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2

..

안보

사드 배치 서두르는 펜타곤, 왜?

“트럼프 당선하면 예산 삭감 불가피”…올해 안 배치 결정 급물살 탈 듯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6-06-10 15:48:33

  • 글자크기 설정 닫기
    5월 23일 쩐다이꽝 베트남 국가주석, 25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6월 7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최근 정상회담을 가진 나라를 하나로 이어보면 그림은 명확해진다. 서남아시아에서 동남아를 거쳐 동북아까지, 거대한 초승달을 그리는 분주한 발걸음의 목표는 ‘중국 포위하기’다. 임기 말을 향해 달리는 레임덕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인 행보.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되든 떠오르는 중국을 견제할 발판을 물려주겠노라는 의욕이 고스란히 엿보인다.

    공교롭게도 이들 세 나라는 최근 수년 사이 중국과의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된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인도는 정찰이라는 핑계로 잠수함을 벵골 만까지 진출시키는 등 군사력 투사를 늘려가는 베이징이 부담스럽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를 두고 중국과 긴장이 고조된 베트남도 같은 처지다. 오랜 갈등의 주역인 일본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터. 미국의 최근 움직임은 이렇듯 중국을 둘러싼 주요 나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인다는 오바마 행정부 ‘아시아 회귀 정책’의 완결판이다. 그리고 그 복판에는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가 놓여 있다.



    미 국방부 장관의 ‘언론 플레이’

    “거칠게 말해 미국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에 밀리고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이 만든 인공섬 인근에 자국 함대를 투입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어떻든 베이징의 기세는 꺾이지 않는다. 2년 전 정점을 찍었던 동중국해 갈등에서는 일본이 중국에 크게 밀리는 상황이 연출됐다. 결국 남은 건 동북아뿐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일본에 한층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것이고, 미국 측이 사드 문제에 전보다 강한 태도를 보이는 배경도 다르지 않다.”

    한 대기업 연구소 전문가의 이 같은 설명은 최근 상황을 간명하게 엿볼 수 있는 망원경이다. 동북아야말로 오바마 행정부의 ‘마지막 유산’이 빛을 발할 유일한 공간이라는 것. 사드 문제만 해도 당초 이를 한반도에 배치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주로 주한미군 등 야전의 견해일 뿐, 백악관이나 미 국방부는 대중(對中) 압박용 카드 정도로만 생각한다는 분석이 주를 이뤘다. 2014년 6월 이 문제를 처음 거론한 것은 커티스 스캐퍼로티 당시 주한미군사령관이었던 반면, 정작 워싱턴은 원론적인 발언만 거듭하며 선을 그었기 때문이었다.



    2년이 지난 지금 그림은 완전히 달라졌다.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부 장관은 6월 2일 샹그릴라 대화(아시아안보회의) 참석차 싱가포르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사드는 한미동맹이 결정할 사안으로 현재 논의 중이다. 샹그릴라 대화에서 한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이를 논의할 수 있다”고 말한다. 화들짝 놀란 한국 국방부는 부인했지만, 워싱턴의 대세가 이미 기울었음을 의심하는 이는 아무도 없는 상황. ‘중국용 협상 카드’에서 ‘어떻게든 밀어붙여야 할 사안’으로 지위가 수직 상승한 셈이다.

    미국 측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최근의 급격한 기류 변화에는 국방예산을 둘러싼 미 국방부의 다급한 속내가 깔려 있다”고 전한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워싱턴 주변에는 해외 주둔 미군의 규모나 동원 가능한 자산이 대폭 감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는 것. ‘America First(미국 우선주의)’를 외쳐온 트럼프 후보나 그를 지지하는 유권자 계층이 ‘과도한 해외 개입’을 백안시하고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거나 유권자들 사이의 이러한 기류가 함께 치르는 의회 선거 결과에 반영될 경우, 미군 자체 예산으로 고가 무기를 구매해 동맹국에 배치하는 일은 불가능해지리라는 이야기다.

    포대당 가격이 1조 원을 넘나드는 사드 체계는 그 첫 번째 희생자가 될 공산이 매우 큰 유력 후보다. 미 국방부는 이미 지난해 말 다섯 번째 사드 포대를 록히드마틴으로부터 인수받았고, 2017년까지 2개를 추가로 구비할 계획이다. 예산 유지가 다급한 미 국방부로서는 어떻게든 대선 전 이 문제를 마무리 짓는 일이 중요해진 셈이다. 흥미로운 것은 백악관 역시 이해관계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 임기 종료가 머지않은 오바마 대통령이 중국을 견제할 수단을 동북아에 남겨둠으로써 ‘아시아 회귀 정책’의 쐐기를 박아두고자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돌이킬 수 없는 유산 남기기(Irreversible Legacy Building)’인 셈이다.

    최근 이 사안이 불거진 결정적 계기는 ‘한미 두 나라가 내년 사드를 대구에 배치하기로 합의했으며 120명 규모의 주한미군 레이더 부대가 운용될 계획’이라는 일본 언론의 보도였다. 해당 매체는 이를 보도하며 그 출처를 ‘미군 관계자’라고 못 박았다. 미 국방부의 의도적인 유출이라는 관측이 힘을 받은 이유다. 한국 국방부는 “한미 공동실무단이 협의 중에 있으며, 대지 선정과 관련해선 현재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정작 논의과정에 정통한 당국자들은 “대지 선정을 포함해 논의가 궤도에 오른 것은 사실”이라며 ‘조만간 공식화’를 넌지시 확인해주고 있다. 양국 국방부 장관이 만나는 10월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발표되리라는 관측이 쏟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문제는 이후 상황 전개다. 사드 문제는 3월 초 미·중 양측이 합의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 2270호와 연동돼 있다고 베이징은 인식하기 때문. ‘미국은 사드 논의를 자제하는 대신 중국은 대북제재에 동참한다’는 게 그 대체적인 골자다. 상대의 태도가 달라지면 이쪽의 태도도 같을 수 없다. 익명을 요청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의 말이다.

    “‘사드 배치 반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본인이 직접 오바마 대통령을 만나 압박했던 사안이다. 무위로 돌아간다면 대국(大國)의 체면을 의식해서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당장은 대북제재 전선에서 이탈해 북한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이후에는 한국과 미국에 대한 다양한 보복 시나리오를 검토할 개연성이 높다. 어느 경우든 동북아를 둘러싼 미·중 갈등이 정점을 향해 치닫게 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워싱턴 조야를 덮친 ‘트럼프 공포’가 미 군부와 백악관을 돌아 ‘사드 조기 배치 단행’이라는 가장 날카로운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 형국. 이렇게 놓고 보면 사드 문제는 트럼프 신드롬이 한반도 정세에 구체적인 영향을 끼친 첫 사례로 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이 그 후폭풍을 피해갈 수 없음은 불문가지. 미국 대선이 태평양 건너 남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현실화되고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