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건네는 충고다. 앞으로 여성을 차별하고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 남성의 삶은 점점 고단해질 것이다. “내가 여자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같은 식상한 말로는 피해갈 수 없는 현실이다. 여성혐오는 역사의 수레바퀴 앞에 선 사마귀, 당랑거철(螳螂拒轍)의 신세다. 무지가 용맹이 될 수는 없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
흔히 ‘한강의 기적’은 한민족의 높은 교육열에서 시작됐다고 말한다. 여러 연구가 교육은 국가의 경제발전뿐 아니라 개인 성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20세기 남성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던 이유 가운데 하나도 남성이 여성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선진국 대부분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교육 수준이 20세기 후반부터 역전됐다. 2009~2010년 미국 석·박사 학위 수여자의 59%가 여성이다.
여성 임원 비율, 미국과 한국 큰 차이
‘남동생과 오빠의 대학 교육을 위해 희생한 누이.’ 산업화시대 우리가 흔히 접했던 서사다. 현 50대 이상 연령층에서는 여성의 고등교육 이수율이 남성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남성의 21%, 여성의 7%만 고등교육을 이수했다. 하지만 25~34세 젊은 층을 보면 여성은 72%가 전문대 이상 고등교육을 받은 반면, 남성은 64%만 고등교육을 받았다. 이 격차는 앞으로 더욱 벌어질 것이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성별 교육 격차에 대한 이슈는 ‘왜 남성이 여성보다 교육 수준이 낮은가’가 된 지 오래다. 이를 오랫동안 연구해온 토머스 디프레트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와 클라우디아 부크만 오하이오주립대 교수의 책 제목은 ‘여성의 부상(The Rise of Women)’이다. 전 세계적으로 동일한 현상이 관찰된다는 건 여성의 부상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는 의미다. 젊은 남성의 군 입대 같은 한국의 특수한 사정 때문만은 더더욱 아니다. 여성의 높은 교육 수준은 21세기를 특징짓는 현상이다.
여성차별과 여성혐오는 21세기의 이러한 특징과 모순된다. 20세기 초 경제발전의 과제는 학력이 낮은 저숙련 노동력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었다. 그때는 노동자 대부분이 저학력이었다. 이들의 생산성을 높이면 전체 사회의 생산성이 높아졌다. 포드의 컨베이어벨트나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은 모두 저숙련 노동력을 활용하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대학교육이 확장되면서 기술발전이 고학력 노동력의 생산력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고학력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에서 기업조직과 기술발전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예측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전통적 굴뚝산업 업체보다 첨단 정보기술 업체들이 한층 여성친화적인 정책을 펴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더욱이 창조적 아이디어는 다양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남성 일변도의 기업은 창의성이 떨어진다. 여성친화정책은 젊은 경영자의 톡톡 튀는 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합리적 선택이라는 얘기다. 미국 애플 임원의 28%가 여성이다. 아마존은 25%, 페이스북은 23%, 구글은 21%이다. 한국에서도 네이버가 성차별이 적은 기업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삼성그룹에서 여성 임원 비율은 3%, 현대자동차는 0.4%이다.
한국 사례를 연구한 조던 시겔 미국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은 한국 기업이 외면한 고학력 여성을 더 많이 고용하고 이들을 임원으로 승진시킴으로써 더 높은 이윤율을 누리고 있다.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에서 여성 임원 비율이 10% 증가할 때 이윤율은 2%씩 증가한다. 여성차별과 여성혐오는 회사의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이윤율을 낮춘다. 앞으로 괜찮은 기업일수록 성별 격차가 줄어들 것이다. 여성친화정책에 잘 적응하는 남성이 선택할 수 있는 회사는 늘어날 테고, 여성혐오 감정을 가진 남성이 마음 편히 지낼 수 있는 회사의 수는 줄어들 것이다.
여성의 교육 수준이 남성보다 높아지면 결혼시장과 노동시장에서도 큰 변화가 발생한다. 산술적으로 남편의 학력이 더 높은 커플의 비율은 줄고, 아내의 학력이 더 높은 커플의 비율이 늘 수밖에 없다. 필자가 미국 센서스 자료를 이용해 분석해보니, 1990년만 해도 결혼한 35~44세 미국인 가운데 남편의 학력이 아내보다 높은 커플의 비율은 반대인 커플보다 10%p 높았다. 하지만 2010년에 이르러 같은 연령대 미국인을 보면, 아내의 학력이 남편보다 높은 커플의 비율이 반대인 커플보다 10%p 높다. 지난 40년간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소득이 남성보다 더 빨리 증가했으므로, 자신보다 학력이 높은 여성과 결혼한 남성의 가구소득은 그렇지 않은 남성의 가구소득보다 높아졌다.
결혼이 선택사항이 된 이유
여성의 학력 신장과 함께 결혼제도의 변화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결혼은 성인이 되면 당연히 거쳐야 할 제도적 장치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이제는 평등한 두 사람의 동반자 관계로 바뀌고 있다. 누구나 거치는 생애 이벤트였던 결혼이 하나의 선택지가 됐다. 사회학자 앤드루 셜린은 이 과정을 ‘결혼의 탈제도화 현상’이라 명명했다. 평등한 부부관계라는 말이 주례의 따분한 훈화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이 변화의 함의는 매우 크다.
교육받은 여성은 자아실현을 지지해주고 같이할 동반자를 원한다. 남편과 가족을 위해 희생하기를 요구하는 남성은 원치 않는다. 남성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은 여성은 사실 그럴 필요도 없다. 동반자 관계의 결혼이냐 독신이냐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따름이지, 전통적 여성의 소임은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현모양처 모습을 기대하는 남성이 설 자리는 좁다. 이문열의 소설 ‘선택’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사극의 한 장면일 뿐이다.
앞으로 배우자의 학력이 더 높은 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남성은 결혼을 못 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전체적으로 아내의 학력이 더 높은 커플이 늘어날 테니 여성차별적 인식을 가진 남성은 주변에서 소외되기 쉽다. 설령 결혼해도 차별적 여성관을 가진 남성의 가구소득은 그렇지 않은 남성의 가구소득보다 줄어들 것이다. 반면 평등한 인식을 가진 남성은 예전보다 상대적으로 학력이 높은 여성과 결혼해 더 높은 가구소득을 누리게 된다. 성평등 인식과 경제적 웰빙의 상관관계가 높아질 개연성이 한층 커진다.
여성차별과 여성혐오는 기술, 경제구조, 결혼제도라는 21세기 구조적 변화와 충돌한다. 한국 사회 여성차별이 가진 커다란 문제를 인식하고 제도와 행태를 바꾸는 것이야말로, 이 구조적 변화의 약한 고리에 위치한 남성들이 여성혐오라는 자기파괴적 인식을 갖지 않도록 돕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