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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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어린이도 영어 조기교육 ‘붐’

EU 국경 확장 외국어 사용은 필수 … 초등학교 교육 개혁 ‘핵심’으로 추진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hanmail.net

    입력2004-05-20 14: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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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어린이도 영어 조기교육 ‘붐’

    독일의 한 유치원에서 영어 수업을 받고 있는 어린이들.

    한국에서 정상적인 공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사람치고 영어에 대한 부담을 느껴보지 않았다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렵다. 영어는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한 이후에도 여전히 스트레스를 주는 대상이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직장을 얻기 위해서나 승진을 꿈꿀 때도 찰거머리같이 달라붙어서 우리를 괴롭히는 영어. 그렇게 오래 배우고, 학원을 수없이 다녀봐도 좀처럼 정복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어 하나면 다인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배우기 시작하는 제2 외국어는 사정이 어떠한가.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 학문과 교양, 예술의 상징처럼 느껴지는 유럽 언어들은 여전히 매력을 잃지 않고 있다. 일본과 중국 두 나라가 한국의 주요 경제 파트너라는 점에서, 이들 나라의 언어를 습득하는 일 또한 중요성이 더해가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경쟁 시대에 접어들면서 외국어에 대한 관심과 필요는 늘어만 가는데, 교육 여건과 습득 능력은 대부분 만족스러울 만큼 따르지 못한 것이 우리나라 외국어 교육의 슬픈 현실이다.

    영어 동요 부르고 프랑스 동시 듣고

    그런데 외국어 공부에 대한 욕구와 필요는 우리만의 일이 아니다. 유럽 최대의 경제 강국인 독일 국민들에게서도 외국어에 대한 부담은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유럽은 좁은 대륙에 여러 국가가 국경을 맞대고 옹기종기 모여 살기 때문에 국민들 간의 이동과 왕래가 잦다. 또한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일이 매우 자유롭기 때문에 외국어를 사용해야 할 일이 우리보다 훨씬 많다. 아무리 독일어를 비롯한 유럽 언어들이 같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해 언어 구조가 비슷하고, 라틴어라는 공동 조상 언어를 가진다 해도 외국어는 여전히 이들에게도 정복해야 할 하나의 부담스러운 과제다. 더욱이 동유럽 10개국이 5월1일 새로이 유럽연합(EU)에 편입함으로써 유럽인들의 생활권이 더욱 넓어진 이후 모국어만 할 줄 알고 외국어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의 입지는 눈에 띄게 좁아졌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금세기 들어 독일의 대다수 주 정부 교육부에서 앞다투어 초등학교 교육개혁 프로그램을 내놓았는데, 핵심에는 바로 ‘외국어 조기교육’이 들어 있다.

    작센, 작센 안할트,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라인란트 팔츠 등 4개 주가 올 여름부터 제1 외국어 교육을 초등학교의 필수 과목으로 정함으로써, 이제 외국어 조기교육은 독일 전체에 걸친 보편적이고도 일반적인 현상이 됐다. 독일의 모든 어린이들이 의무적으로 초등학교 시절부터 영어 동요를 부르고, 프랑스어 동시를 들으며 자라게 된 것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가장 중요한 제1 외국어로 영어를 선택하는 주가 대부분이지만, 라인강을 끼고 있는 몇몇 주에서는 프랑스어를 제1 외국어로 택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독일 중부에 위치한 튀링겐 주 같은 경우에는 이탈리아어나 러시아어를 제1 외국어로 지정하는 학교도 있다.



