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과 파랑으로 칠한 숫자 3과 7을 보는 순간 대형 설치조각 ‘LOVE’가 떠오를 것이다. 로버트 인디애나의 연작 ‘1부터 0까지(One through Zero)’는 숫자를 통해 시간흐름을 되돌아보게 하는 작품. 그 가운데 3과 7은 사랑이 시작되는 온도를 가리킨다. 전시 첫 번째 섹션 ‘37℃ 설렘의 온도’는 사랑의 시작과 떨리는 감정을 보여준다. 시미즈 도모히로는 발레복을 입은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소녀, 숲에서 뛰어놀던 갈래머리 소녀가 어느덧 성장해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몽환적으로 표현했다. 이우림의 ‘꽃밭에서’는 양귀비 꽃밭에 수줍게 서 있는 남녀를 그렸다. 양귀비는 붉게 피었건만 남녀의 표정은 떨떠름하다. 어쩌면 사랑의 시작, 그 떨리는 감정을 무표정한 얼굴에 애써 감추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두번째 섹션 ‘36.5℃ 사랑의 온도’에서는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그라폴리오(Grafolio)’ 소속의 일러스트레이터 구루부, 배예슬, 살구, 퍼엉, 현현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살구는 일러스트 ‘지그시’에서 드디어 제짝을 만난 환희를 우주라는 공간에 던져진 남녀로 묘사했다. 눈을 살포시 내리깐 순정만화 주인공 같은 여성의 표정이 인상적이다. 구루부가 그린 ‘무제’에서는 여자의 하반신을 감싸 안은 남자의 포옹이 얼마나 격렬한지 여자가 치켜든 부케에서 떨어진 꽃잎들이 눈처럼 휘날린다. 퍼엉의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즐거운 대화’는 언제 어디서든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한 연인의 시간을 보여준다.
세 번째 섹션 ‘35℃ 이별의 온도’에서는 어느새 멀어진 안타까운 연인이 등장한다. 봄로야의 ‘사라의 짐’ 연작은 ‘사라짐’이라는 단어의 유희이자 주인공 사라의 사랑에 대한 기억을 작은 액자 속에 촘촘히 재현했다. 가슴 아픈 이별 경험을 말라비틀어진 꽃으로 표현한 정현목,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하고 원망하게 되는 상황을 그려낸 조문기, 혼자 된 일상을 보내는 사람의 덤덤하면서도 먹먹한 모습을 그린 이사림, 사진을 흐릿하게 해 풍경 속 빛을 아름답게 확산시키는 ‘보케’ 효과로 희미해지는 사랑의 기억을 표현한 국대호의 작품이 전시된다. 작가 22명이 선보인 129점의 작품을 보며 관람객은 ‘내 사랑의 온도’는 지금 몇 도쯤일지 궁금해할 것이다.
연애의 온도
기간 | 4월 20일~7월 31일
장소 | 서울미술관 제3전시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