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도, 밀양에 밀려서 초조? 부산 정치권 ‘신공항 생떼’(매일신문)
-부산 정치권 신공항 몽니 도 넘었다(경북일보)
-가덕 신공항이 답이다(부산일보)
-서병수 부산시장 “신공항 용역 ‘보이지 않는 손’ 의심”(노컷뉴스)
6월 8일 오전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신공항’을 키워드로 넣어 관련 뉴스를 검색했을 때 나온 헤드라인 가운데 일부다. 신공항 관련 논의는 공항을 짓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벗어나 이제는 어디에 짓느냐를 두고 지역 대결 양상으로 바뀌었다. 더욱이 지역 정치권까지 신공항 유치전에 뛰어들면서 신공항 문제는 경제 논리가 아닌 정치 논리로 변질됐다.
대구·경북과 울산·경남은 경남 밀양을, 부산은 가덕도를 신공항 후보지로 밀고 있는 모양새다. 해당 지역 언론들이 신공항 관련 보도를 하면서 내건 제목들이 자극적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어디는 되고, 어디는 안 된다는 식의 이분법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특히 대구·경북 등 TK에서는 신공항 앞에 ‘영남권’이란 수식어를 주로 붙인다. TK와 PK(부산·경남) 등 영남권 전체의 항공 수요에 부응할 수 있는 신공항 대지를 선정해야 한다는 의미를 부각하기 위해서다. 그에 비해 부산권에서는 신공항 앞에 ‘동남권’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신공항이 들어설 대지가 남한의 동남쪽, 즉 부산과 가까운 지역이어야 한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기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지역과 매체에 따라 ‘영남권 신공항’과 ‘동남권 신공항’이라는 말을 혼용하고 있다. TK에서는 영남권 신공항, PK에서는 동남권 신공항 하는 식이다.
MB가 신공항 백지화한 이유
신공항 건설 계획은 2003년 1월 노무현 대통령 당선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노 당선인은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지역 상공인 간담회에서 신공항 건설을 건의받고 “적당한 위치를 찾겠다”고 답했다. 이후 임기 종료 1년 2개월을 앞둔 2006년 12월 노 대통령이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에 타당성 검토를 지시하면서 신공항 논의에 불이 붙었다. 2007년 대통령선거(대선)를 한 달여 앞둔 11월 11일 건설교통부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1단계 용역 결과를 발표했다.이명박(MB)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3월 정부는 신공항 타당성과 입지 조사를 위한 2차 용역에 착수했다. 2009년 9월로 예정된 2차 용역 결과 발표는 논란 끝에 3개월 뒤로 연기됐고, 그해 12월 가덕도와 밀양 두 후보지 모두 ‘비용 대비 편익 비율이 낮다’는 결과가 발표됐다. 2차 용역 결과에도 정부는 2010년 7월 입지평가위원회를 구성, 평가단의 현장답사와 지방자치단체의 의견 수렴 등을 거쳐 2011년 3월 ‘경제성 미흡, 환경 훼손’ 등을 이유로 신공항 건설 백지화를 최종 결론지었다.
당시 신공항 논의에 관여한 한 인사는 “비용 대비 효과가 낮다는 2차 용역 결과가 나왔을 때 이미 백지화 수순을 밟기 시작한 셈”이라며 “환경 훼손도 한 이유였지만, 실제로는 10조 원 가까운 막대한 정부 예산을 쏟아붓는 데 대한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신공항이 경제효과가 있는 지속가능한 사업이었다면 지방자치단체나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서라도 신공항을 짓도록 유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문길 한국항공대 경영학과 교수도 비슷한 의견을 내놨다.
“신공항 건설에 10조 원이 들면 공항이 완공돼 운영에 들어간 뒤 해마다 5000억 원씩 이익이 나더라도 원금 회수까지 최소 20년이 걸린다. 공항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불편한 시설이 아니라, 꼭 필요한 곳에 필요한 규모로 지어야 하는 필수 사회간접자본이다. 정확한 수요 예측 없이 무조건 규모만 크게 지어놓았다가는 자칫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 있다.”
