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격 혈액 유출로 각종 소송에 시달리고 있는 대한적십자사.
적십자사가 공급한 혈액을 수술 중 수혈받은 뒤 B형 간염에 걸린 정모씨(80)와 유모군(3) 가족은 6월14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적십자사, 수술 병원을 각각 혈액관리법 위반으로 고소하는 한편 수혈감염으로 인한 손해배상신청서를 접수했다. 정씨와 유군은 지난해 말부터 올 2월까지 진행된 적십자사의 수혈 피해 역학조사에서 유통이 금지된 불법혈액을 수혈받고 B·C형 간염에 걸린 것으로 판명된 10명의 수혈 피해자에 들어 있다(주간동아 424호 최초 보도).
이번 소송은 적십자사가 스스로 불법을 인정한 수혈사건에 대해 치러지는 국내 첫 소송으로, 소송 결과에 따라 관련 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적십자사를 상대로 한 수혈 관련 소송(에이즈 감염)에선 적십자사 측이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않아 관련자 처벌이 불발로 끝나면서 손해배상액도 3000만원에 그쳤었다.
적십자사는 이번에도 정씨와 유군의 가족을 상대로 자체 수혈보상 규정에 따라 각각 1500만원과 3000만원의 보상금을 제시하며 민·형사상 책임을 면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들이 반발하면서 소송에 들어간 것.
이번 소송의 원고 측 변호를 맡은 열린합동법률사무소 박공우 변호사는 “적십자사의 자체 보상규정은 최선을 다한 상황, 즉 어쩔 수 없는 수혈사고에 적용되는 위로금 형식의 보상액일 뿐 이번 사건처럼 법적으로 유통이 금지된 혈액을 병원에 제공하는 등 명백하게 불법적 행위가 개입된 경우에는 형사적 처벌은 물론 배상액도 그 수십 배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소송의 특징 중 하나는 적십자사를 관리 감독해야 할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뿐만 아니라 적십자사로부터 혈액을 받아 환자에게 공급한 병원과 담당의사 개인에게까지 민·형사상 책임을 물었다는 것.
공동 변호인단의 권경애 변호사는 “이번 소송의 진정한 의미는 피해자에 대한 배상뿐만 아니라 혈액관리에 책무를 다하지 못한 국가에 대해 잘잘못을 가리는 공익성에 있다”며 “병원과 의사들은 환자에게 수혈 자체가 어떤 위험이 있는지 설명하지 않은 잘못과 수혈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에 대한 공지가 없었던 부분에 대해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혈우병 환우회 회원 중 C형 간염자 500여명은 “적십자사가 공급한 혈장을 원료로 해서 만든 혈우병 치료제를 먹고 간염에 걸렸다”며 적십자사와 해당 제약사, 국가를 상대로 집단소송을 준비 중이다.
한편 5개 건강관련 시민단체로 구성된 ‘혈액제도 개선을 위한 시민/ 환자 공동대책위’(혈액공대위)는 적십자사의 부적격 혈액 유통과 관련해 수혈 감염이 의심되는 환자들의 사례를 모아 복지부에 추적 역학조사를 의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