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를 만드는 여인(輿人)은 사람이 모두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짜는 장인(匠人)은 사람이 일찍 죽기만을 기다린다. 이는 여인이 더 선하고 장인이 더 악해서가 아니다. 사람이 부귀해지지 않으면 수레가 안 팔리고 이와 반대로 사람이 죽지 않으면 관이 팔려 나가지 않는다. 정녕 사람이 미워서가 아니라 사람이 죽는 데 이득이 있기 때문이다.”(한비자)
3년에 걸쳐 두 권의 ‘한비자’를 완역해낸 이운구 전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는 “스승 순자의 유물론적 세계관을 토대로 인간은 이(利) 지향적인 동물이라고 파악한 한비는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가치평가를 일절 배제하고 오로지 진(眞)이냐 위(爲)냐 하는 사실 인식만을 문제 삼았다”고 설명한다.
한비가 생존했던 당시 중국은 전국시대 말기로 한비가 태어난 한나라는 진, 초, 조, 위, 송, 노나라에 둘러싸인 약소국이었다. 장차 천하를 통일할 진나라가 점차 강성해지면서 생존을 위협하자 한비는 부국강병을 위한 새로운 통치철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한왕에게 법치에 기초한 통치공학을 제시했다. 그 내용이 ‘한비자’에 담긴 55편의 글이다.
‘한비자’를 읽다 보면 한비가 실리를 좇는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데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한비자 외저설 좌상’편에 나오는 장수 오기의 이야기는 인(仁)의 얼굴 뒤에 숨은 이(利)를 보여주는 좋은 일화다. “오기가 위의 장수가 되어 중산(中山)을 쳤다. 병사 가운데 종기를 앓는 자가 있었다. 오기가 꿇어앉아 직접 고름을 빨아주었다. 종기 앓는 자의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다. 어느 사람이 묻기를 ‘장군께서 자네 자식에게 이와 같이 대해 주시는데 오히려 우니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오기가 그 아버지의 등창을 빨아주어서 아버지가 죽었다. 지금 이 자식도 또 죽게 될 것이다. 나는 그래서 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비는 인간관계에서 의리와 명분은 위선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부모가 아들을 낳으면 축하하고 딸을 낳으면 죽이는 마당에(부모가 장차 이득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군신관계에서 부자간의 정을 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차라리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 분명하면 누구나 용감해져 죽음을 무릅쓰고 공훈을 세운다. 군주는 엄격한 상벌로 통치해야지 자애를 베푸는 부모가 되려 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한비는 “군주가 어질지 않고 신하가 충성스럽지 않으면 가히 패왕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폈다.
한비는 세 가지 통치기술로 법(法), 술(術), 세(勢)를 제시했다. 우선 명문화된 법이 있어야 하며(현명한 군주는 도덕보다 법을 앞세운다), 사람들이 이 법을 따르도록 만드는 것은 상벌이다. 또 군주는 자신의 생각을 신하에게 쉽게 드러내지 않는 정치적 테크닉인 ‘술’이 있어야 하며 나아가 법과 술을 행사할 수 있는 힘, 즉 권력이 있어야 한다. 한비는 한왕에게 수차례 ‘법, 술, 세’를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적국인 진왕이 한비의 저술에 감탄하며 이 정책을 써서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비자’의 내용을 단지 권모술수로 해석하면 취할 게 별로 없다.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유교적 관점에서 보면 철저히 이해타산을 추구하는 한비의 사상은 분명 이단적이다. 지난 2000여년 동안 유교가 지배사상으로 자리잡으면서 법가의 고전인 ‘한비자’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손자병법’과 함께 ‘한비자’가 가장 현실적인 동양사상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묵직한 두 권의 완역본 ‘한비자’가 버겁다면 쉽게 읽을 수 있는 해설서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다. 민경서씨가 편역한 ‘한비자 인간경영’(일송미디어)은 현대적 조직문화에 ‘한비자’의 통치술을 적용해 본 것이고, 최윤재의 ‘한비자가 나라를 살린다’(청년사)는 경제적 관점에서 ‘한비자’를 재해석한 것이다. 고려대 최윤재 교수(경제학)는 “한비의 선구적 사상은 2000년 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정확히 일치한다”면서 “소인배를 군자로 만들기 위한 도덕타령, 양심타령은 그만두고 오늘날의 상과 벌인 ‘자유로운 시장경제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정교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 개혁을 성공시키자”고 주장했다. 각종 게이트로 어수선한 나라꼴을 보면서 어설픈 덕치보다 냉철한 법치가 그립다.
