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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사토시는 후자를 추구한다. 지금까지 그가 만든 영화들은 모두 기존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의 상식을 뒤엎는 작품들이었다. 첫 작품 ‘퍼펙트 블루’는 사이코 스릴러고, 두 번째 작품 ‘천년여우’는 1950년대에 전성기를 보낸 일본 여자배우의 일대기며, 세 번째 작품 ‘도쿄 갓파더즈’는 크리스마스를 무대로 한 노숙인들의 멜로드라마다. 작품이 거듭될수록 그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고정관념에서 점점 더 멀어져갔다.
‘퍼펙트 블루’는 곤 사토시가 쌓은독특한 경력의 시작이다. 원래 1991년에 쓰인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실사 비디오 영화로 기획된 이 작품은 기획 중간에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애니메이션으로 전환된다. 결과적으로 잘된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원래 계획대로 실사로 밀고 나갔다면 지금처럼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 작품이 될 수 없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참’이라는 아이돌 그룹의 리더인 미마가 그룹에서 탈퇴하고 연기자로서 새 삶을 살면서 시작된다. 미마는 간신히 배우로서 자리를 잡아가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나씩 살해당하고 촬영현장에서 이상한 사고들이 일어나며 인터넷에서는 수상쩍은 가짜 팬이 만든 미마의 홈페이지가 뜬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는 서서히 흐려져만 가고 미마는 그 모호한 경계선에 빠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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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사라면 기술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쑥스러워 못할 법한 화려한 영상 표현들이 애니메이션이라는 핑계를 대고 자연스럽게 터져나온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갈등하는 미마의 모습은 손으로 그려진 그림들로 구성된 셀 애니메이션의 장르를 통해 거의 완벽한 스타일을 얻는다. 실속 없는 낭비처럼 보였던 ‘퍼펙트 블루’의 애니메이션화(化)는 결국 모두가 남는 장사였던 셈이다.
Tips | 곤 사토시
1963년 홋카이도에서 태어남. 영 매거진에 단편만화를 발표하다 ‘해귀선’ 연재 후 단행본을 냈다. 영화 ‘월드 아파트먼트 호러’에 원안작가로 참여하면서 애니메이션에 재능을 나타냈다. 95년 극장용 애니메이션 ‘메모리즈’ 시리즈 중 한 편의 각본을 맡으면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의 중심으로 떠오른다. ‘퍼펙트 블루’는 우리나라에서 부천영화제를 통해 97년 공개돼 열광적인 인기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