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진동 해장국집에 들른 손학규 대표(오른쪽)가 구민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3월18일 오후 3시. 광화문 길 건너편의 종로구 중학동에 자리잡은 박진 의원 선거사무실에 사람들이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들은 홍기서 종로구의회 의장, 이종환 부의장 등 한나라당 소속 시·구의원과 남상해 하림각 회장 등 당원협의회 운영위원들로, 지역 내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다. 이날 모인 사람은 30명 정도.
종로구 구의원 11명 가운데 7명과 시의원 2명 모두 한나라당 소속인 만큼 지역 내 당조직은 튼튼하다. 하지만 이들의 낯빛은 그리 밝지 않았다. 손 대표라는 거물을 상대하기도 버거운 판에 자유선진당이 이날 종로에 정인봉 변호사를 공천했기 때문이다. 정 변호사는 2000년 한나라당 후보로 종로에서 당선됐다가 2년 만에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에서 물러난 바 있다.
견제론 대 안정론 … 정인봉 변호사 출마 큰 변수
총선을 앞두고 지역별 상황을 점검하고 선거전략을 짜기 위한 이날 회의 분위기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상기됐다. 다분히 원칙적인, 준비된 발언들이 끝나자 이 사람 저 사람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상대방(손 대표)은 그동안 손을 놓고 있다가 이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인기는 조석(朝夕)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정 변호사의 출마로 한나라당 조직원 가운데 자유선진당으로 옮기려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친박(親朴)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투표를 하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고 합니다. 그런 움직임이 있으면 곧바로 연락 주세요.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손 대표의 파괴력에 대한 불안감, 친박 진영의 집단 탈당과 출마, 정 변호사의 출마 등 여러 돌출변수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모습이었다.
같은 날 오후 5시. 종로구 경운동 손 대표 선거사무실에서는 민주당 핵심당원 200여 명과 손 대표의 상견례가 열렸다. 사실 이 지역 출마를 준비하던 유승희 의원(비례)의 조직을 인수인계하는 자리나 마찬가지였다.
손 대표 측은 “종로 출마를 포기하고 비례대표를 신청한 정흥진 전 종로구청장 조직과 유 의원의 조직을 통합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선거까지 불과 2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조직을 제대로 정비해 선거를 치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종로구 선거인 수는 13만4000여 명. 전통적으로 혜화동과 대학로를 중심으로 서쪽은 한나라당 성향이 강하고, 동쪽은 민주당 성향이 강한 것으로 분석된다. 평창동 구기동 삼청동 청운동 가회동 등 부유층이 많은 서쪽은 지역 토박이들이 주로 거주하는 반면, 창신동과 숭인동 등 저소득층이 밀집된 동쪽은 호남 출신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
그 비율도 비슷해 선거 결과를 섣불리 예측하기가 어렵다. 2004년 총선에서 박 의원은 3만7431표를 얻어 3만6843표를 얻은 김홍신 열린우리당 후보를 600표 차이로 간신히 이겼다. 당시 민주당 후보로 나와 9614표를 획득한 정흥진 전 종로구청장만 없었다면 승부는 충분히 뒤바뀔 수 있었다.
이번 총선에서도 출마를 준비했던 정 전 구청장은 손 대표의 전략 공천에 승복하고 비례대표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손 대표 처지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인 반면, 박 의원에겐 그다지 유쾌하지 않은 소식이다. 박 의원이 그나마 위안을 삼고 있는 점은 지난 대선 때의 지역 투표결과다. 종로구에서 이 대통령은 서울 평균을 웃도는 53%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물론 그를 지지하던 사람들이 모두 박 의원을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부유층과 저소득층으로 표심 확연히 갈려
예측불허의 상황에서 손 대표와 박 의원은 지역 민심을 얻기 위해 새벽부터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다. 손 대표는 매일 아침 6~7시 지역 내 공원을 돌면서 운동 나온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민심을 톺아보고 있다. 그는 지역 현안보다 국가 미래를 위한 정책적 대안에 집중하면서 당의 사활을 걸고 나선 대표라는 점을 주민들에게 강조한다. 박 의원에 비해 큰 정치인이라는 점을 주민들에게 각인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손 대표는 이후 시간에는 공천 마무리 등 시급한 당 업무 처리와 다른 지역 지원유세로 지역구를 돌아볼 틈이 없다.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는 박 의원이지만, 그는 더 부지런하다. 새벽 5시 기도회까지 챙기고 있다. 박 의원은 ‘종로의 아들’이라는 구호로 자신이 지역 토박이임을 강조하면서 손 대표가 이방인이라는 점을 부각하고 있다.
선거일이 다가오면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지역 주민들의 고민은 점점 깊어만 간다. 숭인동에서 올해로 36년째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호남 출신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다.
“박진이 여기 토박이 아니여. 인기가 높아서 손학규가 좀 어려울 것 같어. 장사 잘되게 해준다고 혀서 이명박 대통령 찍었는디, 끝까지 도와줘야 할 것도 같고…. 에이, 그랴도 나가 전라도 사람인디 쪼까 생각 좀 해봐야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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