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네트워크 과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기존의 네트워크 이론이 주로 공학적으로 설계되고 구현되어야 하는 네트워크를 대상으로 해 그에 관한 지식을 제공했다면, 최근의 네트워크 이론은 자연발생적으로 생성하고 진화하는 네트워크를 대상으로 한다. 디지털 인프라가 발전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싸이월드(www.cyworld. com), 미국에는 프렌즈터닷컴(www. friendster.com)과 같은 인적 관계 중심의 커뮤니티 사업자가 등장했다. 이뿐 아니라 이동통신사업이나 모바일 비즈니스, 미래의 유비쿼터스 비즈니스에서도 이러한 네트워크를 이해하는 것이 사업의 핵심 역량이 될 것이다.
최근 네트워크 과학 이론이 거둔 가장 큰 성과는 많은 네트워크가 ‘무작위 네트워크(Random Network)’가 아니라는 점을 밝힌 일이다. 무작위 네트워크는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노드와, 노드들을 연결하는 링크에서 한 노드가 다른 노드와 연결될 확률이 임의적이어서 노드 간의 차이가 크지 않은 네트워크를 말한다.
그런데 최근 많은 자연발생적 네트워크에서 노드들 사이의 특징이 균일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이들 네트워크는 링크를 적게 가지는 노드들과 링크를 아주 많이 가지는 노드들이 함께 존재하는 네트워크의 형태를 띠는데, 많은 노드들과 링크 되어 있는 소수의 노드들을 보통 허브(Hub)라고 부른다. 사실상 이러한 허브 또는 커넥터들은 대부분의 복잡한 시스템에서 발생한다. 대부분의 네트워크의 속성 가운데 하나가 허브를 가진다는 것이며, 이러한 허브의 존재는 무작위 네트워크 중심의 세계관이 허구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현실의 네트워크에서 허브는 어떻게 발생하는 것일까? 현실의 네트워크는 새로운 노드가 추가되기도 하고 기존의 노드가 빠져나가기도 하는 동적인 특성이 있는데, 여기서 새로운 노드들이 어떤 노드에 연결될 확률이 기존의 노드가 가진 링크 수에 어느 정도 비례할 경우 이 네트워크에서는 허브가 발생한다.
그런데 이러한 허브가 많이 존재하는 네트워크의 특징은 오류 허용성과 공격에 대한 취약성이 모두 높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류’란 각 노드들에서 무작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의미하고, ‘공격’이란 특정 노드, 많은 경우 허브에 속하는 노드들에 의도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의미한다.
현대 네트워크 과학 이론은 ‘쌍방향 네트워크’, ‘네트워크 거버넌스’ 등으로 연구 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네트워크 과학이 증명하고 있는 또 하나의 사실은 ‘세상이 좁다’는 것이다. 일찍이 밀그램 하버드대학 교수는 미국에 있는 임의의 두 사람이 평균 5.5다리만 건너면 서로 아는 사이라는 사실을 실험으로 밝혀냈다. 이후 와츠와 스트로가츠는 모든 노드가 적은 수의 링크를 가질 뿐 아니라 끼리끼리 군집화 경향을 가지는 네트워크에서도 ‘좁은 세상’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참여자 사이의 연결 단계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은 네트워크를 통한 의사 전달과 지식 공유의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이는 해당 네트워크가 양방향성을 활발히 가지는 것을 기본전제로 한다.
네트워크 과학은 단방향성을 가지는 네트워크는 분절돼 서로간의 이동이 단절된다는 것을 증명했다.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요인 가운데 하나는 인터넷이라는 양방향 네트워크를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상대 후보는 단방향 매체인 TV와 신문 등에 의존했기 때문에 유권자들의 의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네트워크 경영과 네트워크
사회과학에서 네트워크는 시장과 위계조직의 중간 위치를 차지하는 조직의 한 구조이면서 동시에 경영, 조정 또는 지배를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이해돼왔다. 존스 등의 사회과학적 네트워크 연구자들은 ‘네트워크 거버넌스’란 주체들이 자율적 선택적 지속적 구조적으로 집단을 형성해 암묵적이고 변경 가능한 계약을 맺고, 제품 또는 서비스를 창출하기 위해 참여해 상황에 적응하고 교환을 조정 보호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선택적’이라는 말은 모든 관계자가 네트워크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으로, 네트워크 경영이 정치의 영역에서 사용될 때는 ‘대표성’ 문제와 연결된다. ‘지속적’이라는 것은 일회적인 시장 거래와 다른 네트워크형 경영의 고유 특성을 설명하고, ‘구조적’은 교환이 무작위적으로 이루어지거나 획일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어느 정도의 패턴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생물학이나 물리학은 노드들이 스스로 구성하는 네트워크의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를 주로 대상으로 한다. 단지 각 개체, 즉 노드들이 가지는 이해관계와 행동패턴이 어떠한 구조적 패턴을 이루게 되어 이를 객관적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사회 네트워크는 이에 참여하는 노드들 각자의 이해관계와 행동패턴이 존재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참여하는 네트워크의 목적에 대해 인식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자연에 존재하는 네트워크와 사회에서 형성되는 네트워크는 중요한 차이를 가지는데, 과연 네트워크 과학 이론이 이 차이를 설명하는 언어를 만들어내고 그 언어로 메커니즘을 설명하게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결국 현대 네트워크 과학 이론은 구조 분석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고 결론지을 수 있는데, 사회과학의 시각에서 볼 때는 아쉬운 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