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7일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 공동대표는 “양당의 자리다툼 때문에 일하는 국회를 바라는 민심이 외면당하고 있다”면서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이 먼저 국회의장 후보부터 선출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원내 제3당으로 캐스팅보트를 행사할 수 있는 국민의당이 원구성 해법으로 국회의장 자유투표 선출안을 제시하고 나선 것.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더민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6월 7일 의원총회(의총)에서 “원구성을 놓고 의장을 양당에서 정해 투표로 결정하자는 것은 기본적으로 유권자들의 의사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이런 원칙에 반하는 짓을 해서 되겠느냐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 대표의 자유투표 제안에 김 대표가 ‘원칙에 반하는 짓’이라며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그런데 더민주는 김 대표의 의총 인사말 이후 진행된 비공개 의총에서 자유투표 수용을 결정했다. 김 대표의 당부가 의원들로부터 거부당한 모양새가 연출되자, 일각에서는 총선 때 공천권을 휘두르며 ‘차르’라는 별명이 붙은 김 대표가 8월 27일 전당대회 때까지 ‘시한부’ 대표가 된 뒤 당내에서 ‘말발’이 서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6월 8일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김 대표는 “총선 결과 엄연히 더민주가 1당이 됐다. 그럼 의회 관행상 원내 1당이 국회의장을 차지하는 건 협상 여지가 없는 당연한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이날 오후 새누리당, 더민주, 국민의당 등 여야 3당 원내대표 협상에서 국회의장은 원내 제1당인 더민주가 맡는 것으로 원구성에 최종 합의했다.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지만 원구성 협상 결과는 김 대표의 ‘공언’이 현실이 됐다.
원구성 협상 결과가 전해지자 더민주 관계자들은 “공천권을 휘두를 때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김 대표의 존재감이 여전하다”고 입을 모았다. 당의 한 관계자는 “명분을 쥐고 본질을 꿰뚫는 김종인식 해법이 원구성 협상에 반영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를 ‘시한부 대표’로 폄훼하는 이가 적잖다. 하지만 김 대표의 최근 움직임은 수권정당을 만들기 위한 대권 행보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 더민주에 부족한 ‘안보’와 ‘경제’ 행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 김 대표는 6월 8일 오전 야당 대표로는 최초로 합동참모본부(합참)를 방문했다. 합참 방문에 앞서 김포 해병2사단 본부와 보훈병원 등도 방문했다. 그의 잇단 안보 행보는 대통령선거를 1년 6개월 앞둔 더민주의 외연 확대를 위한 장기포석으로 볼 수 있다.
합참 방문 이후 오후에는 민주정책연구원이 주최한 ‘건강보험 부과체계 개편 방안’ 포럼과 ‘서민주거정책의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한 주거정책 심포지엄에 참석했다. 두 행사는 큰 틀에서 김 대표의 트레이드마크인 경제민주화와 관련돼 있다.
6월 8일 하루 동안 김 대표가 ‘안보’와 ‘경제’ 이슈를 매개로 동분서주한 이유는 뭘까. 그 자신이 대권에 도전하기 위해?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더민주에서 대권을 잡으려는 후보라면 누구나 ‘안보’와 ‘경제’ 두 측면에서 소구력이 있는 자신과 손을 잡아야 ‘대권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다’는 점을 대내외에 과시한 행보로 이해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더민주 대표로서 ‘안보’와 ‘경제’ 행보를 통해 국민에게 수권정당의 면모를 선보이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연말부터 시작될 더민주 대권레이스에 앞서 당 내외 차기주자들에게 ‘안보’와 ‘경제’ 문제를 보완할 적임자가 자신임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