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8일 충남 공주시 문예회관에서 열린 ‘노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공청회’에 참석한 오병주 한나라당 후보(오른쪽).
천신만고 끝에 현역 정진석 의원을 누르고 한나라당 공천을 따낸, 그러나 상대를 잘못 만난 오 후보는 분명 쉽지 않은 싸움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럼에도 그는 공주지청장과 대전지검 특수부장을 지낸 검사 출신답게 기가 죽지 않는다. 3월18일 공주문예회관에서 선거유세 도중 만난 오 후보는 자신감을 한껏 내비쳤다.
“오병주와 심대평 두 사람의 싸움으로 봐선 안 된다. 집권여당과 야당의 싸움이다. 지역 발전을 가져다줄 집권여당을 선택할 것이냐, 아니면 또다시 지역 정당의 품에 안길 것이냐가 이번 선거의 관건이다. 반드시 심 대표를 꺾고 자유선진당 바람을 잠재우겠다.”
심 대표는 지난해 4월 재보궐 선거를 통해 지금은 자유선진당으로 ‘리모델링’한 국민중심당 간판으로 대전 서을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며, 최근까지도 대전 서을에서 재도전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그는 최근 입장을 바꿔 고향 공주로 향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공주·연기지역을 중심으로 충청권에 자유선진당 바람을 일으키기 위해서다.
2월12일 서울 여의도 용산빌딩에서 이회창 총재와 심대평 대표(앞줄 오른쪽)가 자유선진당 현판식 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충청지역의 자유선진당 바람에는 이회창 심대평 두 사람의 ‘투톱 공격력’의 극대화가 필수조건이다. 서울 또는 충북지역 출마를 점쳐오던 이회창 총재가 출마지역을 고향으로 돌린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구에서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고는 충청권을 넘나드는 광폭 행보를 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이 이들의 눈을 돌리게 한 것. 자유선진당은 이 총재와 최근 입당한 이용희 국회부의장이 충북을 맡아 서진(西進)하고, 심 지사가 충남을 맡아 동진(東進)해 대전에서 만난다는 전략으로 이번 총선에 임하고 있다. 심 대표는 “대전 충남·북 24개 지역구에서 모두 승리하겠다”는 포부를 공공연히 밝힌다.
기왕 이길 싸움이라면 압도적 표차로 당선돼 충청권 대표정당의 체면을 차리는 것도 심 대표에겐 주요 관심사다. 심 대표는 “나와 이 총재가 당선될 수 있는지의 문제는 당 차원에서 보면 의미가 없다. 충청지역에서 얼마나 바람을 일으키느냐, 얼마나 전폭적인 지지를 받느냐가 더 중요하다. 지역주민들에게 압도적 지지로 충청지역을 지켜달라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 대표 측 한 관계자는 “전국 최다득표가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감추지 않았다.
실제로 충남지사를 세 번 연임하는 동안 공주는 심 대표의 텃밭이나 다름없었다. 충남지사 선거에서 줄곧 85%를 넘나드는 지지율을 보이며 고비마다 그를 도운 곳이 바로 공주·연기지역이었다. “특별히 조직을 운영하고 있진 않지만 사실 조직도 필요 없다”는 심 대표 측의 여유 있는 선거전략도 여기에서 비롯한다. 심 대표의 말이다.
“자유선진당 바람은 이미 시작됐다. 그 진원지가 공주·연기지역이다. 한나라당이 오만과 독선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힘 있는 야당이 필요하다. 충청의 힘으로 나라를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영·호남 간 극한 대립의 중심에서 충청도가 중용과 균형의 정치를 발휘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유선진당의 역할이 절실하다. 지역민들에게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약체인 오 후보는 철저히 맨투맨 전략으로 선거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검찰을 떠난 이후 4개월을 그렇게 보냈다. 유권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는 생활의 연속. 오 후보의 얘기다.
“공주·연기지역 마을을 찾아다닌 횟수가 2400번이 넘는다. 지역주민에게 한 번 이상은 인사를 드린 셈이다. 집권여당의 힘과 실용정부의 충청 대표주자로서 무너져내린 지역경제를 확실히 살리겠다. 당 공천을 놓고 경쟁해온 정 의원과 박상일 당협위원장의 지원도 받고 있는 만큼 가능성이 높다. 정치신인답게 지역 발전을 위한 청사진과 참신함으로 승부를 걸겠다.”
홍성 이전한 도청문제 변수로 작용할 듯
그렇다면 현장 민심은 어떨까. 두 후보의 선거사무실이 마주 보고 있는 공주시 산성동의 재래시장을 찾았다. 그곳에서 만난 주부 이영숙(58) 씨에게 총선에서 누구를 찍을 것인지를 물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우리 지역을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을 찍어야죠. 힘 있는 사람을 찍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시장에서 20년 넘게 식당을 운영해왔다는 김철수(48) 씨도 “그래도 충청지사를 한 사람인데 아무래도 낫지 않겠나. 정치신인보다야…”라며 심 대표 지지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심 대표가 낙관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자유선진당 바람을 잠재워야 하는 집권여당 한나라당의 절박한 이해관계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홍성으로 이전한 충남도청 문제도 심 대표와 자유선진당의 발목을 잡는다. 적지 않은 공주·연기지역 주민은 심 대표에 대해 “공주에 다시 도청을 돌려줄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고향을 배신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각은 특히 젊은 층에서 두드러진다. 대학생 이명선(23) 씨는 “물갈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역을 위해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이 선거를 앞두고 고향에 돌아오는 게 보기 싫다. 심대평 씨를 찍을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도청 이전에 따른 지역민의 분노와 실망은 한나라당과 오 후보가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오 후보는 심 대표의충남지사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하던 공약이 도청 환청(還廳)이었는데 공약은 어디로 갔느냐”며 심 대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지난 20년간 공주·연기지역에는 집권여당 출신의 국회의원이 없었다. 자유민주연합-국민중심당으로 이어지는 ‘충청당’의 명맥은 고비마다 이 지역에서 부활의 희망을 건져왔다.
이번에도 ‘충청당’의 수성(守城)은 이뤄질 것인가. 아니면 오 후보에게 발목을 잡힐 것인가. ‘충청권 중심론’을 펴는 심 대표와 ‘집권여당의 후광’에 기대는 오 후보의 한판 승부에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