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공장 ‘동천모자’의 하루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모자 한 개를 생산하기 위해 거쳐야 할 공정은 모두 열여섯 단계. 컴퓨터에 디자인을 입력한 뒤 기계를 다뤄 자수를 뽑아내고, 천조각들을 이어 꿰매고, 단추를 달고, 다림질을 하고 불량품 검사, 가격표 붙이기, 비닐포장을 거쳐 마지막으로 배달 박스에 완성된 모자가 차곡차곡 담긴다. 모자공장에서 사용하는 박스는 보통 모자 50개가 담기는 크기다. 그러나 동천모자는 그 절반만 담기는 작은 박스를 쓴다.
“우리 공장엔 1부터 50까지 셀 수 있는 직원이 두 명밖에 없거든요.”(동천모자 성선경 대표)
서울 노원구에 자리한 동천모자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직업재활시설이다. 직원이 모두 70명인데, 이중 45명이 지능지수(IQ) 50~70의 지적(知的)장애인들이다. 일반 직원들은 마케팅, 영업, 자수 놓기, 재단 등 ‘고난도’ 일을 맡고 재봉이나 가격표 달기, 불량품 검사, 포장 등은 장애인 직원들이 맡는다. 좀 번거롭더라도 작은 박스를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직원 70명 중 45명 지적장애인
동천모자는 성선경(69) 대표에 의해 2001년 설립됐다.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성 대표는 KBS 아나운서와 기자로 일하다 사회복지법인 동천학원의 며느리가 되면서부터 장애인 복지사업에 종사하게 됐다.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동천학원 이사와 동천학교 교장을 지낸 그는 장애인들이 어렵게 고등학교까지 졸업해도 취직할 곳이 없다는 점이 못내 가슴 아팠다.
“여성 지적장애인들에게 재봉을 가르쳐봤어요. 일반인보다 속도가 느릴 뿐이지 앞치마나 보자기 같은 것을 꼼꼼하게 잘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바자 같은 데서 내다 판다고 돈이 되지는 않더군요. 장애인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는 사업이 필요했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모자공장을 방문하게 됐다. 공장 구석구석을 둘러본 성 대표는 ‘이 정도면 우리 장애인들도 할 수 있다’고 무릎을 쳤다. 모자 제조야말로 꼼꼼하고 성실한 노동력이 요구되는 분야인데, 그런 점이 지적장애인들의 적성에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중증장애인 30여 명을 고용한 근로시설 동천모자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처음엔 시행착오를 겪었다. 주로 시장에서 팔리는 저가 모자를 만들었는데, 이는 중국산과 가격경쟁이 되지 않았다. 이에 3년 전부터는 좋은 품질의 고급모자 생산으로 방향을 바꿨다. 디자이너 3명을 영입했고 매출액의 15%를 디자인 및 신제품 개발에 투자했다. 덕분에 현재 동천모자는 매년 22%의 매출 성장세를 보이는 ‘저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동천모자는 주로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모자를 만드는데, ‘고객’은 EXR 코리아, 휠라, MLB, FUBU 등 유명 스포츠웨어 브랜드들이다. 뿐만 아니라 국방부, 우체국, 한국전력 등 정부 및 공기업에서도 주문을 받아 모자를 납품한다. 어느 기업도 동천모자가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임을 알고 일감을 맡기지는 않았다.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동천모자는 지난해 매출 10억원을 달성했다. 직원 1인당 창출하는 매출액도 110만원 정도로 여타 장애인 보호작업장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지난해 10월에는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았으며, (재)실업극복국민재단 함께 일하는 사회로부터 2007 사회적 기업 경영혁신상을 받는 영예도 안았다.
성 대표는 “무엇보다도 장애인 직원들이 일반인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장애인 직원들은 80만~9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월급으로 조부모를 모시고 사는 직원도 있고 부모에게서 자립한 직원도 있다. 벌써 10여 명의 여직원이 월급을 모아 자기 힘으로 결혼을 했다고도 한다.
