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부터 도로교통공단 운전면허시험장 내 기능시험(장내 기능시험)이 전면 부활하고, 도로주행시험을 대폭 축소한 개정 운전면허시험제도가 실시될 예정이다. 경찰청이 1월 27일 이 같은 ‘운전면허시험 개선안’을 내놓게 된 배경은 장내 기능시험을 대폭 축소한 기존 시험제도 실시 이후 교통사고 통계 수치가 크게 늘었다는 것. 경찰청은 “2011년 7월 변경 실시한 현행 운전면허시험제도 시행 이후 교통사고가 큰 폭으로 증가해 교통안전을 도모하고자 강화된 운전면허시험제도를 올해 10월부터 실시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경찰청이 발표한 운전면허시험 개선안은 2011년 규제 완화 차원에서 대폭 축소했던 장내 기능시험을 부활하고, 필기시험의 문제은행 총 문항을 730개에서 1000개로 늘리는 한편, 반대로 도로주행시험은 87개 점검 항목에서 59개 항목으로 줄이는 게 골자다. 한마디로 ‘물면허’로 불리던 기존의 쉬운 운전면허시험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 일각에선 운전면허시험제도 변경의 근거가 된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 통계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경찰청은 도로교통공단의 통계를 인용해 “2011년에서 2012년 사이 교통사고는 약 26만 건 증가했다”고 밝혔지만, ‘주간동아’ 확인 결과 이 통계는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잘못된 통계 근거로 정책 결정
2012년 교통사고 통계 가운데 차종을 알 수 없는 약 33만 건을 ‘기타’ 항목에 포함시켜 전체 통계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기타 항목에는 도로에서 차량이 내는 사고 외에도 선박, 농기계, 건설장비 등 교통과 관련된 사고는 모두 들어갈 수 있다. 일반 차량 운전면허시험과는 전혀 관련 없는 사고들도 포함될 수 있기 때문에 전체 도로 교통사고 통계에는 넣지 않는 것이 상례다. 일부 시민단체는 “통계가 잘못돼 이익을 본 것은 운전면허학원밖에 없다. 결국 가장 중요한 도로주행시험은 축소하고 장내 기능시험과 필기시험만 어려워져 운전면허학원 업계의 배만 불렸다”고 주장했다.
경찰청이 주장하는 2012년 교통사고 폭증의 근거는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시스템이 분석, 정리한 교통사고 통계다. 이 통계에 따르면 2011년 전체 교통사고(인명 피해)는 87만3277건, 2012년은 113만3145건으로 25만9868건 늘어났다. 그러나 세부 통계를 살펴보면 이상한 점이 있다. 1종보통이나 2종보통 면허 이상 소지자가 운전할 수 있는 원동기장치자전거 이상(승용차·승합차·화물차·대형버스 포함)의 사고는 2012년 오히려 줄어들었다. 2011년 해당 항목의 사고 건수가 총 55만6774건인 반면, 2012년에는 37만892건으로 18만5882건이나 감소했다. 즉 운전면허시험과 관계된 사고는 통계상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2012년 사고가 약 26만 건이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이유는 순전히 기타 항목 때문이다. 2011년 기타 항목 사고는 2만8156건뿐이었으나 2012년에는 33만3680건으로 약 30만 건, 21배 가까이 증가했다. 기타 항목의 폭발적 증가에 대해 도로교통공단 측은 “보험사의 실수”라고 책임을 떠넘겼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교통사고분석시스템의 통계는 경찰 집계와 각 보험사 집계 중 인명사고만 통합한 자료인데, 2012년부터 각 보험사가 제대로 된 자료를 보내주지 않았다는 것. 도로교통공단 측 한 관계자는 “각 보험사가 2011년까지는 차종별로 사고 자료를 정리해 보내왔지만 2012년부터 제대로 된 자료를 보내지 않았다. 차종 구분 없이 전체 사고 건수만 넘어와 보험사가 보내준 자료를 전부 기타 항목으로 넣을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보험사 측 답변은 달랐다. 삼성화재 자동차보험 관계자는 “매년 차종별, 사고 내용별로 상세히 정리한 통계를 도로교통공단과 보험개발원 측에 보내고 있다. 차종을 구분하지 못할 리 없다”고 답했다.
