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린온 헬기의 원형인 수리온 헬기. 수리온은 육군이 대량으로 운용하고 있는 헬기다. 4성 장군 성판을 붙인 수리온이 훈련장에 착륙하고 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그러던 중 2019년 제1사단 예하에 제1항공대대가 창설됐다. 제1항공대대는 곧 창설될 해병대항공단의 모체로 MUH-1 마린온 상륙기동헬기 20여 대로 완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해병대는 마린온 헬기 20여 대로 구성되는 2개의 항공대대를 완성한 뒤 이들을 지원할 상륙공격헬기대대 1개를 창설해 3개 대대체제의 해병대항공단을 꾸릴 구상을 하고 있다.
공중 화력 지원은 선택 아닌 필수
훈련 비행을 위해 수리온 편대가 줄지어 이륙하고 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헬기를 이용한 초수평선 상륙작전에도 헬기가 필요하다. 헬기에 탑승한 해병들을 해안선 후방 적지에 내려놓으려면 착륙지 인근의 적을 화력으로 제압해야 한다. 착지에 성공한 이후에도 이들은 고립된 상태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공중 화력 지원이 절실하다. 요컨대 현대 해병작전은 부르면 언제든 날아와 강력한 화력을 퍼부어줄 수 있는 공격헬기를 필요로 한다.
해병대를 위한 공격헬기 소요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5년이 채 되지 않았다. 2013년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주도로 상륙기동헬기 개발이 시작됐고, 2016년 정식 납품 계약이 체결되자 해병대는 상륙공격헬기 획득으로 눈을 돌렸다. 기동헬기가 가는 곳에는 반드시 공격헬기 엄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수리온은 프랑스 유로콥터의 기술 지원을 받아 개발된 헬기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이 헬기는 미 해병대가 1986년부터 1988년까지 180여 대를 도입해 주력 공격헬기로 운용하던 기종이다. 미 해병대는 이 가운데 일부는 재생 과정을 통해 AH-1Z 사양으로 개조하고, 나머지 기체를 공격헬기 매물로 내놓은 것이었다.
AH-1W는 ‘코브라’라는 이름을 이어받고 있지만 우리 육군이 운용 중인 AH-1S/F 코브라와는 차원이 다른 헬기다. 최대 이륙중량이 4.5t에서 6.7t으로 50% 이상 증가했고, 무장 역시 4km급 토(TOW·대(對)전차미사일)가 아닌 8km급 헬파이어 미사일을 운용한다. 엔진 출력이 2배 이상 증가한 덕분에 코브라의 고질적 단점으로 지적되던 기동성 문제도 없다.
이 헬기들의 판매 가격은 고시되지 않았지만, 매각 대상 기체들의 사용 연한이 20~30년에 달해 잔존 가치가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된 만큼, 엔진 등 핵심 부품을 교체하고 1개 비행대 분량을 들여오는 데 1000억 원 이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정됐다.
현존 최강 공격헬기
해병대는 육군이 운용하는 이 수리온 헬기에 방염 처리 등을 해 ‘마린온’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그로부터 1년 후인 2019년 1월 14일 국방기술품질원이 ‘상륙공격헬기사업 비용 분석’ 연구용역 건을 입찰에 붙였다. 해병대용 공격헬기를 도입하는 데 비용이 어느 정도 필요한지 확인하기 위한 선행연구였다. 이 입찰을 위해 미국 벨(Bell), 보잉(Boeing), 시코르스키(Sikorsky)와 터키항공우주산업(TAI), KAI 등 5개 업체가 정보를 제공하며 사업 참가 의사를 보였다.
벨은 미 해병대의 현용 주력 공격헬기인 AH-1Z 바이퍼(Viper)를 제안했다. AH-1Z는 최대 이륙중량이 7.6t으로 증가했고, 최신형 헬파이어 미사일 16발 또는 APKWS II 유도로켓 등 강력한 공격력을 갖춘 기종으로, 미 해병대가 대한민국 해병대에 도입을 강력하게 권유하고 있는 후보다.
보잉은 미 육군과 우리 육군의 주력 공격헬기인 AH-64E 아파치 가디언(Apache Guardian) 공격헬기를 제안했다. 10t이 넘는 최대 이륙중량을 가진 이 헬기는 공격력과 방어력 모두 후보 기종 가운데 최강이며, 무인기와 연계한 작전도 가능해 현존 최강 공격헬기로 평가받는 기종이다.