맡은 일 당당하게 처리 똑같은 직장인
포장팀장 이대길(31) 씨는 지적장애 3급. 어려서 뇌성마비를 앓은 그는 한 살 때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동천학원에서 자랐다. 잘 걷지도 못했던 그이지만 여러 차례의 수술과 재활을 통해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이자 가장이 됐다. 재작년에 역시 지적장애 3급인 동천모자의 동료 여직원과 결혼했는데, 이곳에서 근무하며 저축한 돈으로 18평짜리 전세 아파트를 구해 신혼집을 차렸다. 지난해 10월에는 정상아 아들도 낳았다. 오전 9시 회사에 출근해 오후 6시 퇴근해서 어린 아들을 안아주고 아내가 끓인 된장찌개로 저녁식사를 하는 그는, 여느 평범한 일반인 가장들과 다를 게 없다. 매달 50만원씩 저축하는데, 그중 10만원은 아들 이름으로 해놓은 적금통장에 넣는다. 성 대표가 “벌써부터 아들의 영어교육을 걱정할 정도로 열혈 아빠”라고 귀띔하자 그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진다.
“대학은 꼭 보내려고 하거든요. 제가 대학을 못 갔으니까. 공부 많이 시키고 싶어요.”
기자가 동천모자를 찾아간 날, 이대길 팀장을 비롯한 포장팀 직원들은 이틀 후부터 백화점에 진열되어 팔릴 여름 시즌 모자 생산 마무리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불량품을 골라내고, 가격표를 붙이고, 비닐포장을 하고, 박스에 정성껏 담는 일 등을 하나씩 맡아 조용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해내는 모습은 이들이 장애인이고 그러니까 일감을 맡기기엔 적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편견에 불과함을 새삼 깨닫게 했다.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이에요. 천천히 가르쳐만 주면 일반인 못지않게 잘 해낼 수 있어요.”(이대길 씨)
이씨의 꿈은 앞으로 더 열심히 돈을 모아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이고, 성 대표의 꿈은 장애인 직원들에게 월급을 더 많이 주는 것이다. 아디다스나 나이키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에 납품하게 된다면 그 꿈이 이뤄질 수 있지 않겠느냐며 성 대표는 수줍게 웃었다. 갈수록 마케팅이나 영업력의 부족함을 깨닫고 있기에 외부의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도 그의 바람이다.
그러나 이씨와 성 대표, 그리고 동천모자 직원들의 꿈은 결국 하나다. 장애인들도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힘으로 돈 벌고 아이 낳아 키우고 서로를 보듬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 꿈을 위해 동천모자는 오늘도 내일도 꼼꼼하고 씩씩하게 모자를 만들어낼 것이다.
“우리 공장엔 1부터 50까지 셀 수 있는 직원이 두 명밖에 없거든요.”(동천모자 성선경 대표)
서울 노원구에 자리한 동천모자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직업재활시설이다. 직원이 모두 70명인데, 이중 45명이 지능지수(IQ) 50~70의 지적(知的)장애인들이다. 일반 직원들은 마케팅, 영업, 자수 놓기, 재단 등 ‘고난도’ 일을 맡고 재봉이나 가격표 달기, 불량품 검사, 포장 등은 장애인 직원들이 맡는다. 좀 번거롭더라도 작은 박스를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직원 70명 중 45명 지적장애인
동천모자는 성선경(69) 대표에 의해 2001년 설립됐다.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졸업한 성 대표는 KBS 아나운서와 기자로 일하다 사회복지법인 동천학원의 며느리가 되면서부터 장애인 복지사업에 종사하게 됐다. 시어머니의 뒤를 이어 동천학원 이사와 동천학교 교장을 지낸 그는 장애인들이 어렵게 고등학교까지 졸업해도 취직할 곳이 없다는 점이 못내 가슴 아팠다.
“여성 지적장애인들에게 재봉을 가르쳐봤어요. 일반인보다 속도가 느릴 뿐이지 앞치마나 보자기 같은 것을 꼼꼼하게 잘 만들어냈습니다. 하지만 바자 같은 데서 내다 판다고 돈이 되지는 않더군요. 장애인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는 사업이 필요했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모자공장을 방문하게 됐다. 공장 구석구석을 둘러본 성 대표는 ‘이 정도면 우리 장애인들도 할 수 있다’고 무릎을 쳤다. 모자 제조야말로 꼼꼼하고 성실한 노동력이 요구되는 분야인데, 그런 점이 지적장애인들의 적성에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중증장애인 30여 명을 고용한 근로시설 동천모자가 문을 열었다.
