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귀 틈새로 보이는 미세한 광섬유. 광섬유의 굵기는 나노 차원 기술 개발의 관건이다(왼쪽). 방직공장에서 실을 뽑는 모습. 거미가 실을 잣는 원리는 방직기술과 흡사하다.
아침이슬에 젖어 반짝이는 거미줄을 보면 금방 끊어질 것처럼 약해 보인다. 그러나 같은 무게로 견주어보면 강철보다 5배 정도 튼튼하고 방탄복 소재로 쓰이는 합성섬유인 케블러(Kevlar)보다도 단단하다. 또 신축성이 뛰어나 길이가 30% 정도 더 늘어나고 높은 온도에서 잘 견디며, 물에 젖지 않고 인체에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는다.
거미줄은 이처럼 기막힌 소재지만 거미를 대량으로 사육하여 그것을 활용하기에는 기술적·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거미는 누에처럼 고치를 따로 만들지 않는 데다 자기의 영역을 침범하면 목숨을 걸고 싸우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과학자들이 인공적으로 거미줄을 만들어내는 연구를 벌이며 적지 않은 성과를 올리고 있어 그 실용성에 주목할 시기가 머지않은 것으로 전망된다.
두 종류의 단백질과 5~6%의 수분으로 되어 있는 거미줄은 강도와 탄성의 특성을 갖게 하는 두 단백질 분자가 서로 교묘하게 얽혀 있어 이런 구조를 인공적으로 만들기는 대단히 어렵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생명공학을 비롯한 첨단공학을 총동원해 실험실에서 거미줄을 만드는 연구를 추진하고 있으며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을 찾고 있다.
강철보다 강한 인조거미줄도 개발
덴마크 아르후스 대학의 프리츠 폴라트 교수팀은 1998년 거미가 거미줄을 만드는 방법이 레이온(인조견사)이나 나일론을 제조하는 과정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정원거미의 일종인 ‘아라네우스 디아데마투스(Araneus Diadematus)’를 관찰한 결과 거미줄이 거미의 몸 밖으로 나오면서 산화과정을 거쳐 굳어지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거미 실크를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지난해 캐나다 ‘넥시아 바이오테크놀로지사’(이하 넥시아)와 미국 육군 생화학사령부 공동연구팀이 두 종류의 직조거미에서 추출한 거미줄 유전자를 합성하여 염소의 젖세포와 교차시키는 방법으로 염소의 젖에서 거미줄의 단백질을 대량 분비하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이 이 젖에서 추출한 인조거미줄은 그 길이가 무려 18km가 넘었다.
누에와 거미는 자기 몸에서 실을 뽑는 대표적인 생물이다(왼쪽). 광섬유.
조사 결과 이 인조거미줄은 천연거미줄에 비해 강도만 약간 떨어질 뿐 대부분의 특성이 천연거미줄과 흡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강철처럼 강하다는 뜻에서 이 인조거미줄을 ‘바이오스틸(BioSteel)’이라고 이름 붙였다. 또한 연구팀은 담배와 감자에 거미줄 유전자를 삽입해 잎에서 거미 실크가 분비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
2000년에는 러시아 ‘국립산업 미생물유전 품질개량연구소’의 브라지미르 데바보프 박사팀이 극동지방에 사는 거대한 무당거미의 거미줄 단백질 유전자와 비슷한 구조를 지닌 물질을 미생물의 유전자와 합성한 뒤 이 미생물을 통해 거미줄 단백질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유전자를 조작한 미생물이 만든 단백질을 가공하여 천연거미줄과 가장 비슷한 구조를 분리해 실의 형태로 뽑아낸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의 유샨 얀 박사팀은 최근 거미가 자아내는 거미줄에 얇은 유리막을 입혀 나노(nano=10억분의 1) 차원의 속이 빈 광섬유를 뽑아내는 기술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심지를 왁스에 담가 양초를 만드는 방법과 비슷하다. 양초에 있는 심지만 태워버리면 속이 빈 양초를 얻는 것과 마찬가지로 거미줄에 유리 성분을 입힌 뒤 거미줄을 태워 거미줄처럼 가는 광섬유를 얻은 것이다.
연구팀은 마다가스카르의 거대한 무당직조거미인 ‘네필라 마다가스카리엔시스(Nephila Madagascariensis)’의거미줄을 1cm 길이로 잘라낸 뒤 이 거미줄을 테트라에틸렌 오르소규산염에 여러 번 담가 유리 성분을 얇게 입혀 말린 뒤 420℃의 온도에서 태웠다. 그랬더니 거미줄은 타서 없어지고 크기가 5분의 1 정도로 줄어든, 지름 1㎛(1㎛=1000분의 1mm) 수준의 속이 빈 광섬유만 남았다.
의료·군사용품 소재로 각광받을 듯
굵기가 더 가는 거미줄을 이용하면 더 미세한 광섬유를 얻을 수 있다. 연구팀은 중동 및 남부 아시아에 살고 있는 ‘스테구디푸스 패실리쿠스(Stegudyphus Pacilicus)’라는 거미를 찾아냈다. 이 거미가 자아내는 거미줄은 지름이 2nm(1nm=100만분의 1mm)로 맨눈으로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 거미줄을 이용하면 지름 2nm 수준의 광섬유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5만분의 1 수준이다. 지금까지 가장 가는 광섬유는 지름이 25nm인 것이다.
얀 박사는 이 기술로 빛을 전달할 수 있을 정도의 가는 광섬유를 만들면 나노 차원의 매우 빠른 광전자 회로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광학 현미경의 해상도를 획기적으로 높이거나, 분자 하나를 담을 수 있는 나노 차원의 시험관을 제작하는 데도 활용할 수 있다.
인공거미줄은 인공힘줄, 인공인대, 수술용 봉합사 등 특히 의료 분야의 기술 혁신을 가능케 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방탄복이나 낙하산 등 군사용품은 물론이고 고급 직물소재로서 각광받을 것임이 틀림없다. 이처럼 거미줄로 만든 섬유로 옷을 만들어 입고 거미줄로 만든 광섬유가 세상을 뒤덮게 되면 세상은 또 다른 형태의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으로 얽히게 될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거미에 대한 슬픈 이야기가 전해온다. 리디아에 사는 염색의 명인 이드몬의 딸 아라크네는 자기가 여신 아테나보다 베 짜는 솜씨가 뛰어나다고 뽐내고 다녔다. 결국 그는 여신과 길쌈 내기를 했다가 불경죄로 몸이 거미로 바뀌는 천벌을 받기에 이른다. 첨단 과학기술의 힘이 그 아라크네의 저주를 푸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