    독일에서도 외국어 조기교육에 특히 앞장서고 있는 곳은 가장 부유하며 다임러 크라이슬러, 보쉬 등 독일 최대 기업들의 본사가 있는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다. 이 지역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어린이들이 영어나 프랑스어를 모국어인 독일어와 함께 배우기 시작한다. 여타 모든 주의 어린이들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제1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획기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다. 바덴 뷔르템베르크 주는 이 제도를 3년 전 실험적으로 몇몇 초등학교에서 실행해보았는데, 결과가 성공적이었다고 판단해서 작년 가을부터 다른 모든 초등학교에도 도입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어떤 교수 방식을 사용할까? 수업의 한 장면을 들여다보자. 각종 동물 모양의 자석들이 철제 칠판에 붙어 있고, 선생님은 자석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아직 모국어에도 익숙지 못한 6, 7살 어린이들에게 영어로 이야기한다. 영어 단어나 문장을 독일어로 번역해주는 경우는 없다. 수업 시간 중에 독일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학생들 스스로가 빠르게 낯선 표현에 익숙해져야만 한다. 여기서는 암기해야 할 단어 목록 같은 것도 나눠주지 않는다. 다만 어린이들이 새로운 언어 속에 푹 잠겨서, 언어가 어린이들의 몸속으로 서서히 스며들 수 있게 하는 것이 수업의 목표다.

    독일 어린이도 영어 조기교육 ‘붐’

    낱말 카드를 갖고 영어를 공부하는 유치원 어린이들.

    어린이들이 과연 이러한 방식의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어린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언어에 잘 적응한다는 것이 정책 연구를 위탁받은 튀빙겐 대학 연구진의 관찰결과다. 이들에 따르면, 특히 어린이들이 틀린 영어 표현을 할 때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표현이 비록 우스워 보일지라도 수업을 받은 어린이들이 독일어와 상이한 영어의 문법 구조를 이미 어느 정도 익혔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어도 아니고 영어도 아닌 중간 단계의 언어, 우리로 치면 일종의 ‘콩글리시’가 어린이들의 사고 속에서 생겨난 것인데, 그것은 이후에 점점 세련될 가능성이 있는 절반의 성공이라는 이야기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외국어 조기교육을 통해 어린이들이 도대체 해당 언어가 구조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감을 잡는 것이며, 일단 습득하면 여타의 언어 습득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니, 외국어 조기교육 제도는 결론적으로 바람직하다는 것이 튀빙겐 대학 언어학 연구진의 평가다.

    신경과학자들은 다른 측면에서 외국어 조기교육 정책을 옹호한다. 지난달 ‘슈피겔’지는 스위스 바젤 대학 신경해부학 교수 니치(Nitsch)의 연구를 소개했다.

    ‘국제결혼을 해 두 가지의 언어를 쓰는 부모를 둔 자녀가 제3의 언어를 습득했을 경우와 성장한 후 모국어 외의 다른 두 개의 언어를 새로이 습득한 사람의 경우가 있다. 이들에게 뭔가를 이야기하도록 하고, 동시에 MRI 장치를 통해 이들이 말할 때 두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를 관찰했다. 그런데 검사결과, 두 그룹 모두 똑같이 유창한 외국어로 말할지라도 그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작용에는 차이가 있었다. 첫 번째 그룹, 즉 어릴 때부터 복수의 언어를 듣고 자란 사람들은 그 후 습득한 제3의 언어로 이야기할 때도 두뇌 피질의 언어 영역 네트워크 전체가 동일하게 작동했다. 반면에 두 번째 그룹은 각각의 언어가 두뇌 피질 언어 영역의 각기 다른 독립된 부분들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새로운 외국어를 배울 때, 완전히 새로이 독립적인 언어 네트워크를 개발해야 했던 사람이 애초부터 복수의 언어로 변환될 가능성을 지닌 언어 네트워크를 두뇌에 갖고 있었던 사람보다 더 큰 노력을 기울였어야 함은 물론이다.’

    이 실험을 통해 니치 교수가 이끌어낸 결론은 자명하다. 외국어는 조기교육이, 그것도 초등학교 3학년은 이미 늦고 유치원 시절부터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독일의 각 주에서 경쟁적으로 도입한 외국어 조기교육 제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엄청난 사교육비를 들여서 조기교육을 시키고, 심지어 유창한 영어 발음을 위해 혀 수술까지도 서슴지 않는 한국의 현실을 이들은 알고나 있을까? 이제는 이 문제에 관해 이미 한국에서 이루어진 수많은 토론과 반성의 목소리들에 오히려 이들이 귀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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