다음은 윤 교수와 일문일답.
▼ 동남권 또는 영남권 신공항 건설과 관련해 논란이 뜨겁다.
“신공항 건설은 무엇보다 시장 중심적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투자비용 대비 얼마만큼의 경제적 효과가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전남 무안국제공항이나 강원 양양국제공항처럼 (공항을) 만들어놓은 뒤 정부에 짐이 되면 곤란하지 않겠나. 그리고 신공항을 만들었을 때 이용자가 얼마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느냐도 고려해야 한다. 정치권이 나서는 바람에 경제 논리로 접근해야 할 신공항 건설 논의가 정치 문제로 꼬였다.”
▼ 항공 전문가로서 영남권에 신공항이 필요하다고 보나.
“김해국제공항만으로 늘어나는 항공 수요를 감당하기에 한계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10조 원 가까이 들어가는 대규모 투자로 그렇게 큰 공항을 꼭 만들어야 하는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김해국제공항을 확장하는 방안도 있을 수 있고, (김해국제공항) 인근에 보조공항을 지어 신규 수요를 한동안 감당토록 하는 방법도 있다. 공항은 한꺼번에 크게 짓는 것보다 단계적으로 증설하는 것이 비용 대비 수익 측면에서 더 타당하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신공항이 무슨 황금알을 낳는 사업인 양 큰 그림을 그리며 접근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
▼ 왜 그런가.
“인천국제공항을 동북아 허브공항으로 육성하고자 그동안 시간과 돈을 들여 사회적 투자를 얼마나 많이 해왔나. 인천국제공항은 배후에 수도권 인구 2500만 명이 있다. 그에 비해 영남권 신공항은 800만 명 수준이다. 만약 영남권에 인천국제공항 절반 정도 규모의 신공항을 짓는다면 인천국제공항이 감당해온 노선 가운데 상당수를 영남권 신공항으로 돌려와야 공항으로서 유지가 가능하다. 결국 내국인 여객 수요만으로는 부족하고 외래객을 유치해야 할 텐데, 얼마만큼의 외래객 유치가 가능할지 현재로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4년 차에 신공항을 백지화한 배경 가운데 하나는 1년 뒤 치를 2012년 4월 총선과 그해 12월 대선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란 시각도 있다. 총선과 대선이란 전국 선거를 앞두고 전통적 지지층인 TK와 PK 간 갈등이 너무 커지자, 지지층 분열을 우려해 신공항 대지 선정을 백지화했다는 것. 여권 한 관계자는 “지금 정치권에서 영남권 신공항을 두고 벌이는 논란은 2011년 당시 상황에 비하면 조용한 편”이라며 “당시에는 신공항 관련 현수막이 부산 시내를 뒤덮다시피 했을 정도로 심각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고정 장애물과 항공학적 검토
이명박 대통령이 백지화한 신공항 건설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선후보 공약에 포함되면서 재추진됐다. 그리고 ‘공정한 용역을 위해 국내 기관은 배제해야 한다’는 일각의 요구에 따라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 측에 용역을 줘 신공항 사전 타당성을 검토 중이다. 용역 결과는 6월 24일쯤 공개될 예정. 그런데 용역 결과 발표를 앞두고 부산시와 부산 정치권 인사들이 불공정 평가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신공항 대지 선정이 밀실에서 불공정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6월 7일 김영춘, 최인호, 김해영 등 더불어민주당 소속 부산 출신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갖고 “신공항 대지 선정 용역에서 항공기 안전과 직결되는 고정 장애물이 제외된 사실을 확인했다”며 “이는 밀양의 신공항 대지 선정에 절대 유리한 것으로, 공항 안전성을 무시한 채 특정 지역의 손을 들어주기 위한 불공정한 평가 기준”이라고 주장했다.고정 장애물이란 일반적으로 ‘산’ 또는 ‘건축물’을 의미한다. 내륙에 위치한 밀양에 공항을 건설하려면 인근 산봉우리 27개가량을 절단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평가항목에서 ‘고정 장애물’ 대신 ‘항공학적 검토’로 대체하면 절개해야 할 산봉우리 수가 27개에서 4개로 크게 줄어든다. 고정 장애물이 공항 주변에 있는 산과 건축물 모두를 대상으로 삼는 데 반해, 항공학적 검토는 항공기 이착륙 등 운항 항로에 장애가 되는 산이나 건축물 등만 장애물로 평가하기 때문. 부산 정치권과 시민단체들이 발끈하고 나선 이유가 이 때문이다. 밀양에 유리하도록 평가항목이 바뀐 것은 밀양으로 몰아주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