시코르스키는 우리 육군의 주력 기동헬기인 UH-60의 무장형인 AH-60 기종을 들고 나왔고, TAI는 우리 육군의 공격헬기 도입 사업에서도 제안한 T129를 권했다. 유일한 국내 기업인 KAI는 현재 해병대에 납품하고 있는 MUH-1 마린온을 바탕으로 개발한 ‘마린온 무장형’을 제안했다.
이 5종으로 검토한 선행연구에서 국방기술품질원은 상륙공격헬기의 경우 국내에서 개발해 조달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후보로 검토된 외국산 공격헬기보다 국산 MUH-1 헬기를 기반으로 해병대용 상륙공격헬기를 조달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얘기다. 도대체 어떤 프로세스를 통해 이러한 결론이 도출됐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마린온 기반의 상륙공격헬기 낙점 소식은 해병대에게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아닐 수 없다.
국방기술품질원으로부터 ‘낙점’받은 KAI의 마린온 무장형은 2019년 10월 서울에어쇼에서 처음 공개됐지만, 10년 전에 그 개념이 제안된 ‘사골’이다. 수리온 납품을 준비하던 KAI가 육군의 공격헬기 도입 소요를 염두에 두고 제안한 4가지 모델 가운데 하나를 발전시킨 것이다.
당시 KAI는 수리온 기동헬기에 무장을 장착한 ‘수리온 무장형’을 개발하는 데 4년의 시간과 2000억 원의 개발 비용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때 KAI가 제안한 수리온 무장형의 대당 가격은 약 210억 원으로, 180억 원 안팎에 납품되던 수리온 기동헬기보다 15%가량 비싼 가격이었다.
공격헬기와 현격한 성능 차이
적의 지대공미사일을 피하기 위해 플레어를 터뜨리고 있는 수리온 편대.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마린온과 같이 기동헬기에 무장을 장착한 헬기는 ‘공격헬기(Attack helicopter)’가 아니라 ‘무장 헬리콥터(Armed helicopter)’ 또는 ‘건십(Gunship)’으로 분류된다. 기동헬기에 날개를 장착하고 무장을 주렁주렁 달아도 전용 공격헬기와의 성능 차이가 현격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사람을 태우려고 만든 기동헬기는 내부 탑승 공간을 확보해야 해 체적이 커질 수밖에 없다. 체적이 커진다는 것은 기체가 둔중해지고 피탄 면적이 넓어진다는 의미다. 이러한 기체는 적의 대공 사격을 피하면서 지속적으로 공중화력을 제공해야 하는 공격용 헬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베트남전쟁에서 기동헬기 UH-1에 로켓과 기관총을 장착한 UH-1B 건십을 사용한 미군이 동체 폭을 95cm라는 극단적인 수준으로 줄이고 기동성을 높인 AH-1G를 만든 이유도 무장형 헬기의 한계 때문이다.
현재 미 해병대는 최대 이륙중량과 탑승 인원에서 마린온과 동급인 UH-1Y를 경공격헬기비행대(Marine Light Attack Helicopter Squadron)에서 운용하고 있다. 이 UH-1Y에도 미니건과 로켓 등의 무장이 탑재돼 있지만, 이 기체는 AH-1Z의 엄호를 받으며 작전하는 것을 기본으로 한다. 무장헬기가 유용하기는 하지만 전용 공격헬기를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적된 실전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이다.
여단급 이상의 상륙작전부대를 운용하는 국가 가운데 기동헬기에 무장을 붙인 헬기에 공중 화력 지원 임무를 맡긴 나라는 찾아보기 어렵다. 미 해병대는 AH-1Z를, 러시아 해군 육전대는 Ka-52K를 운용하고 있다. 최근 해군 육전대 확장에 나선 중국은 새로 건조한 075형 상륙함에 Z-10 공격헬기 해상형 탑재를 확정했고, 일본 수륙기동단은 육상자위대 AH-64DJ 헬기의 지원을 받는다. 한국이 마린온 무장형을 상륙공격헬기로 도입한다면 무장 헬리콥터를 상륙작전 지원용 주력 공격헬기로 사용하는 최초의 나라가 된다.
육군항공작전사령부 소속 수리온 조종사들이 임무 비행을 마치고 기지로 복귀하고 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