한비자(전 2권)/ 한비 지음/ 이운구 옮김/ 한길사 펴냄/ 전 968쪽/ 각 2만5000원
3년에 걸쳐 두 권의 ‘한비자’를 완역해낸 이운구 전 성균관대 교수(동양철학)는 “스승 순자의 유물론적 세계관을 토대로 인간은 이(利) 지향적인 동물이라고 파악한 한비는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가치평가를 일절 배제하고 오로지 진(眞)이냐 위(爲)냐 하는 사실 인식만을 문제 삼았다”고 설명한다.
한비가 생존했던 당시 중국은 전국시대 말기로 한비가 태어난 한나라는 진, 초, 조, 위, 송, 노나라에 둘러싸인 약소국이었다. 장차 천하를 통일할 진나라가 점차 강성해지면서 생존을 위협하자 한비는 부국강병을 위한 새로운 통치철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한왕에게 법치에 기초한 통치공학을 제시했다. 그 내용이 ‘한비자’에 담긴 55편의 글이다.
‘한비자’를 읽다 보면 한비가 실리를 좇는 인간의 본성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는 데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한비자 외저설 좌상’편에 나오는 장수 오기의 이야기는 인(仁)의 얼굴 뒤에 숨은 이(利)를 보여주는 좋은 일화다. “오기가 위의 장수가 되어 중산(中山)을 쳤다. 병사 가운데 종기를 앓는 자가 있었다. 오기가 꿇어앉아 직접 고름을 빨아주었다. 종기 앓는 자의 어머니가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다. 어느 사람이 묻기를 ‘장군께서 자네 자식에게 이와 같이 대해 주시는데 오히려 우니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였다. 대답하기를 ‘오기가 그 아버지의 등창을 빨아주어서 아버지가 죽었다. 지금 이 자식도 또 죽게 될 것이다. 나는 그래서 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한비는 인간관계에서 의리와 명분은 위선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부모가 아들을 낳으면 축하하고 딸을 낳으면 죽이는 마당에(부모가 장차 이득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군신관계에서 부자간의 정을 말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다. 차라리 자신에게 돌아올 이익이 분명하면 누구나 용감해져 죽음을 무릅쓰고 공훈을 세운다. 군주는 엄격한 상벌로 통치해야지 자애를 베푸는 부모가 되려 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한비는 “군주가 어질지 않고 신하가 충성스럽지 않으면 가히 패왕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폈다.
한비는 세 가지 통치기술로 법(法), 술(術), 세(勢)를 제시했다. 우선 명문화된 법이 있어야 하며(현명한 군주는 도덕보다 법을 앞세운다), 사람들이 이 법을 따르도록 만드는 것은 상벌이다. 또 군주는 자신의 생각을 신하에게 쉽게 드러내지 않는 정치적 테크닉인 ‘술’이 있어야 하며 나아가 법과 술을 행사할 수 있는 힘, 즉 권력이 있어야 한다. 한비는 한왕에게 수차례 ‘법, 술, 세’를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적국인 진왕이 한비의 저술에 감탄하며 이 정책을 써서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한비자’의 내용을 단지 권모술수로 해석하면 취할 게 별로 없다.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유교적 관점에서 보면 철저히 이해타산을 추구하는 한비의 사상은 분명 이단적이다. 지난 2000여년 동안 유교가 지배사상으로 자리잡으면서 법가의 고전인 ‘한비자’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손자병법’과 함께 ‘한비자’가 가장 현실적인 동양사상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묵직한 두 권의 완역본 ‘한비자’가 버겁다면 쉽게 읽을 수 있는 해설서로 시작해 보는 것도 좋다. 민경서씨가 편역한 ‘한비자 인간경영’(일송미디어)은 현대적 조직문화에 ‘한비자’의 통치술을 적용해 본 것이고, 최윤재의 ‘한비자가 나라를 살린다’(청년사)는 경제적 관점에서 ‘한비자’를 재해석한 것이다. 고려대 최윤재 교수(경제학)는 “한비의 선구적 사상은 2000년 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정확히 일치한다”면서 “소인배를 군자로 만들기 위한 도덕타령, 양심타령은 그만두고 오늘날의 상과 벌인 ‘자유로운 시장경제와 공정한 경쟁’을 보장하는 정교한 법과 제도를 만들어 개혁을 성공시키자”고 주장했다. 각종 게이트로 어수선한 나라꼴을 보면서 어설픈 덕치보다 냉철한 법치가 그립다.
한비자(전 2권)/ 한비 지음/ 이운구 옮김/ 한길사 펴냄/ 전 968쪽/ 각 2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