하지만 처음엔 시행착오를 겪었다. 주로 시장에서 팔리는 저가 모자를 만들었는데, 이는 중국산과 가격경쟁이 되지 않았다. 이에 3년 전부터는 좋은 품질의 고급모자 생산으로 방향을 바꿨다. 디자이너 3명을 영입했고 매출액의 15%를 디자인 및 신제품 개발에 투자했다. 덕분에 현재 동천모자는 매년 22%의 매출 성장세를 보이는 ‘저력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동천모자는 주로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모자를 만드는데, ‘고객’은 EXR 코리아, 휠라, MLB, FUBU 등 유명 스포츠웨어 브랜드들이다. 뿐만 아니라 국방부, 우체국, 한국전력 등 정부 및 공기업에서도 주문을 받아 모자를 납품한다. 어느 기업도 동천모자가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임을 알고 일감을 맡기지는 않았다. 그만큼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동천모자는 지난해 매출 10억원을 달성했다. 직원 1인당 창출하는 매출액도 110만원 정도로 여타 장애인 보호작업장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지난해 10월에는 노동부로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받았으며, (재)실업극복국민재단 함께 일하는 사회로부터 2007 사회적 기업 경영혁신상을 받는 영예도 안았다.
성 대표는 “무엇보다도 장애인 직원들이 일반인처럼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 기쁘다”고 했다. 장애인 직원들은 80만~90만원의 월급을 받는다.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월급으로 조부모를 모시고 사는 직원도 있고 부모에게서 자립한 직원도 있다. 벌써 10여 명의 여직원이 월급을 모아 자기 힘으로 결혼을 했다고도 한다.
성선경 대표(왼쪽)와 포장팀장 이대길 씨가 동천모자가 생산한 제품들을 살펴보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포장팀장 이대길(31) 씨는 지적장애 3급. 어려서 뇌성마비를 앓은 그는 한 살 때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동천학원에서 자랐다. 잘 걷지도 못했던 그이지만 여러 차례의 수술과 재활을 통해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이자 가장이 됐다. 재작년에 역시 지적장애 3급인 동천모자의 동료 여직원과 결혼했는데, 이곳에서 근무하며 저축한 돈으로 18평짜리 전세 아파트를 구해 신혼집을 차렸다. 지난해 10월에는 정상아 아들도 낳았다. 오전 9시 회사에 출근해 오후 6시 퇴근해서 어린 아들을 안아주고 아내가 끓인 된장찌개로 저녁식사를 하는 그는, 여느 평범한 일반인 가장들과 다를 게 없다. 매달 50만원씩 저축하는데, 그중 10만원은 아들 이름으로 해놓은 적금통장에 넣는다. 성 대표가 “벌써부터 아들의 영어교육을 걱정할 정도로 열혈 아빠”라고 귀띔하자 그의 표정이 자못 심각해진다.
“대학은 꼭 보내려고 하거든요. 제가 대학을 못 갔으니까. 공부 많이 시키고 싶어요.”
기자가 동천모자를 찾아간 날, 이대길 팀장을 비롯한 포장팀 직원들은 이틀 후부터 백화점에 진열되어 팔릴 여름 시즌 모자 생산 마무리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불량품을 골라내고, 가격표를 붙이고, 비닐포장을 하고, 박스에 정성껏 담는 일 등을 하나씩 맡아 조용하게, 그리고 당당하게 해내는 모습은 이들이 장애인이고 그러니까 일감을 맡기기엔 적당하지 않다는 생각이 편견에 불과함을 새삼 깨닫게 했다.
“장애인도 똑같은 사람이에요. 천천히 가르쳐만 주면 일반인 못지않게 잘 해낼 수 있어요.”(이대길 씨)
이씨의 꿈은 앞으로 더 열심히 돈을 모아 내 집 마련을 하는 것이고, 성 대표의 꿈은 장애인 직원들에게 월급을 더 많이 주는 것이다. 아디다스나 나이키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브랜드에 납품하게 된다면 그 꿈이 이뤄질 수 있지 않겠느냐며 성 대표는 수줍게 웃었다. 갈수록 마케팅이나 영업력의 부족함을 깨닫고 있기에 외부의 도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도 그의 바람이다.
그러나 이씨와 성 대표, 그리고 동천모자 직원들의 꿈은 결국 하나다. 장애인들도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자기 힘으로 돈 벌고 아이 낳아 키우고 서로를 보듬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 그 꿈을 위해 동천모자는 오늘도 내일도 꼼꼼하고 씩씩하게 모자를 만들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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