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자동차, 반도체, 정유·화학 등 한국 주력 수출업종의 실적 악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월 18일 오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에 완성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뉴스1]
코로나19로 우리는 전염병이 인류 문명의 숨은 지배자였다는, 오래전에 망각된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실로 오랜만에 전 세계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패닉에 빠졌다. 치명률은 낮되 전염 속도가 무척 빠른 이 신종 전염병은 예전처럼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지는 않지만 인간과 물류의 유통을 마비시킴으로써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으며, 이를 통해 인류를 경제적으로 질식사시킬 태세다.
인류 문명의 숨은 지배자
아시아개발은행(ADB)은 올해 한국 수출이 1.3% 성장에 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뉴스1]
코로나19 발생 전 경제 문제점으로 크게 세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공급과잉에 따른 전통적 제조산업 기업의 활력 쇠퇴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혁신산업으로의 상대적인 쏠림 현상 △둘째, 저금리 환경하에서 대마불사(too big to fai)뿐 아니라 좀비기업 양산 △셋째, 자산가격의 상승과 저물가로 인한 양극화 및 가계부채의 지속적 상승이다.
미국 정부와 한국 정부의 경제 측면에서 대응은 크게 기준금리 추가 인하,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따른 실물시장의 수요 급감과 실업으로 인한 구매력 감소를 메우기 위한 유동성 공급이다. 이러한 정책 대응의 한 가지 특징은 과거 서브프라임 사태로부터 얻은 교훈인 ‘기왕 하려면 빨리하고, 더 많이 집행하라’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대응은 당장은 유효할지라도 반드시 후유증을 남긴다. 첫째, 정유, 화학, 철강, 조선 등 전통적인 국내 제조업은 글로벌 공급과잉과 수요 둔화로 전문지호 후문지랑(前門之虎 後門之狼) 같은 상황이다. 과거 같으면 과감한 투자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경쟁력을 확보하는 해법이 통했을 테지만, 지금 같은 글로벌 공급과잉 상황에서는 전방산업에서의 수요 견인이 불발돼 더 큰 재무적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 현재의 유동성 경색 국면을 해소하기 위한 과감한 처방이 자칫하면 유동성 경색 기업뿐 아니라 지급 불능 기업까지 연명하게 해 오히려 경제 반등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소로 작동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둘째, 10여 년 이상 지속돼온 저금리 기조는 돈 벌어 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을 늘려왔다. 경기침체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근본 원인이겠지만, 장기화된 저금리 기조가 제대로 된 구조조정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행 통계를 보면 이자보상비율 100% 미만인 한계기업은 3곳 중 1곳에 달하며, 이 비율은 계속해서 상승 추세다. 그리고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다. 경제 충격의 전방위적 확산을 막기 위해 당장 정책적 지원이 불가피할지라도 그 후 정상 회복 단계에서 경제 생산성을 저해하고, 그에 따라 정상 기업의 연구 설비 투자도 어렵게 만드는 좀비기업을 구조조정해야 하며, 그래야만 미래 경제의 건전한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
악순환 저성장 트랩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소비가 부진해지면서 농산물과 공산품 가격은 물론, 음식점과 숙박 서비스 물가까지 내려갔다. 사진은 3월 20일 서울 시내 한 마트의 매대 모습. [뉴시스]
생산 측면에서 좀비기업 양산으로 인한 수익성 및 생산성 저하, 가계부채 점증으로 인한 소비 위축, 저금리로 인한 소득 불균형 심화는 모두 자산 배분의 효율성 측면에서 시장의 정상 기능을 저해하는 요소다. 위기는 기회일 수 있다는 명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좀 더 건전한 경제성장을 위해 이번 기회에 국내적으로나, 글로벌적으로나 경제 전반에 걸쳐 쌓여온 비효율을 걷어내고 효율을 증대하는 쪽으로 향후 경제 운영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