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진 감독의 기존 코미디에 익숙해져 있는 관객들에게 ‘귀신이 산다’는 조금 낯선 영화다. 폭력적인 현실세계에서 소시민 남성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것이 제1 목표였던 이전 영화들과 달리 ‘귀신이 산다’는 귀신 들린 집이라는 초자연적인 무대에서 벌어지는 남녀간의 알력을 다룬다.
작품의 기획 의도에는 성장의 흔적이 보인다. 김감독의 이전 영화들은 “에이, ×× 같은 세상, 쫛쫛쳐버리겠어!”라고 잔뜩 짜증을 내는 10대 남자아이들의 감수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번 영화에서는 진짜 남자 어른처럼 굴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귀신이 산다’가 특별히 고상한 이야기라는 얘기는 아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비교적 전통적인 호러 코미디의 공식을 따른다. 거제도 조선소 기사인 필기는 피땀 흘려 모은 돈으로 경치 좋은 해변에 있는 한 저택을 산다. 하지만 저택에는 이미 연화라는 귀신이 살고 있었다. 이때부터 집을 둘러싼 필기와 연화의 피 터지는 싸움이 시작된다. 나머지 스토리 전개 역시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초반부는 넘어지고 자빠지는 필기의 슬랩스틱 코미디(액션을 과장한 희극)이고, 필기가 연화를 볼 수 있게 된 뒤부터는 남녀간의 일대일 알력을 다룬 스크루볼 코미디(대담한 대사들이 오가고 있음직하지 않은 상황들이 펼쳐지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코미디의 한 종류)이며, 연화의 사연이 알려진 이후로는 ‘사랑과 영혼’식의 눈물 찍찍 멜로가 된다.
그래서 ‘귀신이 산다’는 성실한 영화다. 영화는 지금까지 감독이 해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고, 배우들도 열심이며, 모험적인 장면들도 많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영화는 의도만큼의 결과는 내지 못한다.
가장 큰 문제점은 김상진이 아직까지 여성 캐릭터를 충분히 생동감 있게 그려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단 여자 귀신과 남자 인간과의 알력으로 이야기의 주제를 잡아놓은 건 좋았는데, 비교적 편안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진 필기라는 캐릭터와 달리 연화 캐릭터는 영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필기를 괴롭힐 때는 비틀 주스와 같은 사악하고 성미 사나운 악령처럼 보이고, 얼굴이 보인 뒤부터는 툭하면 욕을 뱉는 성질 사나운 여자처럼 굴다가, 막판의 멜로에 도달하면 지금까지 내가 뭘 어쨌냐는 듯 ‘청순 가련’한 여자 주인공으로 돌아간다. 어느 쪽이건 우리는 연화를 하나의 살아 있는 캐릭터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연화는 남자들이 비교적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여성상의 일관성 없는 결합이다.
그 결과 ‘귀신이 산다’는 일종의 섀도복싱(가상의 적을 염두에 두고 혼자서 공격, 방어를 연습하는 일)처럼 변해간다. 형식상으로는 남녀간의 일대일 대결인 영화가 남자 주인공이 허공에 뜬 이미지를 향해 주먹을 날려대고 있는 셈이다. 영화가 여자 주인공을 진짜 귀신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문제점은 더 커지기도 한다. 비교적 손쉬운 코미디 멜로의 도구였다고 생각되었던 게, 정작 두 주인공의 개성으로 끌어가야 할 중·후반부에 이르면 힘을 잃는 것이다. 여전히 김상진식 유머는 영화 곳곳에서 발견되었지만, ‘귀신이 산다’는 지나치게 일찍 만들어진 영화다.
Tips
김상진
1967년생.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반영웅적인 소시민이 좌충우돌하는 영화를 만들어왔으며 강우석 감독 밑에서 영화를 배워 ‘재미있는 영화’에 대한 소신이 투철하다. ‘돈을 갖고 튀어라’ ‘투캅스3’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광복절특사’ 등을 연출했다.
작품의 기획 의도에는 성장의 흔적이 보인다. 김감독의 이전 영화들은 “에이, ×× 같은 세상, 쫛쫛쳐버리겠어!”라고 잔뜩 짜증을 내는 10대 남자아이들의 감수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이번 영화에서는 진짜 남자 어른처럼 굴어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다고 ‘귀신이 산다’가 특별히 고상한 이야기라는 얘기는 아니다. 영화의 스토리는 비교적 전통적인 호러 코미디의 공식을 따른다. 거제도 조선소 기사인 필기는 피땀 흘려 모은 돈으로 경치 좋은 해변에 있는 한 저택을 산다. 하지만 저택에는 이미 연화라는 귀신이 살고 있었다. 이때부터 집을 둘러싼 필기와 연화의 피 터지는 싸움이 시작된다. 나머지 스토리 전개 역시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초반부는 넘어지고 자빠지는 필기의 슬랩스틱 코미디(액션을 과장한 희극)이고, 필기가 연화를 볼 수 있게 된 뒤부터는 남녀간의 일대일 알력을 다룬 스크루볼 코미디(대담한 대사들이 오가고 있음직하지 않은 상황들이 펼쳐지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코미디의 한 종류)이며, 연화의 사연이 알려진 이후로는 ‘사랑과 영혼’식의 눈물 찍찍 멜로가 된다.
그래서 ‘귀신이 산다’는 성실한 영화다. 영화는 지금까지 감독이 해보지 못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있고, 배우들도 열심이며, 모험적인 장면들도 많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영화는 의도만큼의 결과는 내지 못한다.
가장 큰 문제점은 김상진이 아직까지 여성 캐릭터를 충분히 생동감 있게 그려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단 여자 귀신과 남자 인간과의 알력으로 이야기의 주제를 잡아놓은 건 좋았는데, 비교적 편안하고 설득력 있게 그려진 필기라는 캐릭터와 달리 연화 캐릭터는 영 감이 잡히지 않는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필기를 괴롭힐 때는 비틀 주스와 같은 사악하고 성미 사나운 악령처럼 보이고, 얼굴이 보인 뒤부터는 툭하면 욕을 뱉는 성질 사나운 여자처럼 굴다가, 막판의 멜로에 도달하면 지금까지 내가 뭘 어쨌냐는 듯 ‘청순 가련’한 여자 주인공으로 돌아간다. 어느 쪽이건 우리는 연화를 하나의 살아 있는 캐릭터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연화는 남자들이 비교적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여성상의 일관성 없는 결합이다.
그 결과 ‘귀신이 산다’는 일종의 섀도복싱(가상의 적을 염두에 두고 혼자서 공격, 방어를 연습하는 일)처럼 변해간다. 형식상으로는 남녀간의 일대일 대결인 영화가 남자 주인공이 허공에 뜬 이미지를 향해 주먹을 날려대고 있는 셈이다. 영화가 여자 주인공을 진짜 귀신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그 문제점은 더 커지기도 한다. 비교적 손쉬운 코미디 멜로의 도구였다고 생각되었던 게, 정작 두 주인공의 개성으로 끌어가야 할 중·후반부에 이르면 힘을 잃는 것이다. 여전히 김상진식 유머는 영화 곳곳에서 발견되었지만, ‘귀신이 산다’는 지나치게 일찍 만들어진 영화다.
Tips
김상진
1967년생.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나와 반영웅적인 소시민이 좌충우돌하는 영화를 만들어왔으며 강우석 감독 밑에서 영화를 배워 ‘재미있는 영화’에 대한 소신이 투철하다. ‘돈을 갖고 튀어라’ ‘투캅스3’ ‘주유소 습격사건’ ‘신라의 달밤’ ‘광복절특사’ 등을 연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