그러나 항공학적 검토는 2014년 8월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 등이 발의한 항공법 개정안에 근거를 두고 있다. 김 의원 등이 발의한 항공법 개정안은 지난해 5월 29일 국토교통위원회의 대안 입법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1년 뒤인 올해 5월 30일부터 적용됐다. 주 내용은 항공학적 검토 결과 지형이나 기존 물건과의 관계상 항공기의 비행 안전을 해치지 않는다고 인정되면 고도 제한의 적용을 제외하는 규정을 두자는 것이다. 즉 밀양의 신공항 대지 인근 산봉우리 가운데 비행 안전을 해치지 않는 산봉우리는 장애물로 보지 않아도 되는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대통령비서실 인사에 담긴 뜻
신공항 대지가 밀양지역으로 결정된다면 일찍부터 공항 유치를 추진해온 부산 등 PK에서 적잖은 민심 이반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10여 년 전부터 자신들이 주도해온 신공항 건설 계획이 이명박, 박근혜 두 TK 출신 대통령을 거치면서 결과적으로 남 좋은 일만 시킨 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새누리당 내부 권력 지형도 신공항 대지 선정 결과에 따라 바뀔 공산이 크다. 만약 TK가 선호하는 밀양으로 신공항 대지가 결정되면 친박(친박근혜)계가 탄력을 받는 반면, 김무성 전 대표 중심의 비박(비박근혜)계는 입지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 반론도 없지 않다. 새누리당 비박계 한 인사는 “신공항 문제는 어느 누구에게 꼭 유리하다고 볼 수 없는 양날의 칼과 같다”고 말했다. 만약 신공항 대지가 밀양지역으로 결정돼 PK 민심이 돌아서면 새누리당 전체에 악재가 될 수 있지만, 김 전 대표 등 PK 출신 인사에게는 ‘반박근혜 대표주자’란 이미지가 생겨 오히려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다.
여의도 호사가들은 신공항 대지 선정을 앞두고 대통령비서실 인사에서 수석과 차관급이 TK와 충청 출신들로 전면 배치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인사로 청와대는 수석비서관급 이상 10명 가운데 TK 출신 6명(안종범 정책조정, 김재원 정무, 우병우 민정, 김성우 홍보, 강석훈 경제, 김용승 교육문화)에, 충청 출신 3명(이원종 비서실장, 김현숙 고용복지, 정진철 인사)을 포진시켰다. 제주 출신 현대원 미래전략수석을 제외하면 수석비서관급 이상 고위직 청와대 참모가 모두 TK+충청 출신으로 채워진 것이다. 특히 6월 8일 박 대통령이 단행한 3명의 수석과 3명의 차관 인사 가운데 김재원 정무수석과 김용승 교육문화수석은 TK 출신이고, 이준원 농림축산식품부 차관과 이정섭 환경부 차관도 충청 출신이다. 이번 인사를 통해 박 대통령이 TK+충청 연대에 대한 의지를 좀 더 구체화했다고 보는 이유다.
여권 한 관계자는 “허태열-김기춘 비서실장 라인이 포진한 정권 초에는 PK+TK 라인업이 도드라졌다면 현 대통령비서실의 인적 구성은 TK+충청 라인이 완성된 느낌”이라면서 “인사에서 PK가 배제된 데다 신공항까지 부산 민심과 동떨어진 결과가 나오면 PK 민심 이반은 불가피한 일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PK를 버리고 충청을 취하는 듯한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 거기에 더해 TK와 PK 갈등 양상으로 번진 신공항 대지 선정 논란까지. 임기 말로 치닫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이 순탄치 않은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