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투어 20승, 일본 JLPGA투어 23승, 미국 LPGA투어 1승으로 통산 44승을 이룬 한국 여자골프의 전설 구옥희 프로가 2012년 상반기 국내 여자대회에 몇 차례 출전했다. 1978년 회원번호 3번으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한 56세의 구 프로에겐 활력 넘치는 젊은 선수들과의 경쟁 자체가 힘들었다. 결과는 매번 컷오프.
20대 초·중반이 대부분인 KLPGA에서 서른만 넘어도 ‘노장’ 소리를 듣는 요즘, 골프 전설의 도전은 그 자체로 의미가 깊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여러 말이 있었던 것도 사실. ‘영구 시드권을 가지고 젊은 선수들의 출전권을 뺏는다’는 이른바 속 좁은 뒷공론이었다. 그 얘기를 들었는지 구 프로는 투어에서 조용히 사라졌고 이듬해 여름 일본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남자대회로 시선을 돌리면 영구 시드권을 가진 최상호는 지난해 GS칼텍스매경오픈에 출전해 60세4개월12일 나이로 코리안투어 최고령 컷 통과 기록을 세웠고, 공동 26위로 마무리했다. 올해는 출전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주변의 시선을 지레 의식하고 나오지 않은 것이라면 참 안타까운 일이다.
6월 초 마무리된 일본골프투어(JGTO) 메이저대회 JGT챔피언십에 69세 오자키 마사시가 출전했다. 180cm 큰 키에 우람한 몸집으로 ‘점보’라는 별명이 붙은 오자키는 프로 통산 113승에 JGTO에서만 94승을 거둔 일본 남자골프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환갑이 넘어도 젊은 선수 못지않은 280야드(약 256m) 장타를 거침없이 날리곤 한다.
오자키는 첫날 11오버파를 치면서 부진했다. 하지만 둘째 날에는 파5 2번 홀에서 이글을 잡았다. 티샷을 페어웨이로 보내고 229야드(약 209m) 남은 거리를 5번 우드로 투온을 한 뒤 퍼트에 성공했다. 버디도 2개 잡았으나 17번 홀에서 보기를 내며 1오버파로 마무리했다. 이틀간 12오버파로 컷오프였다. 오자키는 경기를 마치고 “오랜만에 에이지슈터 가능성을 봤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JGTO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그의 노익장을 비중 있게 소개했고, 수많은 갤러리는 박수로 노선수의 건재함을 열렬히 찬사했다.
오자키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의 산증인이다. 고교 졸업 후 프로야구팀 세이부 라이온스 선수로 3년 뛰다 과감하게 접고 23세 골프에 입문했다. 프로 데뷔 2년째인 1971년 9월 첫 우승했고, 3개월 만에 5승을 하면서 ‘점보 시대’를 열었다. 오자키는 경이적인 비거리와 화려한 캐릭터로 골프 인기를 높이는 데 기여한 주인공이었고, 상금 랭킹제를 시작한 73년 JGTO 초대 상금왕에 올랐다. 그해 마스터스에 출전해 8위를 하며 일본 선수 가운데 처음으로 톱10에도 들었다.
1980년대 전반 침체기도 겪었지만 94년부터 부활한 뒤 12년간 상금왕을 거머쥐었다. 그중 5년은 연속이었다. 113승 가운데 절반 넘는 63승이 불혹을 넘겨서 이룬 기록이다. 2002년 전일본오픈에서는 55세로 JGTO 창설 73년 만에 최고령 우승했다. 소위 ‘오자키군단’이 있을 정도로 골프계에서 오자키는 카리스마를 발휘했고, 팬들에게 인기도 높았다. 그는 칠순을 앞둔 나이에도 정규투어를 고집한다. ‘정규투어에서 뛰지 않으면 현역선수라 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그런 정신력이 기적을 만들기도 했다. 2013년 4월 25일 66세에 참가한 쓰루야오픈 첫날 버디 9개, 이글 1개, 보기 2개로 9언더파 62타를 기록하며 일본 골프 사상 최초로 에이지슈트를 달성했다. 66세 때보다 4타나 줄였다. 그래서인지 이번 대회에서 이글이 더 빛나 보였다. 그러니 앞으로 어느 대회에서든 최상호가 61세에 최고령 컷 통과에 다시 도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내년 GS칼텍스매경오픈에서 2005년 세웠던 최고령(50세4개월25일) 우승에 재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