과연 누구 말이 옳은 것일까. 각 보험사가 보낸 교통사고 통계는 보험개발원에서 취합한다. ‘주간동아’ 확인 결과 보험개발원이 정리한 통계에선 도로교통공단이 지적한 ‘차종 구분 불가능’ 문제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보험개발원 인터넷 홈페이지 통계 서비스 항목 ‘자동차보험’에는 각 보험사에서 보낸 사고 현황이 배기량별로 정리돼 있었다. 게다가 그래프로 소형, 중형, 승합차 등 차종별로 사고 유형이 분류돼 있었다. 2011년과 2012년 사이 교통사고가 늘었다는 내용도 완전히 달랐다. 보험개발원 자료에 따르면 2011년 보험사에 신고된 사고는 총 326만8000건, 2012년에는 27만 건 줄어든 299만 건이었다.
운전면허학원 측 “로비 사실 없다”
10월부터 시행될 운전면허시험이 기존 시험과 가장 크게 달라지는 점은 장내 기능시험의 부활이다. 그동안은 T자 주차(직각 주차)와 경사로 정지 후 재출발이 빠지고, 50m 거리를 주행하면서 차로 준수와 급정지만 평가했다. 개선안에 따르면 장내 기능시험은 2011년 이전으로 돌아가게 된다. 총 300m 거리를 주행하면서 △운전 장치 조작 △경사로 △좌우 회전 △직각 주차 △신호 교차로 △돌발 구간 △가속 구간 총 7개 항목을 평가한다. 730개 문제은행에서 출제되던 필기시험도 총 1000개 문제은행에서 출제되는 것으로 바뀐다.필기시험과 장내 기능시험은 강화됐지만 도로주행시험은 오히려 평가 항목이 축소됐다. 2011년부터 지금까지 시행되던 도로주행시험은 시험을 치르는 차량에 설치된 장치로 자동채점되는 항목이 25개, 동승자가 채점하는 항목이 62개로 총 87개 항목이었다. 이 중 동승자가 채점하던 28개 항목이 삭제됐다. 항목으로만 보면 도로주행시험은 오히려 쉬워진 셈이다.
경찰청 교통과 관계자는 “동승자가 수동으로 채점하는 항목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이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 대신 자동채점 항목의 비중을 늘려 객관성을 높였다. 주관성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줄인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에 정강 녹색교통정책연구소장은 “실제 도로에 나가서 운전하는 역량을 시험할 수 있는 도로주행시험의 항목을 줄이고, 장내 기능시험과 필기시험을 강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장내 기능시험이 추가되고 필기시험 난도가 올라가면 면허를 따는 데 드는 비용만 늘어 국민에게는 오히려 손해”라고 주장했다.
정 소장은 또한 운전면허시험 개선안이 통과된 이면에는 운전면허학원들의 로비가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운전면허시험 개선안의 근거는 2011년 이후 운전면허시험에서 장내 기능시험이 사라진 후 교통사고가 늘었다는 경찰청 통계다. 그런데 이 통계가 사실과 다르니 분명히 배후에 이익집단의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도로교통공단의 통계에서 전체 사고 수가 증가한 이유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기타 항목의 폭발적 증가 때문이다. 정 소장은 “잘못된 통계로 통과된 운전면허시험 개선안 덕에 이익을 보는 쪽은 운전면허학원들이다. 학원 측의 로비 사실을 일부 확인해 6월 1일 감사원에 진정서를 넣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운전면허학원 측은 “그런 사실이 없다”며 관련 의혹을 일축했다. 전국자동차운전전문학원연합회 관계자는 “개정된 운전면허시험은 2011년 면허시험 간소화 이후 늘어난 사고를 막고 도로교통안전을 위한 것”이라며 “로비를 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