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일 기획재정부(기재부)에 ‘기후경제과’가 신설됐다. 같은 날 환경부에서는 ‘기후변화대응과’가 없어졌다. 해당 부서에서 ‘기후변화대응’ 업무를 하던 공무원들은 기재부로 전출돼 앞으로 ‘기후경제’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이날 환경부에서 없어진 부서는 하나 더 있다. ‘온실가스종합정보센터’다. 온실가스 감축 관련 정보를 수집, 관리해 각 부처의 정책 수립을 지원하던 이 센터의 업무는 6월부터 국무조정실로 넘어갔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그동안 담당해온 기후변화정책 컨트롤타워 기능을 사실상 잃게 됐다.
기후변화는 최근 세계에서 가장 뜨거운 환경 관련 이슈 가운데 하나다. 그와 동시에 가장 뜨거운 경제 분야 이슈이기도 하다. ‘날로 뜨거워지는 지구’를 구하려면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하고, 이는 대부분 산업 규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서는 그동안 관련 정책을 둘러싸고 환경부와 기재부,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 등 경제 관련 부처 간 힘겨루기가 반복돼왔다.
기후변화 대응은 경제 논리로
전문가들은 환경부가 이 싸움에서 ‘패배’한 배경으로 지난해 우리 정부가 유엔에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든다. 당시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재 전망치보다 37%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 목표치는 환경부가 주도해 만든 것으로, 기재부와 산업부는 10%대 감축을 추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정책 주관 부서인 환경부의 뜻이 관철됐고, 이후 산업계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이에 정부가 해당 업무를 아예 환경부로부터 ‘빼앗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발전업계 관계자는 “당시 정부는 공청회 등을 통해 최고 감축 목표치로 31.3%를 제시했다. 업계에서는 당연히 그보다 낮은 수준에서 목표가 정해질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훨씬 더 높은 수준을 일방적으로 확정해버리니 ‘기업 현실을 모르는 환경부가 관련 업무를 총괄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에 발전업계가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의 87.3%가 ‘에너지’ 분야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2013년 환경부 발표 자료). 에너지통계 연보에 따르면 2014년 현재 우리나라 전체 전력 생산량 가운데 석탄발전의 비중은 39%에 달한다. 이 때문에 2030년까지 정부 목표대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미세먼지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석탄발전 의존도부터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현재 정부 정책은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는 중이다. 한국전력공사(한전)의 발전 자회사 5곳이 생산한 석탄발전의 전기 가격을 지난해 7월 이후 총 30% 인상한 것이 한 사례다. 정부는 이처럼 석탄발전 지원은 늘린 반면, 유해가스 배출량이 석탄의 절반 이하 수준인 LNG(액화천연가스) 발전단가는 동결했다. LNG 발전소 가동률이 2013년 67%에서 지난해 40% 수준으로 급락한 이유도 여기 있다. 정부는 최근 미세먼지 발생 요인으로 석탄발전이 지목되고 있음에도 ‘노후 발전소 폐기’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기도 하다(22쪽 기사 참조).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 석탄 수입량은 해마다 늘고 있고, 산업부는 2027년에도 여전히 석탄발전이 우리나라 전체 전력 생산량의 32.3%를 담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정부가 국제사회와의 약속 위반 및 국민 건강 침해 같은 위험성에도 석탄발전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돈 때문이다. 석탄의 ㎾h당 발전단가는 34.7원으로, LNG(80.3원)의 절반 이하다. 태양광, 수력, 풍력 등 환경오염을 거의 발생시키지 않는 이른바 ‘신재생에너지’ 발전단가와 비교하면 차이는 더욱 커진다. 이런 상황에서 석탄화력발전소 감축은 곧 전기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저렴한 전기요금을 발판으로 성장해온 국내 산업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지금처럼 산업부가 국내 산업 육성과 에너지정책을 같이 관할하는 상황에서는 환경보다 기업 경영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에너지정책을 수립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허울뿐인 신재생에너지 발전정책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러한 정책 방향에 대해서는 정부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환경부의 경우 지난해 산업부가 2027년까지 석탄화력발전소 20기를 추가로 짓는 등의 내용을 담은 ‘제7차 전력수급계획’을 발표할 당시 ‘LNG 복합발전 비중을 높일 것’ 등을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최근 미세먼지 발생 문제와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는데, 환경부는 일찍부터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차량을 구매하는 사람에게 부담금을 매기고, 배출량이 적은 차량을 구매하는 사람에게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저탄소차협력금’ 제도를 추진했다. 그런데 당초 지난해 1월 시행 예정이던 이 제도가 갑자기 2020년으로 연기됐다”면서 “이때 기재부, 산업부 등 경제부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후변화 관련 업무까지 환경부 손을 떠나면서 온실가스 및 미세먼지 관련 정책 전반이 후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이미 우리나라에서는 2012년 도입된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RPS) 제도가 산업계 입맛에 맞게 왜곡 운영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 상태다. RPS는 발전사업자들에게 총발전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로, 잘 운용하면 오염물질 배출 감소와 신재생에너지 기술 발전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상당수 발전업체는 해외에서 목재 폐기물 가공품(우드펠릿)을 수입해 석탄과 혼합한 뒤 태우는 방식으로 RPS 요구치를 채우는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목재 가공과정에서 버려지는 나무와 톱밥으로 만드는 우드펠릿은 일정 부분 친환경적 요소가 있긴 하다. 하지만 발전과정에서 석탄 못지않은 온실가스와 미세먼지를 배출해 해외에서는 일찍부터 이를 신재생에너지와 별도로 관리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우드펠릿을 전량 수입하고 있어 폐기물 재활용이라는 순기능조차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태양광, 수력, 풍력 등과 함께 신재생에너지 발전의 한 방식으로 인정했고, 발전업체들은 추가 설비나 기술 개발 투자 없이 RPS를 충족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를 선호하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우드펠릿 수입량은 2012년 4만1572t에서 지난해 146만8197t으로 급증했다. 학계와 시민단체 등을 중심으로 “애초 다른 나라에서 나뭇조각을 사다 때는 걸 친환경발전의 한 방식으로 인정해준 정부 잘못”이라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2035년까지 총 에너지소비 가운데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11%까지 확대할 방침이다. 그러나 현 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우드펠릿 수입량만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주형환 산업부 장관은 6월 8일 열린 ‘2016 미래에너지포럼’에서 “지금까지 대한민국 에너지산업은 수급 안정과 산업경쟁력 지원에 초점을 맞춰왔다. 앞으로는 좀 더 친환경적이면서 저탄소 방향으로 개편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경제 논리가 주도하는 현 정부의 에너지정책을 우려하는 많은 이의 바람이기도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