 영역과 비교하니 파라다이스처럼 보이죠.”
‘위트앤비트’들이 가장 자주 쓰는 단어가 ‘성장’이다.
“‘노리단’에서 1년 반 정도 생활했어요. ‘망아지’가 아닌 자유인으로, 내가 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공부와 담 쌓고 부모 속을 썩이며 여자, 술, 담배, 오토바이 등 ‘양아치’로 살았던 동구(18)는 노리단에 들어온 이후 이 모든 것을 끊었다. 학교 다닐 땐 동구에게 맞은 아이의 부모가 집에 찾아오는 일이 끊이질 않았지만, 지금 그는 다른 사람들을 볼 때 행복하다고 한다. 노리단에 오디션이 있긴 해도 이는 “경쟁하는 게 아니라 만나서 반가운 것”이라고 한다.
명월(20)은 고등학교 때 학교를 그만두려 했지만 부모의 반대에 부딪혀 1년간 정신과 치료를 받은 뒤 하자센터로 왔다. 이곳에서 문화기획에 참여하면서 행복을 느낀 명월이 다시 학교를 자퇴하겠다고 하자 이번에는 부모가 허락했다. 명월은 “노리단에서 내가 인생의 주연배우가 돼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곳에서 내 인생의 점핑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자신한다.
‘레몬’ 김예리는 눈이 예쁜 11살 어린이다. 노리단 공연을 보고 어머니와 상의 끝에 다니던 초등학교를 그만두고 노리단 내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다.
‘위트앤비트’를 통해 배우들은 성장한다고 말한다. 동구, 피트비트, 명월, 레몬, 힘찬이 그들이다.
레몬은 중학교 과정은 홈스쿨링으로 배우고, 고등학교는 일반 학교를 갈 계획이라고 한다.
‘힘찬’ 주힘찬은 12살 남자 어린이로 일반 초등학교에 다닐 때 ‘소문난 개구쟁이’였으며 야단을 많이 맞아 오히려 눈치만 발달했다고 한다.
“전에 친구들이랑 싸운 건 애들이 먼저 시비 걸고 때려서 그랬던 거고, 여기 와선 때리지 않아요. 아이들과 어른들이 서로를 존중해요. 수업도 선생님이 말하고 우리는 듣는 그런 식이 아니어서 우리가 계속 말을 하게 되고 공부도 쉬워요. 전엔 컴퓨터게임도 했었는데, 지금은 안 해요. 재미없어서요. 제 꿈은 축구선수가 되는 거예요.”
나이 어리지만 파란만장한 삶 경험
‘위트앤비트’에 합류한 전문 배우들의 삶도 이들 못지않게 파란만장하다. 아이(24)는 무대에서 사고를 당해 2차례 수술을 받은 뒤 다시 배우가 될 수 없을 거라는 절망 속에서 방황하다가 노리단에 들어와 새 인생을 찾았다. 렌(33)은 김덕수 사물놀이패를 거쳐 타악 아티스트로 살기로 결심하고 7년 동안 고수들을 찾아다니다가 노리단에 들어왔다. ‘반항아’와 ‘문제아’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뒤늦게 대학 연극과에 진학한 반디(34)는 노리단에서 신체로 표현하는 배우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노리단이 된다는 건 극단 가입뿐 아니라 공동체 철학에 동의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초대한다’고 해요.”(팅, ‘위트앤비트’ 조연출자)
생태주의 퍼포먼스 그룹 ‘위트앤비트’의 악기는 모두 재활용품이다. 자동차 휠로 만든 ‘감돌’, 전선매립 파이프로 만든 ‘공룡’, 화공약품통으로 만든 ‘두둥’ 등. 흔히 보는 폐품들이지만 맑은 타악기에서 웅장한 관악기 소리까지, 비트를 울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재활용품을 조합해 소리를 만들고, 연구하고, 다시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일도 노리단의 교육과정이기 때문에 이들은 무궁무진하게 악기를 만들 줄 안다. 창조의 기쁨을 알고, 삶의 한걸음 한걸음이 음악이 되니 즐겁지 않을 수 없다.
“제 또래 여성들에게 ‘노리단’을 경험해보라고 권합니다. 자유롭게, 평등하게 살고 싶다면 스스로 그렇게 살면 된다는 사실을 여기서 깨달을 수 있어요. 나를 내던지니까 알게 되던데요.”(피트비트)
어쩌면 아이들의 미래를 근심하는 전 국민에게 새로운 대안이 될지도 모를 ‘위트앤비트’의 첫 번째 유료 공연은 8월8일부터 9월24일까지 문화일보홀에서 열린다. 홈페이지는 www.witandbea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