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에 사는 박모(39) 씨는 6세 아이를 둔 엄마다. 박씨는 최근 아이에게 컴퓨터 과외를 시켜야 할지 고민 중이다. 자식을 초등학교에 보낸 엄마들 사이에서 “초중고 정규 수업에 컴퓨터 코딩 교육이 추가된다더라”는 입소문이 퍼졌기 때문. 이미 아이가 수학, 영어 과외를 받고 있는데 컴퓨터 교육까지 추가해야 하나 싶지만, 초등학교 입학 후 수업을 따라가지 못할 아이를 생각하면 초조해진다.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코딩(coding) 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카페 ‘강남워킹맘’ 등 주부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지난해 9월 무렵부터 코딩에 대한 문의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인데 3D 건축 코딩 수업을 받고 있다’ ‘최근 방과후 컴퓨터 수업이 모두 코딩 수업으로 바뀌었다’ ‘초등학생 대상 코딩 교육 학원이 있느냐’ 등의 글이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컴퓨터학원 다수는 최근 ‘코딩을 가르친다’고 홍보하고 있다. 하지만 코딩은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일반인에게 생소했던 단어다. 도대체 코딩은 무엇이고, 코딩이 사교육시장에 군불을 지피는 이유는 뭘까.
“코딩 해야 먹고산다” 입시·취업 노려
코딩이란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기초 작업이다. 한국어와 영어가 다르듯 인간과 컴퓨터의 언어 역시 다르다. 즉 인간이 ‘5+5’라는 계산 문제를 풀 때, 컴퓨터에게 이 작업을 실행시키려면 ‘5+5’라는 수식을 컴퓨터 언어로 바꿔줘야 한다. 따라서 컴퓨터 언어(C언어)를 이해하고 이 언어로 규칙이나 식을 세우는 것이 코딩이다. 코딩에는 수학과 정보과학(IT) 지식이 필수이며, 게임이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윈도 같은 운영체제 등이 모두 코딩으로 이뤄져 있다.코딩 수업 현장은 어떨까.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코딩 소프트웨어 전문 교육센터 유닛소프트에서는 초등학교, 중학교 아이들이 컴퓨터를 켜놓고 코딩을 실습하고 있었다. 학원 자체 교재에 연필로 C언어를 써놓고 문제를 풀기도 했다. 한 초등학생이 손으로 쓴 C언어를 보니 전혀 알 수 없는 기호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학생들은 IT에 관한 흥미로 코딩 공부를 시작했지만, 코딩을 활용한 대회 입상 및 입시와 취업까지도 내다보고 있었다. 주 3회 2시간씩 코딩을 배우는 초등학교 6학년 A군은 “원래 컴퓨터를 좋아하는데 어머니가 코딩을 배우라며 학원에 보냈다. 코딩을 하면 프로그래머로 성공하고 군대도 편하게 다녀올 수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코딩을 1년 반 동안 배웠다는 B(12)군은 “수학의 ‘재귀함수’를 이용해 코딩하는 수준까지 배웠다. 내가 만든 식을 컴퓨터가 이해하고 그 결과가 맞게 나왔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재밌다. 나중에 IT 관련 경시대회에 나가 입상하고 대학 전공도 이쪽 분야로 하고 싶다”고 말했다.
갑자기 코딩 교육이 ‘뜬’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정부의 공교육 개편 방침이 있다. 교육부와 미래창조과학부는 2015년 7월 소프트웨어 교육을 공교육에 편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초등학교는 2019년부터, 중고교는 2018년부터 소프트웨어 수업을 가르친다. 주요 내용은 ‘알고리즘 체험’ ‘컴퓨팅 사고에 기반을 둔 문제 해결’ ‘프로그래밍 개발 및 설계’ 등이다. 이 알고리즘이나 프로그래밍의 기초가 코딩이기 때문에 사교육시장에서 코딩이 각광받기 시작한 것이다.
정덕현 소프트웨어교육연구소 대표는 “미국은 민간단체로부터 자연스럽게 코딩 교육 운동이 확산된 반면, 한국은 정부에서 코딩의 공교육 도입을 발표한 후 급격히 관심을 받게 됐다. 또한 컴퓨터공학 전공자들의 사회적 성공, 인공지능 ‘알파고’가 알려지면서 코딩이 화제가 된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15년 이상 소프트웨어 교육을 해온 최선희 유닛소프트 원장은 “알파고가 학부모들에게 충격을 준 것은 사실”이라며 “15~20년 전에도 중고교생 사이에 컴퓨터 교육 열풍이 불었는데 그때는 대학 입시, 취업에 유리한 자격증 취득이 주요 목적이었다. 지금은 ‘미래 먹거리 창출’이라는 더 넓은 관점에서 코딩 교육을 주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시대회 입상 등 ‘스펙’을 위해 코딩을 배우는 학생들도 있다. 코딩은 수학 지식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수학을 못하면 코딩을 할 수 없다. 따라서 어려운 코딩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수학을 익히는 이점도 있다. 유닛소프트 관계자는 “수학올림피아드대회에 출전하려고 코딩을 배우는 학생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흥미냐 스펙이냐, 교육 이유도 달라
다만 “서울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코딩 교육의 목적이 조금씩 다르다”는 것이 학원 측 전언이다. 최 원장은 “엄마가 아이를 코딩 학원으로 이끄는 이유에 지역별로 차이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서울 목동에서 교육하는 엄마들은 ‘아이가 IT를 좋아하고 흥미를 보여서’ 자녀를 코딩 학원으로 보낸다. 반면 강남구에서 교육하는 엄마들의 이유는 좀 다르다. 첫째, 아이의 과학고 진학이 목표인 경우다. 아이가 고등학생 때 컴퓨터 과목 내신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미리 코딩 조기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둘째, 자녀의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경우다. 미국은 IT 관련 자격증을 높게 인정하고 취업에도 혜택을 주는 편이기 때문에 아이가 유학 가기 전 미리 코딩 교육을 받게 한다. 마지막으로 자녀를 수시모집으로 대학에 보내려는 경우다. 내신으로 대학 가기가 힘들기 때문에 코딩 실력을 올려 돋보이는 ‘스펙’을 만들려는 것이다.”
코딩은 식을 창조, 융합하는 고난도 작업이기 때문에 주입식, 암기식 공부로는 익히기 어렵다. 정 대표는 “학교 성적이 우수한 학생이 일정한 사고방식의 틀에 얽매여 컴퓨터 식 사고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즉 일반 교과목 성적이 코딩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다. 지식 암기보다 창의적 문제 해결에 흥미를 가지는 학생이 코딩에 더 뛰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코딩 교육시장을 어떻게 전망할까. 최 원장은 “코딩 교육에 대한 관심은 이제 막 시작된 단계다. 발 빠른 일부 학부모를 중심으로 유행하기 시작했기에 흐름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공교육 변화에 맞춰 사교육시장도 차차 활발해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코딩 교육은 교육자에게 상당한 전문성을 요구하는 분야다. 현재 공교육의 문제점은 전문성 있는 컴퓨터 교사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것인데, 이를 해결하지 않으면 사교육은 계속 팽창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공교육에서는 코딩을 통해 사고방식을 전환하는 것까지 배운다. 이 수준을 넘어 전문적으로 코딩을 하려면 사교육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사교육시장에서 코딩 분야는 점차 전문화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전문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